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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TAE May 21. 2021

Slow Starter와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

나에게 쓰는 꾸준한 성장에 대한 이야기

1. 월간 윤종신 <Slow Starter>와 데이비드 엡스타인의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


월간 윤종신을 기고한 이후로 윤종신 음악을 자주 듣고 있다. 유튜브의 알고리즘 덕분일까, 월간 윤종신의 음악이나 플레이 리스트 자동 재생이 많아졌고, 최근 우연히 <Slow Starter>라는 노래를 듣게 되었다. 2018년 1월에 나온 이 곡은 윤종신 본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았다며, 우리 대부분 다 Slow Starter이기에 지금의 뒤쳐짐이나 답답함에 좌절하지 말자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소개한다.


다 그랬어 다 뭐든지 늦었어
뭐든 빨리 깨닫지 못했던 나
너의 소중함들도 내게 온
그 기회들도 그땐 바보처럼

앞서가던 그 친구들의
뒷모습은 내게 거대한 그늘로
애써 따라가려던 버거웠던 그 몸부림 속에
나도 모르게 좁혀지던 그 거리는


가사가 참 솔직하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최근 읽은 데이비드 엡스타인의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이라는 책이 생각났다. 반짝하는 잠깐의 화려한 성공이 아니라 오랫동안 꾸준히 음악을 하며 성장하는 아티스트의 모습과 결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 '조기 교육과 신중한 훈련을 통한 성공'이라는 환상과 <샘플링 기간>의 중요성


이 책의 원제는 <Range>이다. 좁은 전문성이 아니라 폭넓은 영역이라는 의미의 레인지이다. 전체 내용으로 볼 때 영어 원제의 의미가 더 맞다는 생각도 들지만, 서두에서 꺼내는 두 인물의 사례를 보면 국내 도서 제목 중 <늦깎이 천재>라는 표현도 괜찮다.


어릴 때부터 재능을 보여 조기 교육과 집중 전문화를 통해 최정상에 오른 골프 선수와, 이것저것 해보며 다양한 구기 운동을 경험한 이후 늦게 입문하였지만 30대 이후에도 세계 정상을 지키고 있는 테니스 선수를 비교한다. 바로 타이거 우즈와 로저 페더러이다.


타이거 우즈는 조기 교육과 집중 훈련의 표상 같은 사례이다. 어렸을 때 골프 재능을 알아본 부모에 의해 엘리트 교육을 받았고, 집중하여 훈련한 덕분에 정상에 올랐다. 어떤 분야든 고도로 전문적인 훈련을 받으며 쌓이는 시간만이 실력 향상의 기여 요인이라는 1만 시간 법칙의 완벽한 예시이다. 심지어 우드의 아버지는 자신의 교육법을 책으로 쓰기도 했다. 가능한 일찍 시작하고, 신중하고 집중적인 훈련을 통해 성공할 수 있다는 환상은 우즈의 사례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로저 페더러는 정 반대의 경로로 정상에 올랐다. 페더러는 처음부터 테니스를 시작한 건 아니었다. 다양한 구기운동을 경험해보고 이것저것 조금씩 해보면서 놀았다. 심지어 부모는 그를 운동선수로 키울 생각도 전혀 없었다. 테니스를 시작한 후 코치가 그를 더 잘하는 상급자 반으로 옮기려고 하자 그냥 친구들과 같이 하는 원래 반으로 가고 싶다고 할 정도였다. 통상의 선수들보다는 늦은 나이에 시작했지만 샘플링 기간을 통한 탐색과 영역의 확장, 그리고 다양한 구기운동 기술을 배운 결과로 최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두 가지 사례가 보여주는 성장의 접근이 양 극단에 있고, 때문에 반론도 만만치 않지만, 로저 페더러뿐 아니라 다른 많은 사례들도 '샘플링 기간을 통한 탐색 후 한 분야에 집중하여 성공'한다는 명제를 증명한다. 그들은 덜 체계적인 환경에서 다양한 스포츠를 경험하고, 그런 경험으로 몸을 쓰는 기술을 폭넓게 습득한다. 그리고 자신의 적성과 능력을 알게 된다. 이런 <샘플링 기간>을 거친 후에 한 분야에 집중하면서 기술을 갈고닦는 것이다.


