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살 인생 적응기(완)

29살 혈액암 환자의 인생 적응기

by 김탱글통글

조혈모를 이식하고 병원을 퇴원하면서, 영양제를 끊고 처음으로 먹은 음식은 삶은 감자였다.

아니, 정확히는 오븐으로 익힌 감자였다.


항암치료로 입 안이 만신창이가 되어있던 나는 미각이 엉망진창이 되어있었다. 물을 마시는데 비누 맛이 나고 감자를 먹으면 샴푸를 치약에 섞어 먹는 느낌이 났다. 물론 실제로 샴푸에 치약을 섞어 먹어본 적은 없지만.

나는 면역력이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었다. 의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신생아”의 몸 상태와 같다고 한다.

키 178cm의 우량아는 항상 깨끗하고 완전히 조리된 음식만을 먹어야 한다. 영화 ‘마션’에서 화성에 갇힌 주인공이 감자만 주구장창 먹듯이 몇 주간을 감자만 먹어댔다.

matt-damon-shirtless-martian-movie-2015.png 감자만 먹으면 스트레스로 다크서클이 생긴다.


오븐에 익힌 감자는 겉이 메말라 있다. 포크를 이용해서 겉을 힘주어 가르면 갈라진 틈 사이로 은빛으로 반짝거리는 김이 ‘팝!’ 하고 솟구친다. 메마른 표면에 비좁게 갇혀있던 촉촉함이 틈새를 비집고 나와 터지듯이 분출한다.

삶은 음식에서 나오는 김과는 다르게 생동감 있는 그 모습이 아름다워서 몇 번을 갈라보아도 질리지가 않았다.


평상시에는 주로 산책을 하거나 책을 읽으면서 보냈다. 마침 걷기 좋은 봄 날씨여서 집 주변 공원을 느린 걸음으로 마냥 돌아다녔다.

이맘때쯤에는 수많은 꽃들이 피어난다. 공원의 외각을 따라 걷다 보면 수많은 개나리꽃들이 노란색으로 반짝거린다. 연분홍색 진달래꽃도 곳곳에 피어있다. 눈부시게 강렬한 흰색의 빛이 캔버스가 되어 모든 풍경을 담아낸다.

시력이 안 좋아져서 봄의 색들이 모네의 그림같이 경계가 불분명하게 뒤섞여있다.

아프지 않았다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아름다움이었다.

Irises+in+Monets+Garden+Claude+Monet.jpg


꽃 주변에는 항상 나비가 날아다닌다. 나비가 날아다니는 동선을 쫒아가다가 눈이 피로해져서 금세 포기하고는 한다.

나비의 비행은 불규칙하다. 이걸 ‘비행’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는 건지 모르겠다. 공기에 걸터앉아 있는 느낌이다.

인생을 나비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바람을 가르며 비행하기 보다는 공기에 기대어 흘러가는 곳으로 떠내려가는 삶이 좋다.

높게 비행하는 인생은 꽃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다. 나도 언젠가는 나비처럼 부드럽게 인생에 녹아내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나는 다시 보통의 20대로 돌아왔다.

물론 그 이후로도 갈비뼈를 콧대에 박아 넣는 등 여러 가지 수술과 치료를 받고 있지만 어찌 되었든 내 인생에서 최고로 20대 다운 순간을 즐기고 있다.

대학교도 복학했다. 건물들이 새로 올라가고 동기들도 다 떠나갔는데 나는 이제야 돌아왔다. 쓸쓸했다.

하지만 새로운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07학번이라고 말하면 석유가 말을 한다면서 공포와 두려움에 떨었지만 그래도 다들 잘 어울려주었다.

친해진 15학번 친구와 카페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했었다.


“나 88년 서울 올림픽 할 때 태어났어.”

“세상에...”

“나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국민학교였어.”

“우와...”

“중학교 때까지도 버스 토큰이 있었어.”

“오오...”


뭐가 그렇게 놀라운 걸까. 나에게는 당연한 일인데. 이 친구는 마치 고려시대의 백성과 대화하는 것처럼 내 추억에 모든 것을 신기해한다.

“어렸을 적” 이란 표현을 쓰기에는 아직 많이 민망한 나이지만, 내가 지금보다 더 많이 어렸을 때, 나는 세상의 모든 것에 신기해했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새로웠다.

귤이 한자로 ‘귤 귤(橘)’ 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충격이란.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신기한 것들이 줄어들어간다. 점점 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이제 웬만한 것들에는 잘 놀라지도 않고 무덤덤하게 되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양손 가득 금가루를 쥐고 태어난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손을 꽉 움켜쥐어서 손 틈 사이로 세차게 빠져나가는 금가루들의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애쓰는 것뿐이다.

sand-slipping-through-hand-elusive.jpg


인생은 항상 무언가를 잃어가는 과정의 연속이다. 사실 알고 싶고 느끼고 싶은 것은 아직도 많은데, 인생은 얻는 것에 비해서 포기해야 하는 것들만 너무 많아져 간다.

병원에 있을 때는 항상 죽고 싶어 했는데, 막상 죽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나는 만족하며 미련 없이 죽을 수 있을까.

과연 ‘잘’ 죽을 수 있을까.

사실 어떻게 해야 ‘잘’ 죽는 건지도 나는 모르겠다.

죽는 것에도 방법이 있는 것인가. 정말이지 귀찮다.


최근에 다시 신촌의 세브란스 병원에 내원할 일이 있었다. 4년째의 추적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이다.

오랜만에 들른 병원은 여전히 어둡고 활기차다.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환자들은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 익숙하다. 나도 저들 중 하나였으니까. 이곳에 오면 가끔씩 알 수 없는 편안함을 느낄 때가 있다. 마치 스톡홀름 증후군 같이 병원에 정신적으로 동화되어 버린 걸까.

결과는 좋게 나왔다. 다음 피검사를 마지막으로 4년간의 추적검사를 종료하겠다고 했다.

진료를 마치고, 예전에 치료를 받았던 제중관 병동을 찾아가 보았다. 기억을 더듬으면서 미로같이 복잡한 길을 더듬거리며 찾았다.

찾아간 병동은 인턴들의 숙소로 바뀌어 있었다. 암 병동 건물이 새로 생기면서 제중관 암 병동은 조용히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내가 치료를 받았던 순간들도 같이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기묘한 세계에 들어갔다 탈출한 것만 같다.

그렇게 힘들었던 기억인데 미묘한 이 기분은 뭘까.

추억은 천천히 모든 것을 미화시킨다.

그리고 살아온 삶은 서서히 아름다워져 간다.





다음에는 후기 인사와 앞으로 쓸 글들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거창한 거에 비해서 막상 내용은 없겠지만 인사 한번 드리는 것이 예의인 것 같아서..ㅎㅎㅎ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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