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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라 Oct 20. 2024

낙지자(樂之者): Karma 3

<문학나무> 2024년 가을호 발표작 [사대성인 소설-공자편 3]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논어』


  집의 구멍을 발견한 순간, 공자는 자기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자신의 인생에 뚫린 구멍이 그렇게 나타난 듯싶었다.

  더치페이를 고수하는 남자와 결혼을 한다고? 공자의 언니는 미친 짓이라 했다. 그건 계산이지 사랑이 아니야. 언니는 공자의 결혼을 극구 말렸지만 공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랑? 그런 게 정말 존재하기나 해? 남자가 여자를 위해 돈을 쓴다 해서 그게 계산이 아닌 사랑일까? 그 또한 다른 방식의 계산이지. 결국 모든 관계는 결핍에서 나온 욕망이고 이해관계일 뿐이야. 자신의 욕구를 채워주는 상대를 사랑한다고 착각하는 거지. 부부야말로 욕망과 이해타산 관계의 정점이야.

  공자의 이런 말에 언니는 입을 다물었다. 공자는 모든 것을 알고도 결혼했다. 자신이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남편 또한 그렇다는 것. 사랑이란 걸 하기에 인간은 너무나 미성숙하고 이기적인 동물이라는 것. 그러면서도 한없이 무지하고 나약해 결혼이란 미끼를 물 수밖에 없다는 것. 그렇게 인류 역사를 통해 악마의 유혹이 대물림돼 왔다는 것.

  그 유혹을 물리쳤어야 했다. 공자는 신혼집 첫날밤이 지난 뒤 이를 깨달았다. 남편이 부모와 함께 살았던 그 집은 흡사 무덤 같았다. 공자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시부모의 몸속에 들어와 있는 듯했다. 죽은 시부모의 망령이 집안 곳곳에 들러붙어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집 자체가 시부모였다. 남편은 부모의 자궁 속에서 평생을 살았고 그곳을 떠나 본 적이 없었다. 말하자면 태어난 적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공자 또한 그 자궁에 갇혀 있었다. 

  “하하하하…….”

  공자는 무너진 집을 보며 미친듯이 웃었다. 그녀는 깨달았다. 망치질의 목적은 금을 가지는 게 아니라 금 간 집을 부수는 것이었음을. 공자는 잔해만 남은 집터에서 옷을 훌훌 벗어 던졌다. 티셔츠와 반바지를 벗고 브래지어와 팬티도 벗었다. 그제야 온몸의 세포들이 파릇파릇 깨어나는 듯했다. 공자는 알몸으로 크게 기지개를 켰다. 바로 그때였다.

  “뭐야!”

  익숙한 목소리, 남편이었다. 그는 눈을 부라리며 공자에게 빠르게 다가왔다. 두 눈에서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남편은 한 손을 들어 공자의 뺨을 후려쳤다. 미처 피할 새도 없었다.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공자의 몸이 휘청했다. 남편은 고함을 치며 또다시 손을 들어 올렸다. 두 번째 손이 날아드는 순간, 공자는 온 힘을 다해 그의 몸을 밀쳤다.

  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남편의 몸이 늘어졌다. 무너진 집 위에 쓰러진 그는 그녀를 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공자는 그쪽으로 다가갔다. 남편의 머리에서 진득한 액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보…….”

  남편이 살려달라는 손짓을 했다. 공자는 말없이 그를 내려다봤다. 자기 얼굴을 보는 것 같았다. 공자는 남자의 몸을 가진 자신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싸늘한 시선 속에서 그 몸이 차갑게 식고 있었다.

  공자는 그의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한 뒤 옷을 입었다. 그리고 뒤돌아보지 않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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