스포츠 세계와 달리 현실은 사악한 세계이다. 이런 사악하고 빠르게 변하는 세계에서 필요로 하는 능력은 새로운 개념들을 연관 지어서 다양한 맥락에 두루 쓸 수 있는 개념 추론 능력이다.

 

스포츠의 세계에서 뿐만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규칙과 공간이 제한된 스포츠보다 현실은 더 복잡하다. 같은 패턴과 같은 사례가 반복되지 않고 더 많은 다양한 요인들로 이루어져 있다. 조기 교육과 집중 훈련으로도 분명 성장할 수 있지만 매우 좁은 전문화의 길로 연결될 뿐 창의성과 성취로 이어지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3. 비범함으로 이어지는 길은 Range이다.


우리의 가장 큰 강점은 협소한 전문화가 아니라 그 반대편에 놓여 있다.
바로 폭넓게 종합하는 능력이다.


<체스의 99퍼센트는 전술이다>라는 말이 있다. 과거 체스 선수들은 수많은 패턴의 공부를 통해 수를 빠르게 인지하고 대응하는 방법으로 성장했다. 큰 그림을 그리는 전략보다는 세부적인 전투를 관리하는 전술을 중시하는 방법이었다. 수많은 대국의 기보를 암기하고 공부하여 패턴을 익히는 것이 비로소 체스의 전문가가 되는 길이었다.


IBM의 슈퍼컴퓨터 딥블루는 97년 최고의 체스 선수 가리 카스파로프를 이겼다. 컴퓨터와의 경기에서 패한 이후 카스파로프는 컴퓨터와 인간이 한 조가 되어 경기하는 어드밴스드 체스 대회를 열었는데, 그 대회에서 이전에 쉽게 이겼던 상대에게 비겼다고 한다. 전술에 강한 그의 강점이 컴퓨터와 결합한 대회에서는 무용지물이었던 것이다. 이후 많은 다양한 실험을 통한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인간이 컴퓨터를 이기려면 인간의 전문성 중 가장 쉽게 대체할 수 있는 부분인 전술은 외부에 맡기고 창의성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선천적인 사시였고 수의학을 공부하다 피아노로 전향한 재즈 피아니스트 데이브 브루벡의 사례도, 재즈와 클래식 양 분야에서 업적을 남긴 체키니의 사례도 메시지는 동일하다. 훈련의 폭이 전이의 폭을 예측한다는 것, 즉 더 다양한 맥락에서 학습할수록 학습자는 구체적인 사례에 덜 의지하고 추상적인 모델을 구축한다. 전에 접한 적이 없는 상황에 지식을 응용하는 일을 더 잘할 수 있고, 그것이 창의성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4. 단기 기획을 통한 모험과 성장의 선택


언뜻 들으면 매우 불리한 인생 전략처럼 들리는 행동이 수반된다. 바로 단기 기획이다.


<Range>라는 단어는 페더러처럼 전문성의 초기에 <샘플링 기간>을 거치는 뜻도 있지만, 여러 분야를 겪은 후에 늦게 정착한 분야에서 성취를 나타내는 <영역의 폭넓음>이라는 의미도 있다. 저자는 토드 로즈와 오기 오가스의 <다크호스> 프로젝트를 통해 그 의미를 설명한다.


<다크호스>에서는 저자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한 이들 중 직선적인 전문화가 아니라 굴곡진 경력을 가진 이들에 대해 연구를 시작했는데, 대상을 찾다 보니 대다수가 특이한 경로를 따라왔다는 것이다. 그들은 인터뷰하면서 자신의 성장경로가 비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었다. 자신이 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분야를 찾고 그 열정에 따라 움직인다. 그들의 공통 전략은 단기 기획이다. 처음부터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바로 눈 앞의 모험과 성장을 선택하는 것이다. 


