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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TAE Nov 09. 2020

맥북으로 음악을 만들 수 있을 줄이야

천덕꾸러기 맥북이 창의적인 음악 작업 플랫폼으로변신하다.

맥북을 처음 만난 건 7년전이었다.


전공 관련 자격시험을 준비중이었는데, 시험에 합격하면 맥북을 사겠노라고 뜬금없이 맘을 먹었다. 그간 아이패드를 쓰면서 애플 제품에 매료된 것도 있고, 업무에서 벗어나 나를 위한 멋진 노트북을 갖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시험은 잘 치뤘고, 결과가 나오자마자 맥북 프로를 질렀다.


맥북을 구입하면서 절대로 MS 윈도우를 깔아 겉만 맥북, 속은 윈도우로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애플이 디자인한 시스템과 용도 그대로 한 번 써보고 싶었다. 나중에 필요해서 윈도우를 구동하는 패러럴즈를 깔기도 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거의 쓰질 않았다. 처음엔 운영체제도, 단축키도 낯설었고, 한/영 변환키도 없어서 헤매었지만 트랙패드의 멀티터치 제스쳐에도 금방 적응했고, 커맨드 키에도 익숙해졌다. 카페에서 사용할 때의 심미적 만족감은 역시나 꽤 근사했다.


다만 거기까지였다. 맥북으로 사용하는 건 자료 읽기와 영화보기, 그리고 아이폰에 음악 넣기 이상의 용도는 없었다. NUMBERS를 엑셀을 대신해서 쓰는 건 정말 불편해서 포기했고, 문서를 만드는 PAGE도 별로 쓸 일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맥북은 영화를 보고 음악 듣는 소모성 기기로만 썼다. 한동안 그렇게 지속되었다.


영상 작업이 필요해서 파이널컷 프로 프로그램을 구입한 후부터 맥북을 조금씩 생산적인 용도로 쓰기 시작했다. 아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짧은 영상으로 만들기 시작했고, 가족들과의 시간은 종종 한 편의 영상으로 정리되었다. 초보적인 단계였지만 영상 작업은 무언가 내 컨텐츠를 만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간간히 개인적인 영상을 만들다가 지금 현장에 발령받은 후로 본격적으로 영상 작업을 하게 되었다. 현장 소장이 발주처 VIP 월간보고를 영상으로 만들고 싶어했다. 당시는 토공사분만 수주한 상태로 건축공사 수주가 절실했기에 내가 하겠다고 자원해서 해봤는데 대단히 만족하시더라. 그렇게 시작해서 1년간 10편 이상의 영상을 만들어 보고했다. 한 달에 한 번 꾸준히 영상 숙제를 하다보니 실력도 제법 늘었고 맥북으로 작업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그리고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했다.


그간 해오던 공부를 잠시 접고나니 음악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맥으로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시도해볼 엄두를 내진 못했다가, 공부 대신 음악을 해보기로 맘 먹으면서 로직 프로 X도 깔고, 마스터 키보드도 구입했다. 똑같은 맥북이지만 마스터 키보드와 로직 프로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기본적인 음악은 충분히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이제 와서야 깨닫게 되었다. 맥북은 더 이상 소모적인 용도의 천덕꾸러기가 아니라 창의적인 작업을 하는 플랫폼으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마스터 키보드는 글을 쓰기 위한 타이핑 키보드 같은 것이다. 음악을 만들기 위해 음에 해당하는 신호를 건반으로 입력하는 장치이다. 자체적으로 소리는 나지 않지만 로직 프로에 연력되면 여러 소리를 만들수 있도록 입력할 수 있게 해준다. 건반도 있고 다양한 노브와 패드가 있어서 리듬도 입력할 수 있고 소리의 속성을 조절할 수 도 있다.


로직 프로는 그렇게 입력되는 신호를 여러 소리로 재현한다. 섬세한 피아노로도 들려주고 풍성한 오르간 소리, 혹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전자피아노 소리로도 들려준다. 글을 쓰고 수정하듯 음표의 높낮이와 길이, 속도도 조정할 수 있다. 때로는 드럼으로 연주할 수도 있고, 재미난 신스 베이스 소리를 만들수도 있다. 거기에 내장되어 있는 각종 이펙터나 플러그인으로 소리를 변형시킬수도 있다. 리버브, 딜레이, 디스토션, EQ 등이 이미 다 자체적으로 내장되어 있다. 그저 몇 번의 마우스 클릭만으로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 낸다.


그렇게 만든 소리를 모아서 음악을 만들 수 있도록 로직은 다양한 툴을 제공한다. Arrange Marker는 송폼의 구조를 쉽게 만들고 바꿀 수 있게 해준다. 믹스를 하기 위한 믹싱채널도 실제 믹서처럼 보여주고, 음압을 높히고 소리 밸런스를 만들어 내는 마스터링도 자체적으로 할 수 있게 해준다. 상상만 할 수 있다면 맥북 안에서 다 해결할 수 있는 것 같다. 로직의 각종 기능을 얼마나 이해하는가에 따라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의 세계가 훨씬 넓어진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

맥북과 로직의 세계는 더욱 그러하다.

그동안 내가 너무 무지했다는 것을 이제와서라도 깨닫게 된 것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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