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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현 Aug 05. 2021

목요일 퇴근길 문득, 내 죽음의 순간은 어떨까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내가 죽는 그 순간, 나는 어떤 장면, 혹은 어떤 말, 어떤 사람, 어떤 사물을 떠올릴까?'


내가 죽는 순간을 생각해 보면, 나 스스로 내가 참 안쓰럽고 기특할 것 같다.

수십 년 간 나로 살아오면서 갖은 희로애락을 느끼고 담아왔을 테니까. 나를 가장 잘 이해해줄 사람은 결국 나인데, 나를 들여다보는 일을 좀처럼 하려 하지 않는다.


다시 질문에서 돌아와 보자면,

내가 죽는 그 순간이라면, 어떤 '것' 혹은 '대상'을 떠올릴까.


조금 더 구체화해보자면 그 순간의 감정은 '그리움' 혹은 '만족감'이 아닐까.

그리움이라면 그 당시에는 없을 확률이 높은 내 어머니, 아버지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내가 가장 젊은 시기, 열정적으로 행복을 추구했을 시기를 그리워할 수도 있겠다.


만족감이라면, 나는 꽤나 성공한 삶을 살았다거나, 죽는 그 순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것이다. 그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그런 전형적인 그림들이 어색하긴 하지만, 그런대로 행복할 것 같다. 하지만 조금 더 깊게 생각을 해 보니 애매하게 친한 사람들이라면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겠다. 내가 정말 그리워하거나, 보고 싶은 순간, 사람들을 떠올리며 눈을 감고 싶은 게 더 크다. 내 미래의 아내와 오롯이 우리의 지나온 삶을 추억하며 나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보내는 게 평온하면서 가장 자연스럽지 않을까.


조금 더 다른 상황을 그려보자면,

아무도 없는 텅 빈 공간에서 나 홀로 죽는다면 어떨까. 무척이나 외로울까? 갑작스러운 죽음이라면 그렇겠지만, 준비된 죽음이라면 내 마음을 채우는 건 외로움보다는 깊은 의미가 있겠다.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나를 온전히 들여다보고, 고생했다고 이야기해줄 수 있는 진정한 존재는 나일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조금은 외롭고도 쓸쓸한 건 어쩔 수 없다.


내 삶의 마지막 순간에 병원에서 1분, 2분을 더 연장하며 삶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다. 익숙한 장소가 좋을 것 같다. 나이 든 아내와 함께라면 서로의 추억이 있는 장소가 더 좋을 것 같지만, 몸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오래 살아온 집이 현실적이겠지.


이렇게 글을 곰곰이 적다 보니, 나도 참 평범한 죽음을 바라고 있구나 싶다.

남들보다 더 나은 삶을, 더 특별한 삶을 살고자 하는 내 욕심 혹은 열정에 비해 엔딩은 평범하길 바라는 걸 보니, 나라는 삶의 전체 영화는 잘해봤자 용두사미일까 싶다. 아니면 해피엔딩으로 모호하게 끝이 나는 디즈니 만화처럼 그렇게 막을 내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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