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자유로워 본 적 있나요?

과도한 자의식의 굴레

by 토희

수행이란 것을 알기 석 달 전쯤이었다. 마침내 마음의 방황 끝에 선 나는 퇴사라는 것을 결심했다.


대학 졸업 후 기업의 인하우스 디자이너로서 8년이란 시간을 일했다. 사직서를 낸 직장은 30대 여성이 다니기에 괜찮은 복지와 적정한 근무 조건을 갖춘 회사였다. 가진 역량에 비해 운이 좋았던 것 같다. 그렇기에 관두는 결정까지는 여러 기회비용을 고려한 신중한 계산이 필요했고, 마음이 힘든 것만이 이유일 순 없었다. 거취가 묶여있지 않았으면 하는 내 취향과 조직 생활로는 할 수 없는 일을 해보고도 싶었다. 그럼에도 퇴사 고민을 1년이나 하게 만든 이유는 (어마무시한 회사는 아닐지라도) '간판'이었다. 나에 대해 가타부타 설명 하지 않아도 명함 하나로 통용되는 우리 시대의 간편함 같은 것. 남몰래 오랜 시간 고민했지만 내가 결정한 선택은 그래도, 멈춤이었다.


직업 특성상 밥벌이는 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확신. 쉬다 보면 머지않아 길을 찾을 거라는 믿음. 이 두 가지 때문에 쉼이 당분간의 유일한 목적일 수 있었다.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현실이라는 곳의 나는 강박에 자주 시달렸다. 틈만 나면 계획을 세우거나 오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고 초조해했다. 밥벌이도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었고 말이다.


쉼을 이어가던 어느 날이었다. 남편이 나에게 ‘홀로 여행’이란 것을 적극 추천했다. 그에게는 20대에 혼자 해외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었다. 그때의 경험이 마음의 탄탄한 자양분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예전부터 들어왔던지라 혼자 하는 여행의 진가는 대강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구미가 당기지는 않았는데 회사를 안 가니 해 떠있는 시간에도 나다닐 수 있는 매일이 마치 새삼스러운 여행 같아서였다. 그런 마당에 굳이 또 어딜 가야 하나 싶어 남편이 쥐어주는 여행 자금까지 고사하며 미루고 미루다 반년이 흘렀다.


그러다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직장 생활할 때는 죽고 못살던 인천공항을 내가 뭐한다고 마다하고 있지? 청개구리도 이런 청개구리가 없네. 현재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한번 가보자.' 결국 태어나 처음으로 혼자, 타국에서 지내보기로 했다. 추운 겨울에 따뜻한 인도네시아 발리로 떠나는 14일간의 여정이었다.




현지에서 홀로 다니는 걸 할 수 있을까? 처음은 언제나 떨린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나는 내 성격 중에 씩씩하고 배짱있는 옵션을 적절하게 끌어다 썼다. 그리고 프리랜서로 지내고 있을 때라 크게 속박받는 환경이 아니었음에도 톡톡히 홀가분함을 느꼈다. 그 홀가분함이 한국인으로서 기본 장착한 '남 눈치보기' 습성을 집에다 떨궈 놓고 온 덕분인지, 여행이 주는 특유의 설렘인지 그때까지는 알 수 없었다.


숙소 근처에는 스미냑 해변이라는 선셋이 유명한 곳이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뭐든 해보자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의 휴양지인 강원도나 제주도였다면 자제했을 법한 행동들도 나 혼자 해보기로 했다.


도착한 한 낮의 백사장에는 알록달록한 선베드가 수를 놓고 있었고, 서로 다른 피부색과 다양한 연령대를 가진 사람들이 저마다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손바닥만한 비키니를 입은 나 역시 선베드 하나를 빌렸다. 얼른 짐을 내려놓고 바다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밀물에 젖어 보드라운 모래가 발 끝을 따뜻하게 했다. 곧장 모래 위에 대자로 드러 누워 좋아하는 감촉을 느꼈다. 전신에 태닝 오일을 바르고 마음껏 일광욕도 했다. 이 역시 햇볕을 사랑하는 내가 발리에 있는 내내 좋아한 것이다. 그러다 심심하면 우다다 바다로 뛰어들어가 폭풍 수영을 했다. 수영은 서양인들이 설렁설렁하는 유영이 아닌 새벽 6시 강습반 때 칼 각 잡고 배운 자유형과 배영, 평영이었다. 수영에 진심인 내 자신이 웃겨서 나는 줄곧 깔깔거리며 물놀이를 했다. 한바탕 지칠 때쯤이면 선베드에 기대어 살갗에 닿는 바람을 느끼거나 책을 봤다. 이 패턴은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언제든지 뒤바꾸곤 했다. 이보다 더할 나위가 없어 사흘간 이것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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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곳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듯한 자유롭고 벅찬 감정을 느꼈다. 마음에 아무런 걸림이 없는 백 퍼센트 자유란 이런 거구나. 언어로 형언하기 힘든 자유의 감정을 온몸으로 느꼈다. 마음이 백지처럼 깨끗한 그 상태가 행복의 완성형인 것 같았다. 새로웠다.


