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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라 Oct 19. 2024

호지자(好之者): Karma 2

<문학나무> 2024년 가을호 발표작 [사대성인 소설-공자편 2]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논어』


  공자는 거실 벽의 구멍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남편은 아직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저녁 식탁엔 늘 그녀 혼자였다.

  그녀와 남편의 사이가 멀어진 결정적인 원인은 돈에 있었다. 정리해고를 당한 뒤 중소기업에 들어간 남편의 월급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던 것이다. 그들은 더치페이 부부였다. 그러나 각자의 소득에 따라 생활비를 부담하기로 했기에 그동안 공자의 몫은 4할이었다. 공자보다 남편의 월급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편의 월급이 절반으로 줄면서 그녀의 부담이 두 배로 증가했고 생활도 팍팍해졌다. 부부 관계가 멀어지는 건 시간 문제였다. 두 사람은 곧 각방을 쓰게 되었다.

  공자는 이 집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남편과 일 년 남짓 살았을 뿐인데 너무 오래 머물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혼집은 남편의 소유였기에 그녀는 몸만 빠져나오면 되었다. 그러나 정작 그녀는 이혼을 구체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직 그럴 때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그녀를 집으로 끌어당겼다. 일부러 늦게 귀가하는 남편과 달리, 그녀는 항상 칼퇴근을 하고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떠나고 싶은 집에 자꾸 머물려고 하는 모순된 심정을 그녀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벽에서 그것을 발견했을 때, 공자는 자신이 찾던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구멍 속의 금, 그것이 그녀를 이 집에 머물게 했던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확신했다. 구멍이 자신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공자의 검지 둘레만 한 구멍은 그녀의 손이 닿는 대로 커졌다. 손가락만 들어갔던 곳에 주먹까지 넣을 수 있었다. 구멍을 양손으로 벌리자 그것의 지름은 양팔 간격만큼 확장됐다. 그리고 그 속에는 구멍보다 더 큰 면적의 금이 있었다. 공자는 구멍을 더 벌려보려 했지만 그 이상 커지지는 않았다.

  그녀는 펜치와 망치 등 공구를 죄다 가져왔다. 그리고 벽 속의 금을 캐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금은 부스러기 몇 조각 외엔 떨어져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그것이 진짜 벽처럼 여겨졌다. 시멘트벽은 껍데기이고 그 안의 금벽이 알짜인 것 같았다.

  공자는 두 손으로 망치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시멘트벽을 힘껏 쳤다. 벽이 흔들리면서 집 전체가 진동했다. 그녀는 또다시 있는 힘을 다해 벽을 내리쳤다. 그러자 사방에 금이 가면서 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순식간이었다.

  “내 금!”

  공자는 허물어진 벽의 잔해를 들추며 금덩이를 찾았다. 그러나 금은 간데없었다. 부서진 시멘트 속을 샅샅이 뒤졌지만 금덩이는커녕 금가루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망치를 들고 다른 벽을 내리쳤다. 그러자 집안의 모든 벽이 갈라지면서 주택이 주저앉기 시작했다. 바깥벽이 허물어지고 지붕이 내려앉았다. 공자는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왔다.

  “끝났다.”

  입에서 말이 저절로 나왔다. 누구의 말인지 몰랐다. 좋은 뜻인지, 나쁜 뜻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짚었다. 남편이었다. 그의 표정은 덤덤했다. 지금까지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 공자는 그것이 자신의 얼굴처럼 보였다. 남편은 말없이 그녀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이혼합의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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