마이클 크라이튼은 글을 써서 생계를 유지할 자신이 없어서 의사가 되었지만, 결국 싫증을 느끼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의학을 공부했던 경험은 그가 인기 있는 작품을 쓰는 배경이 되었다. 논픽션 작가이자 영화 제작자인 세바스찬 융거는 수목관리자로 일하면서 나무를 다듬다가 사슬 톱에 다리를 찢기는 경험을 하면서, 위험한 직업에 관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쓴 글의 결과물이 영화 <퍼펙트 스톰>이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다지 변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나이가 들고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선호도와 호기심이 많이 달라졌는데도 말이다. 다크호스의 선택은 자신의 개개인성에 대한 이해와 상황의 맥락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현재의 나는 과거와 다르고, 과거의 선택과 비교하여 현재의 강점과 달라진 호기심 등 맥락을 고려하는 것이다. 이 맥락을 고려하여 선택하기 위해서는 결국 직접 해보는 수밖에 없다. ‘먼저 행동한 뒤에 생각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열정과 끈기가 있는지 묻는 대신에, 우리는 <언제> 그러한지를 물어야 한다. 오가스는 이렇게 말했다. “누구든 자신에게 적합한 맥락에 데려다 놓으면 더 열심히 일할 것이고 바깥에서 볼 때 더 열정과 끈기가 있는 양 보일 것이다.”



5. 결론 : 비교하거나 뒤처진다고 느끼지 마라


이 책이 건네는 조언은 명확하다. 지금의 나 자신이 “뒤처진다고 느끼지 말라”는 것이다. 


더 젊은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오늘의 자신을 어제의 자신과 비교하라. 사람은 저마다 발전 속도가 다르다. 그러니 누군가를 보면서 자신이 뒤처져 있다는 느낌을 받지 말기를. 당신은 자신이 정확히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조차 모를 수 있다. 그러니 뒤처져 있다는 느낌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하면서 기꺼이 배우고 수정하고, 필요하다는 마음이 들면 이전의 계획을 포기하고 완전히 방향을 바꾸기도 하라.


앞서 서두에서 언급한 <Slow Starter>가 발매된 ’18. 1월 월간 윤종신의 곡 소개에서 윤종신은 자신의 경험과 함께 같은 결의 이야기를 전한다.


“저는 저의 40대가 무척 알찼다고 생각하는데요. 그게 가능했던 건 2, 30대 시절의 무모한 시도와 실패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고, 덕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좀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거든요. 생각처럼 잘 안 됐을 때, 인생이 꼬였다고 느껴질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뭔가를 시도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저의 재산이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오랜 경험과 그 경험을 통해 얻게 된 생각들’이라고 생각하고,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능력’보다는 ‘태도’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요.”


윤종신은 월간 윤종신으로 발행한 <좋니>로 데뷔 후 27년 만에 처음으로 공중파 방송에서 1위를 했다. 예전부터  발라드 가수로 유명했어서 수상도 많았을 줄 알았는데 그동안 상과는 그리 인연은 없었나 보다. 하지만 꾸준히 음악 하기 위한 길을 택하고 느리게 조금씩 경계를 넓혀간 결과로 수상을 이루어냈다는 것은 참 의미 있다. 그의 꾸준함과 시행착오를 통한 성장의 경험을 이 노래 말미의 가사에서 엿볼 수 있다.


난 아니라고 타고 난 게 없다고
가진 게 없는 나라고 매일 부르던 노래
너무 부족하다고 매일 메꾸려 했던
그 팔에 흐르던 땀은
증발하지 않아 차곡차곡
내 빈틈에 이야기들로 차 난 이제서야

포기하지마 아프면 아픈 얘기
그 모든 순간순간 나만의 이야기야
멈추려 하지 마
분명 날아오를 기회가 와 좀 늦더라도
내 눈가의 주름 깊은 곳엔 뭐가 담길지
궁금하지 않니 답은 조금 미룬 채
지금은 조금 더 부딪혀봐


지금의 모습에 실망하지 말고 천천히, 꾸준히 성장하기를 응원한다. 나 자신을 포함해서 말이다.



P.S-1 함께 읽으면 좋은 글 : 다크호스

올 초에 위에서 언급한 <다크호스>에 관한 글을 썼습니다. 개개인성을 이해하고 미시적 동기를 추구하는 삶의 만족감과 성장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정말 좋은 책입니다. 이 글과 함께 읽어보시면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으실 거예요. 관심이 있으시다면 책도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https://brunch.co.kr/@kimthun/4


P.S-2 <Slow Starter> 노래도 같이 들어보세요.

https://youtu.be/-rgfHqr1t8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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