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넘게 살아도 헤매고 있잖아

수행을 시작한 계기

by 토희

30대라는 어엿한 어른이 되어서도 마음의 방황을 하는 사람일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때쯤이면 평안으로 무장한 마음을 펼치며 거침없이 할 일을 해나가는 그런 사람일 줄 알았다.


아홉 살 남짓이었을까. 우리 집은 408호, 내 친구 진주는 같은 층 412호에 살았다. 자는 시간 빼고 붙어 놀던 진주와 그 날 따라 말다툼을 했다. 진주네 엄마는 전업 주부로 대부분 집에 계셨고 우리 엄마는 워킹맘이었다. 나는 아무도 없는 집에 털털 돌아왔다. "이진주 싫어!" 텅 빈 마음에 묻어 나는 쓰라린 느낌을 지우고 싶어 혼자 이리저리 궁리를 해봐도 모르겠더랬다. 그럴 때 어린 내가 아는 쉽고 빠른 방법은 텔레비전을 켜는 것이었다. 그렇게 빈 방에서 하염없이 텔레비전을 봤다. 그러다가 꼬마 뇌리에 한 생각이 스쳤다. ‘이것만 보고 있는다고 기분이 없어지진 않던데... 어른이 되면 달라지겠지?’


ⓒ 2021. 토희 all rights reserved.


고등학교 1학년. 복잡 미묘한 여자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입시 환경에 놓인 학생 신분으로서 어느 하나 내 모습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이번엔 나에게 컴퓨터가 있었다. 독서실 컴퓨터 속에 숨어 거무튀튀한 감정을 피해 미꾸라지처럼 도망 다녔다. 유약한 멘탈을 가진 나는 감정을 마주할 용기가 도무지 나지 않았다. ‘어? 잠깐만. 이거 몇 년이 흘렀는데도 똑같은 거 맞지? 어른이 돼서도 이런다면 좀 무서운데...' 그런 속에서도 나는 아프지 않으려 요령껏, 꿋꿋이 살아갔다.



마음 한켠의 무게감은 대학 생활을 마치고 사회에 나오면서 한층 농밀해졌다. 직장이라는 조직은 환경을 '선택할 수 없는' 본격 사회생활의 장이었다. 이전까지는 허릿춤에 선택의 열쇠를 차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책임만 따른다면 언제든 내 마음 따라 상황을 선택할 수 있는 열쇠. 그렇지만 그곳은 다르게 다가왔다. 선택보다는 수용과 억제 그리고 인내가 잘 어울리는 곳이라 느껴졌다. 월급은 업무의 대가보다 감정 노동의 대가라는 유행어에 공감했다. 한참 커리어를 쌓아야 할 중요한 시기라 생각한 나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더욱 나를 옭아맸다. 내 색깔을 없애야 한다는 생각에, 그러지도 못하면서 부단히 애를 썼다.


그러다 감정 탱크에 누수가 생기면 손에 얼른얼른 잡히는 것으로 틀어막았는데 그건 주로 외부의 요인이었다. 친구들과의 만남, 연애의 즐거움과 안락함, 여행, 음악, 맛있는 거, 예쁜 거, 소소한 쇼핑과 가끔의 술이 누수를 모른 척하며 틀어막는 것의 감사한 수단이 되어 줬다. 모순적이게도 임시방편 치고는 나쁘지 않은 삶이었다. 그러나 현실이란 곳이 24시간 그것에만 의지할 수 있던가. 언제든 감정의 문제는 지뢰밭처럼 도사리고 있었고 지뢰를 밟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면 감당하기 버거운 괴로움이 나를 사로잡았다. 한없이 침잠하고 남몰래 꾸역꾸역 눈물을 삼켰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뭘 모르고 있기에 나는 이토록 어렵다고 헤맬까? 방황에는 늘 이런 식의 의문이 자석처럼 따라붙었다. 주변에 어렴풋이 이야기를 꺼내면 "다 그렇게 사는 거지, 안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라는 공허한 위로의 말이 되돌아왔다. 그 말이 설령 대부분의 사람이 살아가는 보편적인 인생이라 해도 '나는 왜 헤맬까?'라는 의문에 정당성을 부여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 말에 설득을 당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만 유별난 건가.' 길어진 자책의 시간은 나를 아프게 하는 최고의 적이었다.


그런 어느 날, 무서운 현실을 맞닥뜨렸다. 매일 운전해서 출퇴근하는 분당수서간 도로 위, 핸들에 손을 얹고 서행 중인 그때였다. 무기력하게 텔레비전만 보던 아홉 살의 어린 내가 노란 석양과 함께 눈 앞에 버젓이 나타난 것이다. 까마득히 잊고 지냈는데 강산이 두 번은 바뀌었을 20여년의 세월이 흐르고도 조금도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오히려 보다 능숙하게 감정을 덮고 도망치는 나를 만난 거다. 그때 알게 됐다. 10년, 20년 뒤에는 달라지겠지 했던 기대는 어떠한 능력도 없다는 것을. 그걸 깨닫고도 더는 이렇게 살 수는 없단 걸 알아 버렸다. 아무것도 손쓰지 않고서는 죽을 때까지 똑같을 거란 직감을 온 세포가 느끼고 있었다.




