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허난설헌 생가터를 방문하다
시인 난설헌, 언제부터인가 그녀는 내 마음속의 위안과 희망이 되었다. 글을 쓰기 시작한 후부터 그랬던 것 같다. 여성이 작가가 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시절, 끊임없이 작품 혼을 불태웠던 그녀. 힘들 때마다 긴 고독의 시간을 그녀는 어떻게 견뎠는지,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는지 묻고 싶었다. 왕의 딸이라 해도 언문 이상은 가르치지 않았던 그 시절, 여 신동이라 불리며 8세 때 「광한전백옥루상량문」을 지었다는 그녀. 여자임에도 능력에 남녀의 구별을 두지 않는 집안 분위기 덕에 당대 최고의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시인 허난설헌.
그러나 그녀의 자유로운 생활은 시집을 가면서부터 다른 국면을 맞이한다. 종가 며느리가 된 그녀가 시작 활동을 이어 나가는 것은 시댁에서 결코 환영받지 못했을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개인의 시간을 가진다는 것이고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마땅찮은 시선을 알면서도 시작을 멈출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만이 그녀에게 있어 유일한 탈출구였고 자기 수행을 확인할 수 있는 측도였기에. 사람들은 ‘작가’라고 하면 흔히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작가가 되기는 하지만 대개 작가들이란 ‘글을 쓰지 않고는 안 되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쓰는 행위가 일종의 자기 성찰이자 치유의 시간인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일반 사람들보다 세상에 적응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글을 쓰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현실의 삶에서 겪는 불안이나 고독감, 혹은 자괴감을 어떻게든 털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자족하며 살고,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굳이 글을 써서 무언가를 표현할 욕구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일상에서 잘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나 혼자만의 시간에 글을 써서 내면을 표현하고, 그것을 작품화하는 것은 그 작품을 통해 상처 입은 내면을 치유하고, 위안을 받고 또 세상과 소통하는 행위이다.
시인 허난설헌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시를 써 나갔던 원동력은 그것만이 자신을 지탱해 주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마음이 힘든 상황에서 그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신성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가끔 매체에 글을 쓸 때 ‘우울증’ 등 마음의 병을 주제로 하여 글을 쓰면 다른 주제로 글을 쓸 때보다 훨씬 많은 문의나 편지를 받기도 한다. 그만큼 요즘 사람들의 마음이 힘들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물질적으로는 그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요로워지고 여유로워진 지금, 사람들은 왜 전보다 덜 행복할까? 사람은 몸을 가진 존재인지라 몸을 쓰지 않으면 정체된 몸이 정체된 생각을 낳고 그 여파로 마음의 감기가 쉽게 걸리는 것이리라. 그럴 때는 자신만의 적절한 치유법을 만들어서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누군가에게 그것은 글쓰기이고,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일이고, 혹은 그림 그리는 일일 것이다.
삶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행복한 것이다. 그 사람이 내게 위로를 주고 또 그 사람을 보면서 살아갈 힘을 얻으니까. 내가 옛사람들에게 빠지게 된 것은 그런 이유였다. 저번 책의 주인공이었던 정조 이산, 이 책의 주인공인 허난설헌은 현실의 아픔을 딛고 자신의 삶을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한 사람들이다.
비록 현실의 나는 비루할지라도 그런 분들을 대할 때면 ‘그래,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포기하지 말자’라는 생각이 든다. 원래부터 위대하였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 아닌, 어떤 어려움에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던 분들이었기에 그분들의 에너지가 몇백 년이나 지난 후손들의 가슴에도 힘이 되어 주나 보다. 시인 허난설헌, 이분이 내 마음속에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흔적을 찾아 강릉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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