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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라 Oct 18. 2024

지지자(知之者): Karma 1

<문학나무> 2024년 가을호 발표작 [사대성인 소설-공자편 1]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者).

―『논어』


  공자가 그 구멍을 발견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온 그녀는 여느 때처럼 어둠을 더듬어 소파에 앉았다. 불 꺼진 빈집은 괴괴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녀에겐 어둠 속에 머무는 습관이 붙었다. 불이 켜지면 집안의 속살이 벌겋게 드러나는 듯했다. 남편은 날마다 귀가가 늦었다. 오늘도 야근이 있다고 했다. 그녀는 남편이 늦게 들어오는 진짜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따지지 않았다.

  공자는 창밖에서 들어오는 어스름에 의존해 맥주캔을 땄다. 그때, 어둠 속에서 뭔가가 반짝 빛났다. 거실 한구석이었다. 팔에 옅은 소름이 돋았다. 그녀는 빛이 나는 쪽으로 다가갔다. 벽 귀퉁이에 작은 구멍이 있었다.

  “이게 뭐지?”

  공자는 거실 불을 켰다. 심장이 쿵쿵거렸다. 벽에 난 구멍이라니. 집에 이런 하자가 있다니 믿을 수 없었다. 지금껏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도 이상했다. 이 집은 부부의 신혼집이자 남편이 부모에게서 유산으로 받은 단독주택이었다. 그녀는 사계절 동안 이 집에 머물면서,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닌 곳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건 남편의 옆자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느낌은 더욱 짙어졌다.

  구멍은 누가 일부러 만든 것처럼 동그랗고 반듯하게 뚫려 있었다. 공자는 땀이 배는 손을 뻗어 구멍에 검지를 넣었다. 반지를 끼우듯 손가락이 구멍 안으로 쏙 들어갔다. 그런데 그 순간, 구멍이 커지는 것이 느껴졌다. 공자가 중지를 뻗자 손가락 두 개가 그 속으로 들어갔다.

  손끝에 뭔가가 닿았다. 공자는 손가락을 빼고 구멍 속을 들여다봤다. 그 안에는 금색의 단단하고 매끄러운 물체가 있었다. 금인 것 같았다. 그러나 눈으로 봐서는 확실히 알 수 없었다. 공자는 쇠붙이로 그것의 한 조각을 떼어내 주얼리샵에 가지고 갔다. 순금이라 했다.

  가슴이 더 거칠게 뛰놀았다. 뛰듯이 집으로 돌아온 공자는 구멍을 더 넓혔다. 벽의 구멍은 공자의 손이 움직이는 대로 쑥쑥 커졌다. 주먹을 넣자 주먹만큼 커졌다. 넓어진 구멍 뒤엔 구멍보다 더 큰 금이 있었다. 구멍은 금세 얼굴만 해졌다. 그런데도 금의 가장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시멘트벽 뒤에 금벽이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집 전체가?”

  공자 몸에 전율이 일었다. 순금으로 지어진 주택이라니. 홀연 가슴이 뜨거워졌다. 시멘트를 한 꺼풀 벗겨내면 황금 속살이 나오는 집이라……. 공자는 황홀감에 휘감겼다. 남편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리라. 그녀는 집의 비밀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캐낸 혼자만의 보물이었다. 공자는 소파를 끌어와 뚫린 벽 앞에 놓았다. 구멍이 완벽하게 가려졌다. 그녀의 얼굴이 발그레하게 달아올랐다.

  남편이 돌아올 시간이었다. 공자는 주방의 불을 켜고 홍합스튜 재료를 꺼냈다. 남편이 좋아하는 술안주를 준비할 계획이었다. 그녀는 와인잔을 기울이며 오랜만에 남편과 대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내자 십 분 뒤에 도착한다는 답이 왔다. 공자의 입에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오늘은 남편과 한방에서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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