그러면서도 문득 ‘저 외국인들은 우스꽝스럽게 혼자 노는 동양 여자의 모습을 어떻게 볼까?’ 바깥세상을 신경 쓰는 무의식이 노크를 하기도 했다. 평소의 나라면 '타인이 날 이렇게 보겠지?' 라는 자의식의 데이터를 잔뜩 안고 살았을 텐데 그곳에서는 그러지 않았다. 발리에서 만난 타인에게 내가 어떻게 보였을지를 상상해보면 한두가지의 데이터뿐이다. 그마저도 해상도가 아주 낮은 데이터다.


해변에서 무엇이 그토록 나를 자유롭게 했던걸까? 여러 문화에 대한 수용이 비교적 자연스러운 외국이라서? 출근을 안 하고 일을 안 해서? 여행의 들뜸 때문에? 물론 이것들이 여름휴가를 떠날 때면 "나는 자유인이다!" 라고 제법 소리치게도 했었다. 그러나 여전히 '내 습관'을 붙들고 있는 한 반쪽짜리 자유에 불과했다. 바다에서 온전한 자유를 실감했던 진짜 이유는 타인의 눈치를 보는 내 오랜 습관으로부터 자유로웠기 때문이었다. 한 번도 제대로 떼내어 본 적이 없는, 나를 구속하는 나로부터의 자유였던 것이다. 백사장에서는 남 눈치를 보는 나를 완전히 내려놓았다. 습관대로 흘러가려는 나를 슬그머니 잡아 끌고, 현재 하고자 하는 것들에 몰두했다. 아무리 깊은 산속일지라도, 이 세상 지구 반대편의 어디를 가더라도 나는 언제나 '나'와 함께 한다. 그것이 핵심이었다.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 세상의 평가, 아주 오래전부터 나에겐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였다. 왜 그 마음이 형성됐는지는 정확히 알기 힘들고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내 가치를 평가받을 기준이 바깥에 있으니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사는 건 나에게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직장 생활 중에 심리 센터에 찾아가 치료를 받을 때, 상담사에게 받은 질문 하나가 있다.

"나라는 사람의 가치는 무엇으로부터 결정될까요?"

여러 보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타인'으로 골랐다. 상담사가 왜 그 보기를 선택했냐고 묻는데 황당했다. 뭐 그런 당연한 질문을 하지?

"혼자 산다면 상관없겠지만 사람은 죽을 때까지 타인과 엉켜 사니까요. 평가라는 것 자체가 타인이 하는 거라서요."

내가 인식하는 나는 그냥 살아가는 개체일 뿐이고 내 가치가 매겨지는 주체는 바깥 세상이었던 거다. 타인이 보는 내가 곧 세상을 살아가는 내가 아니겠냐는 게 내 말의 골자였다.


이러니 퇴근하고 오거나 누군가 만나고 집에 돌아오면 늘 방전 상태일 수밖에 없었다. 막연한 성공과 모두에게 잘 보이고 싶은 과도한 욕심이 현재를 살아가는 내 마음을 만나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애썼던 이유를 수행을 하면서 끝까지 따라가 보니 어처구니 없게도 '행복해지고 싶어서' 였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내 습관은 도리어 행복을 허용하지 않았고 그런 내 모습을 제대로 바라볼 줄 몰랐다. 행복해지고 싶은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자동으로 돌아가는 사고 습관의 회로가 내 마음의 안정을 들쑥날쑥 제 멋대로 결정한 것이었다. 내 삶은 내가 아니라 무의식의 과거 습관이 주인이었던 거다.


발리에서 흠뻑 경험한 '온전한 자유'는 나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의미가 있다. 그 마음은 수행의 도움을 빌어 현재 내가 살고자 하는 삶의 이정표이기 때문이다. 목표이자 꿈이다. 이제는 들쑥날쑥한 행복말고, 언제라도 발리에서 느껴 본 편안한 마음처럼 얽매이지 않고 살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수행을 한다. 내 마음을 들여다 보고, 어제의 습관을 돌아보고, 일상에서도 깨어있기를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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