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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Uye Dec 05. 2020

소설가 김영하 추천책 '완벽한 아이'

삶을 지속할 이유에 대한 발견


"그 누구도 지평선을 빼앗긴 채 살아서는 안 된다."

모드 쥘리앵 <완벽한 아이> p. 280


바다를 좋아해서, 수평선이라면 수도 없이 넋을 놓고 바라봤다. 광활하게 펼쳐진 풍경을 마주하고 있으면 속이 뻥 뚫린 듯 시원해진다는데, 나는 이 드넓은 세계에 대한 공포를 느낀다. 그런데도 그 경계를 끝까지 응시하는 건 영영 만날 수 없는 바다와 하늘이 지금 내 눈앞에서 맞붙어 있다는 조금의 희열 때문이다.      


모드 쥘리앵의 '완벽한 아이'는 부모의 일그러진 가치관으로 삶의 조각조각까지 계획됐던 한 여성의 유년 시절을 담고 있다. '인간은 더없이 사악하고 세상은 더없이 위험하다'는 것이 그의 아버지가 세상에 내린 결론이었고, '초인적인 존재의 탄생'이라는 거대한 목표가 아니고서야 그의 탄생은 정당화 될 수 없었다.  


'퓨즈가 나가서 방이 깜깜해지면 책을 가슴 위에 얹고 조금 전까지 읽은 내용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기쁨에 젖는다.' 이 한 문장에 그의 유년 시절이 응축되는 듯하다. 작가의 아버지는 딸의 육체를 속박했으나 마음마저 훔칠 순 없었다. 눈으로 읽어내려가는 것만으로도 힘겨워 굳이 열거하고 싶지 않은 일련의 사건 속에서도 그는 생각하기를, 사랑하기를, 표현하기를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책 말미에 다가서서 경탄과 찬사의 눈물을 훔치느라 팔꿈치를 접고 들어 올려 그 사이에 고개를 박았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줄타기를 그만두고, 그냥 그사이를 지켜 바라볼 수 있는 자유를 얻고 싶다. 무엇이 되기 위한 존재가 아닌, 나는 나라는 존재 자체를 위해 고군분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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