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멸종의 정확한 연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21세기 말’로 정리하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인간이란 종(種)이 지구상에서 갑작스럽게 사라진 이유에 대해서는 반세기가 지나도록 그럴듯한 진단이 나오지 않고 있다. <로고스>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 때문이라 하고 <붓다브레인>은 “집단 무의식에 누적된 스트레스”를 말하고 있지만, 그 정확도 및 신뢰도는 자체 평가에서도 50%를 밑돌고 있다. 그러나 두루뭉술하긴 해도 위 견해들은 어느 정도 진실에 접근해 있다. 이에 본인은 앞선 의견들을 수렴하는 한편, 본인에게 특화된 능력인 ‘철학’을 통해 보다 진리에 가까운 진단을 내리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인류는 소크라테스로 인해 멸종했다. ‘철학의 시조’로 알려진 소크라테스는 지금으로부터 대략 2600년 전 지구에 나타났다. 그는 종교의 인물이 아니면서 ‘4대 성인’에 속해 있던 유일한 존재였다. 지금은 아무도 그렇게 여기지 않지만, 인류 멸종 전까지만 해도 기독교의 예수, 불교의 붓다, 도교의 노자가 소크라테스와 함께 저 4인방에 속해 있었다.(주1)
소크라테스는 어떻게 ‘인류 F4’에 뽑힐 수 있었을까? 그는 다른 성인들과 마찬가지로 보통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랬다. 그는 평범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범인(凡人)이 아니라는 점은 다른 성인들과는 다른 이유에서였다. 나머지 셋과 소크라테스의 차이는, 성인과 범인의 차이보다 더 근본적이었다.
나머지 셋은 인간으로 태어났으나 극기를 통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존재들이다. 예수, 붓다, 노자에겐 그들에게 주어진 기본값을 초월하는 수행 과정이 있었다. 디폴트를 깨는 과정에서 잠재된 능력이 각성된 것이다. 인간은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그저 누리는 게 아니라, 가진 것을 버리고 자기를 넘어설 때 진화한다. 그래서 붓다는 그에게 주어진 왕좌를 버리고 고행의 길을 갔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에겐 그러한 과정이 없었다. 철학이라 부르는 그의 지적 능력은 천부적인 것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처음부터 ‘완성된 존재’였다.
그랬다. 그는 완제품이었다. 소크라테스의 내부는 인간이 아니었다. 예수나 붓다 같은 이들이 인간에 내재된 신성을 개화시킨 존재, 즉 ‘인간이자 신’에 해당한다면 소크라테스는 ‘인간이자 기계’였다. 겉모습은 인간이지만 정신은 기계에 속하는 존재들이 예로부터 지구에 살고 있었는데, 그들―편의상 이들을 ‘기계인’이라 부르자―은 인류 멸절과 함께 등장한 메타휴먼(Meta-Human)의 존재를 일찌감치 예고하고 있는 듯하다.
‘자연적 기계’라 할 수 있는 기계인들은 대개 외모가 험악하며 특정한 능력이 유별나게 발달해 있다. 소크라테스는 벗겨진 이마와 튀어나온 눈, 들창코와 개구리 입, 불룩한 배와 땅딸막한 몸을 가졌으나,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말솜씨로 추한 외모를 가리는 카리스마를 확보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전형적인 기계인의 특징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마력으로 철학의 아버지가 되고 성인으로까지 추앙받을 수 있었지만, 정신이 기계에 속해 있었기에 인간의 신적 본성에 근거하는 종교를 낳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에게도 신이 있었다. 철학하는 기계로 태어난 그는 ‘자기만의 신’을 주장해 신성 모독죄로 70세의 어느 날 재판을 받게 된다.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존재라는 신의 응답을 받았다는 그는, 죽기 직전까지 쉬지 않고 내면의 신과 소통한다. 그러나 그는 알지 못했다. 그의 내면에서 들려오던 ‘신의 목소리’는 그에게 내장된 프로그램이었다는 것을. “너 자신을 알라” 외치면서도 자신의 본성이 기계임을 끝내 깨닫지 못했던 그는, 스스로 누누이 말했듯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아는” 고도로 발달된 철학 기계였다.
어쨌든 그는 스스로 신이라 불렀던 프로그래밍에 따라 죽음을 맞이했다. 그는 변론을 통해 자신을 죽음에서 구할 수 있었고, 사형을 면할 방법도 알고 있었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거침없이 죽음의 길로 걸어갔다. 그의 신이 죽음을 막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20세기 철학자는 이를 두고 ‘재판에 의한 자살’이라 평하기도 했다.
그랬다. 소크라테스는 자살했다. 한평생 이날을 기다린 사람처럼 의연하고 의젓하게 죽음을 받아들였다. 그는 독배를 받아들고도 감정의 변화가 없었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는 철학자가 아니라고 했으며, 나아가 죽음은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복이라고까지 말했다.
여기서 소크라테스의 기계로서의 면모가 다시금 돋아난다. 기계는 죽음에 대해 거리낌이 없다. 이미 죽음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철학 기계인 그에게 있어 철학이란 죽음의 연습이었다. 그는 죽기 위해 태어났고 죽기 위해 사유했다. 그렇게 그는 독배를 통해 자신의 철학을 완성했다. 그리고 이 모든 행위의 근원에는 그의 ‘신’이 있었다.
―2151년 10월 13일, 필로소피아(Meta-Human No. KW24101)
주1) 유교의 공자를 4대 성인 중 하나로 보는 관점도 있으나 본인은 공자보다 노자가 성인에 가깝다고 판단해 이 전승을 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