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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TAE Apr 08. 2021

My Best 3 of 히가시노 게이고

내가 사랑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들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에 진심인 편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마음에 과부하가 걸릴 때에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읽었다. 수학적이라고 해야 하나,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계산처럼 맞춰지는 플롯과 명쾌한 문체, 그리고 과학적인 호기심 등, 좋아할 수밖에 없는 작가다. 주제도 다양해서 같은 배경 유사한 사건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출간된 건 2007-8년 경으로 기억한다. 아마 처음 읽었던 건 초기 작품인 <동급생>이었던 듯싶다. 짧은 호흡으로 간결한 문장과 유기적인 스토리가 재미났고, 그 이후로 꽤 많은 작품을 읽었다. 다작하는 작가여서 계속해서 신간이 나오고 있고, 국내에는 그간 출간되지 않은 작품도 계속 번역되고 있어서 예전 초기 스타일과 지금의 스타일은 꽤 많은 차이를 보인다. 정말 좋았던 작품도 있고, 그저 그런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작품이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를 보여주었다. 덕분에 신간이 출시되면 주저하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


오늘은 내 맘대로 선정하는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Best 3>를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그동안 읽어본 작품들만 언급합니다.



1. 새벽 거리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손꼽히는 작품이라면 베스트셀러인 <나미야 잡화점>이나 <라플라스의 마녀>나,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진 <백야행> 혹은 <용의자 X의 헌신> 일 것이지만 의외로 내게 먼저 생각나는 작품은 <새벽 거리에서>이다. 이 작품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중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범죄를 해결하고 범인을 추리하는 추리소설 본래의 재미보다는, 내가 살아보지 않은 삶을 간접적으로 겪어봄으로써 삶의 지경을 넓히는 문학의 순기능을 경험했다는 측면이 크다.


이 소설은 한 유부남이 회사 내 여직원과 불륜관계가 되면서 생기는 이야기를 다룬다. 남녀 주인공의 관계가 점점 더 가까워지면서 여주인공의 어두운 과거가 드러난다. 그리고 과거의 봉인이 풀리고 진실이 드러나는 과정과 관계의 결말을 그린 이야기이다.


이 소설의 화자는 남자 주인공이다.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처음 불륜을 시작하게 되는 순간의 죄책감과 스릴, 불륜이 지속되면서의 주인공의 심리 상태, 그리고 결말에 가까워질수록 초조한 마음들이 잘 드러난다. 그렇게 흐름을 따라가며 인물의 심리를 경험할 수 있었다.  내가 살아보지 않은 인생과 상황을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것에서 이 책의 의미와 재미가 컸다.




2.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나미야 잡화점이라는 가게가 있다. 이 가게에는 편지함이 하나 있어서 편지로 고민을 상담하면 정성스러운 답변을 받을 수 있다. 그렇게 오랜 시간 편지로 고민상담을 하다가 주인이 죽고나서 가게는 문을 닫는다. 그런데 33년이 지난 후에 딱 하루 나미야 잡화점의 고민상담이 부활한다. 과거의 이야기가 현재로 이어지고, 현재의 이야기를 과거로 전하며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연과 관계, 그리고 따뜻하고 배려 깊은 마음들이 이 소설의 중심축이다.


꽤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던 작품이다. 추리소설의 일반적인 형식인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플롯으로 전개되지만 이 작품에서는 살인사건이나 범죄가 나오지 않는다. 대신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대단하지 않은 여러 보통 인물들의 각자의 이야기가 편지라는 매개체를 통해 엮이고 풀린다. 수수께끼를 풀어간다는 점에서 재미있고, 밀도 있는 이야기가 참 인간적이고 따스하다.


스포일러는 하지 않겠지만 가장 인상적인 사연은 백지의 편지였다. 그저 확인차 보낸 의미 없는 것일 수도 있었던 백지 편지를, 깊은 고민과 정성을 담아 답장된 그 편지 덕분에 여러 인물들의 삶이 변화된다. 그 백지를 깊이 바라보고 의미 있게 답변해준 순간이 이 소설의 백미라고 생각한다.


추리소설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행복해질 것이니.




3. 연애의 행방

연애의 이야기가 이렇게 재미난 퍼즐 맞추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연애와 관계는 사랑의 화살표처럼 그 방향에 따라 재미난 혹은 복잡한 양상을 띄는데, 이를 추리소설처럼 얽히는 관계와 궁금증을 재미나게 풀어낸 것이 이 소설의 묘미이다. 스키와 스노보드를 좋아하는 작가가 설산을 배경으로 쓴 네 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스노스포츠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다.


여러 이야기가 퍼즐처럼 엮여있지만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이 대사였다. 남자 주인공 중 하나가 여러 가지 상황을 계획했다가 자기 꾀에 자기가 빠지게 되면서 오래 미뤄왔던 결정을 하게 되는 이 장면을 이 한마디로 표현한다.


‘제기랄, 완전히 당해버렸어-.’


역시 스포는 하지 않겠지만,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길 권한다. 끝까지 쫄깃쫄깃한 재미를 느끼실 수 있을 것이다.




4. 캐릭터와 장르, 스타일로 보는 다른 작품들

3편만 언급하긴 아쉬우니 캐릭터와 장르, 스타일로 좀 더 소개해볼까 한다.


다작 작가답게 활용하는 주요 인물도 한 둘이 아니다. <라플라스의 마녀>와 <마력의 태동>에서 나오는 ‘마도카’는 유체의 흐름까지 읽으며 물리학의 난제들을 감각적으로 풀어내는 천재 소녀이다.  <탐정 갈릴레오>, <용의자 X의 헌신>, <한여름의 방정식>, <성녀의 구제>, <갈릴레오의 고뇌>에서 활약하는 과학자 ‘유가와 마나부 교수’, <매스커레이드 호텔>, <매스커레이드 이브>, <매스커레이드 나이트>에서 활약하는 ‘닛타 고스케 형사’의 이야기도 재밌다.


‘가가 교이치로 형사’ 시리즈인 <잠자는 숲>, <악의>,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내가 그를 죽였다>, <거짓말, 딱 한 개만 더>, <붉은 손가락>, <신참자> 등은 좀 무거운 톤으로 범죄 사건을 진지하게 다룬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초창기에는 학원물 스타일의 소설을 썼다. 출간된지는 오래됐지만 학교를 배경으로 사건과 풋풋한 청춘의 이야기를 다루는 <동급생>과 <방과 후>도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가의 단편 모음집도 여럿이다. <그대 눈동자에 건배>나, <교통경찰의 밤>, <명탐정의 규칙>, <탐정클럽> 등 짧은 호흡으로 여러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마치며

참 많이도 읽었다. 서두에서도 언급했지만, 그동안 스트레스를 감당하고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는데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의 도움이 컸다. 어려운 순간, 힘든 시기를 그의 소설을 읽으며 함께 버텨온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권하는 바이니 한번 읽어보시라. 어떤 작품이든 일단 시작하면 꽤 많은 재미난 이야기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P.S 훌륭한 소설가가 꼭 좋은 에세이 작가는 아닐 수 있다. 작가의 에세이에는 약간 호불호가 생긴다. 스노보드에 대한 에세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무한도전>은 흥미롭게 읽었지만 최근 에세이는 그냥 그렇다. 소설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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