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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탱글통글 Jan 04. 2017

시시콜콜한 것이 좋아

단기 알바를 하고 있다. 원래는 3일만 하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한 달을 넘어가고 있다. 대단한 이유는 아니고, 규칙적인 생활을 시켜주고 돈도 꽤나 주는 데다 친구들이 듣기만 해도 부들거리는 '회사 생활'이란 것이 궁금하기도 했다. 항상 한 발자국 뒤에서 들어왔던 어마 무시한 그곳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는 기회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다. 어쩐지 모두에게 사랑받는 느낌도 든다. 이유는 모르지만 정말 많은 직원들이 끊임없이 나를 붙잡고 떠들고는 한다. 혹시나 만약에 나를 싫어하는 직원이 있을 수도 있지만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뭐 성격상 그 사람이 면전에 대고 "난 당신이 정말 싫어요"라고 말한다 해도 '엥?? 그래서요?'라고 생각할 것이 뻔하지만.. 상대방만 속 터질 뿐이다.

첫날에 통장사본과 신분증을 복사하고 20분가량을 회사의 보안 유지와 사진 촬영 금지, 외부 발설 금지 등을 듣고 서약서까지 쓴 것에 반해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보안을 유출하라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은 터무니없이 단순하다. 이틀 만에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손만 움직이는 자신을 발견했다. 정말 시시콜콜한 하루하루다.




1월의 오후 4시에는 노란 햇살이 쏟아진다.


내 자리는 1시 방향으로 큰 창문이 있어서 오후 4시가 되면 노랗게 변한 햇빛이 책상 위로 펼쳐진다. 그럴 때면 잠시 일을 멈추고 주황과 노랑이 뒤섞인 빛들을 타고 올라가는 먼지들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증조할머니 그리고 고삼 시절 수업시간과 병상에서 천천히 바나나를 까먹던 나를 추억하곤 한다.

병실에 이따금 노란 햇살이 비추는 날엔 바나나를 찾곤 했었다. '노란 햇살에는 노란 바나나지'라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다 헐어버린 입으로 바나나를 녹여가면서 '바나나우유는 노래야 할까 하얘야 할까?' 따위를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정말이지 시시한 추억이다.

 

나는 역시나 시시콜콜한 취향의 사람이. 마트의 카레가 반값 세일을 한다든지, 집 앞의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든지 단골 빵집에 새로운 빵이 나왔다든지 하는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돌아보면 소소한 것들로 이루어진 생각보다 보잘것없는 인생이지만, 그런 시시콜콜 지나온 인생을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되는 것이다. 날 키득거리게 하는 건 언제나 그런 시시콜콜한 것들이니까.

17.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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