이제는 내가 왜 이렇게 힘든 건지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퇴근하면 회사 밑 교보문고에 내려가서 심리, 현대인, 자존감과 비슷한 단어의 서적들에 기웃거렸다. 심리를 전문으로 다루는 센터 두 군데에도 찾아갔다. 그러나 의지와 달리 책은 이론에 그칠 뿐이었고, 센터는 상담을 마칠 때까지 내가 평소 사유하던 생각을 밑도는 느낌이었다. 답을 찾을 거란 기대는 애석하게도 그 이상의 실망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마음의 갈증을 해갈하고 싶다는 끈을 놓을 수는 없었다.


그날도 지친 마음으로 침대에 반, 벽에 반 몸을 널브러뜨린 채 유튜브를 보던 중이었다. 간절히 찾으면 길이 보인다는 말을 믿게 된 계기가 나에게도 생긴다. 우연히 7-8년전 예능 프로그램인 <힐링캠프>에 법륜스님이 출연하신 영상을 보게 된 게 그것이었다. 내 상태를 눈치챈 (무서운)유튜브 알고리즘이 나를 인도한 모양이었다. MC들이 소개하기로 상당히 유명하신 분 같은데 나에겐 처음 뵙는 분이었다. 찬찬하고 재미지게 이야기를 이어나가시는 말씀에 어느덧 빠져 들었다. 말씀하시는 느낌이 왠지 가볍고 좋았다. 그렇게 듣던 중 한 일화가 허덕이던 나를 벽력같이 꽝하게 했다. 그건 열일곱의 '최석호'라는 고등학생(지금의 법륜스님)이 큰스님과의 선문답 후 깊은 깨달음을 얻고자 출가를 하게 된 일화였다. 내용은 간단했다.


내일이 기말고사라 바쁘다고 도망치려는 석호 학생을 큰 스님이 붙잡아 세워 연이은 질문을 하셨다. 질문은 단 두 개였다. "너 방금 어디에서 왔니?"와 "너 이제 어디로 갈거니?" 다만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하셨다. 질문을 듣는 동안 석호는 뭐 이런 이상한 질문을 하시나 생각했다.

큰스님: "너 지금 어디에서 왔니?"

석호: "도서관에서 왔습니다“
큰스님: 동일 질문
석호: ”그 전에는 집에서 왔습니다“
큰스님: 동일 질문
석호: ”그 전에는 ...“
…(중략)...
큰스님: 동일질문
석호: ”그 전에는 엄마 뱃속에서 왔습니다“
큰스님: 동일 질문
석호: ……… (대답하지 못함)

큰스님: "너 이제 어디로 갈거니?"

석호: "집으로 갑니다”
큰스님: 동일 질문
석호: “집 간 뒤에는 내일 시험 치러 학교 갑니다”
큰스님: 동일 질문
석호: “학교 간 뒤에는 ...”
…(중략)...
큰스님: 동일 질문
석호: “그 뒤에는 죽죠 뭐”
큰스님: 동일 질문
석호: ….... (대답하지 못함)

그런데 석호는 엄마 뱃속 전과 죽은 후의 질문에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걸 보고 계시던 큰스님께서는 별안간 큰 소리로 호통을 치셨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놈이 바쁘기는 왜 바빠!"


ⓒ 2021. 토희 all rights reserved.


나도 석호처럼 넋이 빠졌다. 그 질문을 듣고 스님같은 어떤 깨달음에는 미치지 못하였지만 일화가 마치 내 이야기 같았다. 뭘 몰랐는지도 몰랐던 내 방황을 말로 표현하면 딱 그 일화였다. 내 모습은 도대체 뭐가 중헌지도 모르고 뭐 때문에 사는지도 모른 채 그저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종이배 같았다. 스님의 담담하고 재미있는 말씀 마디마다 내가 뭘 모르고 있었는지에 대한 힌트가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상기된 마음으로 말씀을 주워 담을 때, 내 눈에서 떨궈지던 그것은 시간이 지나도 빛나는 보석이었다.


비로소 마음 한 귀퉁이의 해갈을 느낀 나는 그분과의 인연에 깊이를 더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매체는 다름 아닌 수행이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신에게 복을 비는 신앙이나 종교와는 무관했다. 삶이 가벼워지는데 보탬이 되는 현실적인 가르침이 기준이 된다. 예를 들면 나의 기분이 지금 어떻게 일어나는지, 감정이 일어나는 원리는 어떠한지와 같이 마음의 작용을 이해하는 게 주된 원리다. 나는 일상 속에서 수행이란 것을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것을 통해 내가 방황할 수밖에 없던 여러 이유를 볼 수 있었고 하나씩 매듭을 풀어나가는 중이다. 수행을 간단히 얘기하자면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행복해지는 것'이다.


누군가 내게 "당신, 행복해요?" 묻는다면 선뜻 대답할 수 없을 날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내어놓고 인정하고 싶다. 내 마음은 거의 평생을 방황해 왔고 외롭고 힘들었다고. 용기 내어 캄캄한 이불속을 박차고 일어났다. 시시때때로 나를 흔들던 마음들을 이제는 마주하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내 행복을 애써 증명할 필요가 없는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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