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광활한 우주에서 이미 사라진 책을 읽는다는 것
'책은 웬만하면 새것을 사서 보자!'라는 마음입니다. 특별한 철학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어렸을 적부터 줄곧 그래 왔습니다.
서점에 가서 신중하게 마음에 드는 이야기꾼을 선택해 집으로 데리고 옵니다. 여유롭게 읽은 뒤 순록의 머리를 장식하는 사냥꾼의 마음으로 책장에 진열하고 뿌듯해하는, 그런 모든 과정의 '취미로서의 독서'를 즐깁니다. 그래서 제 기억으론 작년까지 한 번도 인터넷이나 중고서점을 이용했던 적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쩐지 수집하게 된 책에 대한 애정이랄까, 묘한 집착 같은 것이 생겨버렸습니다. 책에 밑줄을 치거나 접는 행위는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물론 책을 보기 전에 손을 씻고 음식 근처에선 읽지도 않을뿐더러, 심지어는 커버 종이나 띠 같은 것들을 소중히 보관하기도 합니다. 딱히 고쳐야겠다는 생각도 없습니다. 뭐 이 정도쯤 다른 단점들에 비하면야... 같은 마음이랄까요.
저에게 지난주는 유독 힘든 주간이었습니다.
몸은 안 좋고,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잔뜩 해야만 하는 우울한 나날. 하루는 위로받고 싶어 찾아간 서점에서조차, 벽면을 가득 메운 이름 모를 수많은 신간에 압박감만 느끼고 돌아오는 밤이었습니다.
그러다 콜라를 사러 간 대형마트의 4층에 있는 중고서점을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저렴하고 더러운 책들이 진열된 낯설고 신선한 분위기에 약간은 기분이 좋아져서 이 책 저 책을 살펴보고 다녔습니다. 중고서적에는 시간의 흔적이 묻어 있기에 누군가의 메모와 편지들을 찾아 읽는 즐거움도 있었고요.
그렇게 신나서 책을 살펴보다 문득, 나 자신도 중고서적으로 살아가고 있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유야 어쨌든 결국 원래의 보금자리에서 쫓겨나 각자의 세월과 얼룩을 지닌 채, 필요 없어진 것들의 종착지에서 새로운 인생을 기다리는... 뭐 그런 공통점이랄까요...
그래서 어쩐지 애틋한 마음이 들어 약간은 충동적으로 생에 첫 중고책을 구매했습니다. 그러고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책을 물티슈로 닦고 제로콜라를 얼음 컵에 따른 뒤, 읽어 내려갔습니다. 재미는 없었다는 게 약간은 반전이지만, 읽는 내내 어쩐지 마음만은 즐거웠습니다.
'좀 지저분하고 재미없어도 결국 알맞은 보금자리를 찾는 해피엔딩이라니.. 부러워...'라고 생각하면서요.
별빛도 잠든 고요한 밤, 저도 이 중고책 같이 되기를 바라면서 뜬금없는 위로를 받은 하루였습니다. 그래도 역시 중고서점을 자주 이용할 것 같지는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