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가이아의 ‘플라워다운 패딩’
'착한 패션'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동물 학대 논란으로 비난의 대상이었던 모피 제품은 자연히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고요. 그런데 갑작스레 추워진 겨울날 아침, 옷장 문을 열다가 문득 궁금해지는 거예요. ‘패딩은 괜찮은 걸까?’ 하고요.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구스다운 패딩. 거위의 가느다란 가슴 솜털은 가볍고 보온성이 뛰어나 패딩 충전재로 즐겨 사용됩니다. 패딩 하나에 약 스무 마리 거위의 털이 필요함에도 말이죠. 품질 좋은 털을 얻기 위해선 거위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털을 뽑아야 한다고 해요. 거위들은 이런 식으로 평생, 많게는 열다섯 번의 죽을 고비를 넘깁니다. 인간을 위해서요. 거위에게는 참 혹독한 겨울입니다. 패딩에 동물의 털 대신 합성 충전재를 채워 넣기도 하지만, 석유 의존도가 높고 잘 썩지 않는 합성소재는 지속 불가능한 옵션입니다.
미국의 친환경 패션 브랜드 판가이아(PANGAIA)는 여기에 낭만적이면서도 과학적인, 그리고 현실적인 대안을 내놨습니다. 꽃으로 채운 ‘플라워다운 패딩’. 동물을 착취하지 않아도 몸을 따듯하게 할 수 있는 윤리적인 패딩입니다. ‘야생화’, ‘생체고분자’, ‘에어로겔’로 이루어진 ‘꽃 충전재’가 모두 생분해성 재료라 지속 가능한 패딩이고요.
충전재에 활용되는 ‘야생화’는, 미국 비정부기구(NGO)가 관리하는 서식지 보존에 사용되는 야생화입니다. 판가이아는 충전재를 얻기 위해 꽃을 재배하지도, 꽃에 살충제를 뿌리지도 않습니다. 꽃이 거의 마를 무렵 꽃의 씨는 따로 빼서 땅에 뿌리고, 마른 꽃은 피어날 다음 꽃의 자리를 만들어 주기 위해 수확합니다. 산림벌채와 농약 살포로 대기, 토양, 수질을 심각하게 오염시키는 목화 재배의 그늘을 반면교사 삼은 겁니다. ‘생체고분자’는 옥수수에서 추출하는데, 야생화와 결합해 보온성을 높입니다. 판가이아 과학자들의 10년 연구 성과인 ‘에어로겔’은 뛰어난 단열 기능으로 패딩의 내구성을 높입니다.
판가이아가 독창적인 소재를 개발할 수 있었던 건 기업의 ‘미션’과 ‘방법’이 혁신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미션은 바로 ‘환경보존’. 판가이아는 패션 브랜드인데 말이죠. ‘Season’별이 아니라, ‘Reason(이유)’별로 제품을 낸다고 말할 정도로, 이 미션에 진심이에요. 또, 판가이아는 스스로를 ‘글로벌 친환경 소재 과학 기업’으로 소개할 만큼, 미션 달성을 위한 ‘과학’이라는 방법에도 진심입니다. 세계 각지의 과학자, 기술자, 디자이너가 판가이아에 모여,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친환경 소재를 개발하고 이를 패션에 접목하고 있어요. 미생물로 천연염료를 만들기도 하고, 대나무로 면 대체재를 만들기도 하죠.
판가이아의 유니크한 소재를 몇 개 더 소개해볼게요. 판가이아는 1킬로그램 재배하는 데 물 2만 리터가 필요한 목화 대신, ‘야생 히말라야 쐐기풀’을 데님 소재로 선택했습니다. 질기면서도 특정 결로 짰을 땐 부드러운 쐐기풀의 특성을 활용한 거죠. 물과 에너지 사용을 줄이기 위해 ‘덜 빨아도 되는 옷’을 개발하기도 했는데요. 유기농 면과 해초 섬유질을 섞어 만든 특수 원단을 페퍼민트 오일로 코팅해 세균 증식을 막고 옷 냄새를 억제한 거예요. 열 번을 빨지 않고 입어도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스어로 ‘판’은 ‘모두’를, ‘가이아’는 ‘대지의 여신’을 뜻합니다. 모든 사람을 위해 지구를 지켜내는 히어로다운 이름입니다. ‘더 나은 미래를 함께 설계하는 것’이 판가이아의 비전이라고 하는데요. 이번 겨울엔 더 많은 사람이 ‘착한 패션’으로 히어로들의 행보에 동참해 주기를, 그렇게 또 한 명의 히어로가 탄생해주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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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유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