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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희 Sep 14. 2021

따땃한 푸들 난로 (중형)

중형 울트라 롱다리형

루돌프를 처음 만난 , 성인 여성 치고도 유난히 작은  손에 돌프는 몸이  안길 만큼 자그마했다. 뼈가 가늘고  견종인 푸들이라  그랬겠지만 어찌나 가볍고 야리야리하던지.  식구를 모시고 집으로 향하는, 심장이 보름달만큼 부풀어 오른 저녁 . 차를 몰던 나는 마치 운전면허 도로주행 시험 중인 수험생처럼 각이  잡혀 운전을 했더랬다. 보조석에서 돌프를 의전하던 남편은 갓난아기를 처음 안는 사람처럼 덜덜덜, 덜덜이가 됐더랬다.


한동안 우리 부부는 작은 형상을  온갖 물체들을 마주하면 이렇게 말했다.


마트에서 미니 수박을  때면 

"어? 되게 작다. 우리 돌프 같네."

백화점에서 앙증맞은 아기 신발을 볼 때면

"어? 꼭 우리 돌프 닮았어."

심지어 조금만 아담한 차가 지나가도

"어? 돌프처럼 작고 소중해!!"


푸들은 대다수 나라의 애견협회에서 몸의 크기에 따라 3가지 구분법을 채택하고 있다. 토이 푸들 - 미니어처 푸들 - 스탠다드 푸들. 토이 푸들은 흔히 3kg 전후의 가장 작은 강아지를 말하며, 가장  스탠다드 푸들은 보자마자  마리 양이 떠오를 만큼 키와 몸집이 크다.


돌프는 3.6kg 정도 나가는   먹은 성견인데, 그의 부모가 작은 '토이 푸들'이라고 들었던 것과 달리 이제는 꽤나 키와 몸무게가 나가시겠다. 토이 푸들이건 토희 푸들이건 우리 부부는 아무 푸들이래도 상관이 없어 남편은 가끔, 돌프야  토이 푸들이 아니고 스탠다드 푸들 새끼야, 라는 실없는 농담으로 예상보다 커진 돌프를 놀려대곤 한다.


털 찐, 스탠다드 푸들 새끼

 

새끼는  귀엽다는 말이 있듯 작은 강아지도 물론 예쁘지만 사실 나는 덩치가  있는 강아지도 못지않게 좋아한다.  통통하고 보들 따땃한 댕댕이 덩어리를  팔과 가슴팍으로  아름 끌어안는 기분은 작은 강아지에게서 결코 느낄  없는 황홀경이다. 돌프가 작았을 때는 서로를 안는다기보다 내가 그를 '안아준다' 느낌이었다면 몸집이  커지고서는 쌍방의 느낌이 생겼다. 면적이 넓어지니  좋은 그의 체온이  풍성히 다가오는 것은  어떻고. 한마디로  '안는 ' 두피부터 발가락  신경 세포까지 완전히 이완시키는 휴양인데, 몸과 마음이 보양되는  기분을 지구 상의 모든 인류가 느껴봤으면 싶다.


보더콜리에 이어 지능이 높은  2위에 랭크되어 있는 푸들은 그래서인지 교감능력 또한 뛰어나다.  능력이 너무 뛰어난 나머지 안타깝게도 푸들에게는 숙명 같은 불치병이 있다. '분리불안'이다. 물론 세상만사에 100퍼센트라는  없으니 '푸바푸', 푸들 바이 푸들이지만 많은 푸들들은 가족과 떨어져 있는 상황을 몹시 좋아하지 않는다. 분리불안은 혼자 분리된 상황에 불안이 오는 증세인데 경우에 따라서는 너무나 안타까울 만큼 이상행동을 보이는 개들도 있다. 그런 것에 비하면 돌프는 감사하게도 혼자 놀고 혼자 휴식하는 법을 아는 편이다. 그러나 그런 편이라는 것일  물보다 진한 피가 어디 가랴. 소파가 이리 넓은데도  다리 위에 착석하는 것은 예사이시고, 애견 운동장이 이렇게 광활한데 '무릎 강아지' 행색을 면치 못하는 돌프씨다. 매일  잠에  때는  오른팔과 겨드랑이에 테트리스처럼  맞춰 몸을 뉘이고, 어떤 날은 누워있는 나의 상반신을 침대 삼아 그냥 퍼질러 자기도 한다.

 

ⓒ 2021. 토희 all rights reserved.

 

그렇게 자다 보면 어느덧 셋이  침대에 뒤엉켜서 자게 되는데 팔다리는 어찌나 긴지 그가 침대의 반을 차지하고, 우리 부부가  나머지 반을 나눠 자야 하는 아이러니가 이어진다. 3.6kg이라는 작은 덤벨 뺨치는 무게 덕에 다리가 찡하게 저려오고, 자다가 가위에 눌려  헛소리에 화들짝 깨기도 하지만 나는 이런 돌프가 좋다. 본인 몸집에 자기객관화가 안되는  같지만  어떤가. 분리불안  있으면 어떤가. 개가  먹고,  싸고,  놀고,  자면 그만이지, 대단히  부러지고 완벽히 훈련된 개가 아니어도 충분히 좋다.

  

더구나  품에 자주 파고드는 교감능력 만랩의 돌프 덕에  얼마나 따뜻하고 포근한 나날들인지 모른다. 그의 뭉근한 온기가  것과 하나로 포개지는 순간이면 핑크빛 노을을  때처럼 마음이 찡하게 얌전해진다. 입덧으로 골골대는 요즘,  통통한 중형 난로는 나에게 진통제이자 수면제가 되어준다. 전생에 아무래도 돌프에게  보였던 건가 싶다. 이번 생에 이렇게 복을 많이 받아도 될런지.


혼자서도 잘 쉬어요
나는야 루돌푸들


 그대에게 산책으로 보답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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