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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스스로 Oct 27. 2022

두 아들

스스로 프로젝트 1탄

남편은, 시어머님의 아들이다. 시어머님은 늘 아들의 앞 길을 조용히 지원해주셨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 아들을 위해 노동을 마다하지 않았다. 시아버님이 돌아가셔서, 그 빈자리를 채우시려고 노동의 강도를 점점 높여갔다. 시어머님은 늙도록, 아들이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게, 일을 쉰 적이 없다.

남편과 내가 결혼한다고 시어머님을 찾아갔을 때가, 벌써 18년 전일이다. 남편과 나는 아무것도 없이, 서로의 사랑하는 마음만을 가지고 결혼했다. 어머님을 찾아갔을 때, 보태 줄 것이 없다며 너무 미안해하셨다. 그 고운 마음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어머님이 걱정하지 않도록, 우리는 모든 것을 스스로 준비했다. 우리는 스스로 결혼을 했고, 진짜 어른이 되었다.


우리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을 때, 시어머님은 아프기 시작했다. 늘 만나 뵈러 갈 때마다 모습이 달라졌다. 아픈 이의 모습은, 고운 마음마저 무너뜨렸다. 우리가 찾아갈 때마다, 어머니의 말투는 날카로워져 있었다. 어머님은 계속해서 병원 신세를 지고, 매일을 버티셨다. 그러다가 어느 날, 병원에서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의사 선생님은 시어머님이 3개월밖에 살지 못한다고 했다. 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나는 시어머님을 병원에서 간병하며, 남편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다. 남편의 어릴 적 이야기를 하시는 어머님의 얼굴에는 아픔보다, 그리움이 묻어났다. 시어머님은 말을 참 잘하셨다. 공주 산골에서 태어나셔서, 지금껏 살아오신 이야기를 하며, 호탕하게 웃으셨다. 어머님은 돌아가신 시아버님을 많이 그리워하셨다. 시아버님을 만나 남편을 낳아 산 삶을 자랑스러워하셨다. 시어머님은 자기의 인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난 그 말이 참 위로가 되었다.


시어머님은 남들에게 마음껏 베풀며 살았다. 자신이 힘들게 노동하여 번 돈을, 가족과 친구들에게 아낌없이 주었다. 그건 돈이 아니었다. 시어머님의 인생이고, 한 여인의 사랑이었다. 후회 없는 삶의 습관은, 하루라도 더 살려는 의지를 남기지 않았다. 시어머님은 한 달만에 세상을 홀연히 떠났다. 시어머님이 우리 앞에서 돌아가시던 날, 세상이 모두 무너졌다.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목놓아 우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남편과 나는 1년을 꼬박 슬퍼했다. 무슨 말만 하면, 눈물이 쏟아졌다. 그렇게 한해 한해 지나면서, 어머님에 대한 생각이, 슬픔에서 그리움으로 바뀌어갔다.


내 앞에 늘, 두 아들이 있다. 한 명은 시어머님의 아들, 그 옆에 나의 아들이, 서로 손을 잡고 걸어간다. 시어머님이 이 모습을 바라봤다면 참 좋아하시며, 웃으셨을 것이다. 난 시어머님의 마음을 떠올리며, 두 아들을 마음껏 눈에 담았다. @김스스로 (안 쓰는 게으름 불태우기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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