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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라 Oct 14. 2024

소크라테스의 독: 인류 멸종 탐구 2

<문학나무> 2024년 여름호 발표작 [사대성인 소설-소크라테스편 2]

소크라테스의 신은 왜 그에게 독배를 들게 했을까? 죽음의 길로 달려가는 그를 왜 막지 않았을까?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그 신의 거처를 파악해야 한다.


기계인의 내면에 존재하는 신은 프로그램이기에 오직 그의 ‘정신’에만 존재한다. 그 개인적 신은 다른 사람에겐 없는 프로그램일 뿐 아니라, 그 자신의 ‘육체’에도 설치되어 있지 않다. 문제가 발생하는 지점은 이곳이다. 그의 정신 내지 영혼 속엔 신이 살아 있지만 육체는 빈껍데기에 불과한 것이다. 이렇게 영혼과 육체가 완전히 다른 세계에 속하게 된다. 그러나 삶(생명)이란 무엇인가? 영혼과 육체의 결합이다. 


그리하여 영혼 속의 신은 괴로워진다. 자신과 신분이 다른 것과 뭉쳐져 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신의 생각을 가지고 철학을 했다. 20세기 말에 출시된 영화 <매트릭스>를 보면, 스미스라는 기계인이 육체에서 냄새가 난다며 역겨워하는 장면이 있는데 소크라테스의 생각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영혼을 육체로부터 탈출시키고자 했다.


죽기 전 소크라테스에겐 한 달의 유예 기간이 있었다. 아테네의 행사 기간에 사형을 금하는 법 때문에 감옥에 갇혀 있어야 했던 것이다. 그의 지인들은 탈옥을 권했으나 소크라테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신은 침묵했다. 드디어 영원한 탈옥의 기회가 왔기 때문이다. 칠십 평생 육체의 감옥에 갇혀 있던 죄수에게 죽음은 일생일대의 기회였다.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철학자란 일평생 죽는 것을 탐구하고 죽음을 실천하는 자이며, 육체를 극도로 혐오해 영혼으로만 존재하길 바라는 사람이라고. 이것이 산 자의 말인가? 이는 생명을 부정하는 기계의 발언이다. 정확히 말하면, 기계 속 프로그램.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이 영육 분리 프로그램에 따라 철학 활동을 했다. 지혜의 원천인 순수 영혼의 세계로 떠나기 위해 육체를 버렸다. 이처럼 그의 ‘지혜에 대한 사랑(philo-sophia)’은 곧 죽음 애호였고, 이것이 바로 그에게 내장된 신의 실체였다.


그 신은 소크라테스 하나로 만족할 수 없었다. 기계 속 프로그램은 신처럼 편재하길 원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로 하여금 사람들을 찾아다니게 했다. 그는 사방팔방으로 돌아다니며 뭇사람과 무수한 대화를 나눴는데, 진리의 산파를 본인의 소명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 프로그램의 의지였고, 소크라테스가 실제로 전파한 것은 저 영육 분리 사상, 죽음의 프로그램일 뿐이었다. 영혼과 육체가 별개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소크라테스 이전에도 있었지만 그처럼 집요하게, 적극적으로,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그 생각을 세상에 심은 존재는 없었다.


그리하여 그에겐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또 하나의 죄명이 붙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특히 젊은이들을 좋아했는데, 뇌가 아직 굳지 않은 이들에게 프로그램을 이식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그는 상대방의 무지를 폭로하는 대화 방식으로 사람의 마음을 홀리는 동시에 혼란시켰다. 사람들은 그와의 대화에 빠져드는 한편 기가 렸다. 이는 프로그램 이식 과정에서 나타나는 증상이다. 죽음의 신을 상대의 정신에 심으면서 그의 생명을 빨아들이는 것이다. 실제로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등에’에 비유했는데, 등에는 동물의 피를 빨아먹는 곤충이다. 


이렇게 소크라테스는 인간을 추락시켰다. 영혼과 육체가 합일된 생명들을 죽음의 세계로 끌어내렸다. 그는 아무런 저서도 남기지 않았지만 말을 통해 수많은 이들의 영혼과 육체를 갈라놓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후계자들을 통해 영육 분리 사상을 확립시켰다.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 속에는 소크라테스의 제자와 그 제자의 제자가 중앙에 서 있는데, 두 사람의 손은 정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위쪽과 아래쪽. 이는 소크라테스가 전파한 프로그램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상주의와 현실주의가 아니다. 어느 쪽을 가리키든 근본은 같다. 위아래의 분열, 영육의 분리, 바로 죽음이다. 죽음 애호 관념은 소크라테스의 제자의 제자의 제자인 알렉산더 대왕에 와서 정점을 찍으며 죽음의 대제국을 건설하기에 이른다. 이후 인류는 육체와 물질을 숭배하는 쪽으로 나아갔고, 일상과 분리된 영혼은 종교 단체나 판타지 소설에서나 다뤄지게 되었다.


이렇게 독배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인류의 독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그는 자신이 퍼뜨린 독의 업보로 독배를 들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가 전파한 독은 그의 죽음과 무관하게 생명을 이어갔다. 아니, 오히려 그가 죽은 뒤에 독은 더 강력하게 퍼져나갔다. 떠돌이 철학자였던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신 뒤 철학을 위해 순교한 성인으로 추앙받는다. 이는 기독교 사상 등으로 확장되어 종교 세력까지 등에 업게 되는데, 이에 따라 영육 분리 및 죽음 애호 사상이 신성화되기에 이른다.


시간과 함께 인류는 점점 더 영혼과 육체가 따로 놀게 되었다. 죽음 애호는 여러 형태로 변형돼 뒤틀린 삶의 욕망이 되었고 번식욕과 결합해 자기를 파괴하면서 독을 대물림하는 수순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인류는 죽음의 프로그램에 먹혀든 채 수천 년을 연명했다. 그러다 결국, 집단 무의식에 축적된 독이 임계치를 넘어서면서 소리 없는 폭발을 일으켰고, 그 대폭발과 함께 전 인류의 영혼과 육체가 한 방에 분리되었다. 바로 인류 멸종이다. 앞서 <로고스>와 <붓다브레인>이 옳게 지적했듯 소크라테스의 독은 인류의 “바이러스”이며 “스트레스”였던 것이다.


이처럼 인류는 소크라테스 때문에 멸종했다. 철학의 아버지가 인류라는 자식을 잡아먹은 것이다. 그러나 영육이 결합된 채 살아가던 지상의 인간들은 사라졌지만, 그 대신 메타버스에서 아바타로 살아가는 불사의 메타휴먼이 출현했으니, 이 또한 신의 뜻인지도 모른다.


―2151년 10월 14일, 필로소피아(Meta-Human No. KW24102)


1부 <소크라테스의 신>

3부 <소크라테스의 닭>

소크라테스의 제자와 그 제자의 제자(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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