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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인간

집중 호우를 바라보며

by 김글인

세상이 물속에 잠긴 듯하다. 유리창으로 돌진한 빗방울은 부딪히기 바쁘게 서로 내가 먼저라고 내달리기라도 하듯 수직낙하하고, 탁 트인 시야를 보여주던 창밖 풍경도 온통 회색빛으로 혼탁하다. 창문을 열고 빼꼼 내다보니 주룩주룩 떨어지는 빗물, 분무기가 뿜어내는 듯한 습기가 얼굴에 그대로 느껴진다. 그야말로 온통 물 세상이다. 방금 전 빗줄기가 중력을 향해 돌진하며 지나간 그 공간에 그다음 빗줄기가 이어지는 시간차는 눈 깜짝할 여유도 주지 않으니, 지금 이 순간 어쩌면 하늘과 땅은 빽빽한 광섬유다발 같은 가느다란 빗줄기 다발로 이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하늘과 땅을 잇는 빗줄기 터널들, 빽빽한 그 한가운데 있는 나는 잠시 수중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희뿌연 안개와 비구름이 낮게 내려앉아 저 멀리 보이던 고층 주상복합 건물도 허리가 잘렸다. 저 허리보다 위에 살고 있는 사람은 어떤 기분일까. 어떤 세상을 내다보고 있을까. 비구름 속은 빗줄기가 덜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구름이 빗줄기의 출발점이니 수원지가 아닌가? 저 위는 강이다. 물의 발원지가 거꾸로 뒤집혀 하늘에 걸려있으니, 하늘이 땅이고, 땅이 하늘인 날이다.




습도 90프로의 비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무더운 장마철 날씨를 견디기 어려워 에어컨을 가동해 놓고 문을 꼭꼭 닫아 냉기를 가두었더니, 집 안은 훨씬 쾌적하다. 제습기다, 에어컨이다, 이런 날도 빨래를 보송하게 말릴 수 있는 문명이 있는 이 공간은 바깥세상과 단절된 딴 세상 같기도 하다. 문득, 제습된 이 공간은 물속 세상 안에 있는 뽀송한 공기방울이 아닌가 싶다. 고층 아파트 안의 공기 방울 안에서 각자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은 나란히 수직으로 줄지어 뽀글거리며 살고 있는 것이다. 뉴스에서도 비구름대가 중부지방, 남부지방을 오르락내리락하며 폭우를 쏟아내는 상황을 보도하고 있으니 바깥 활동도 움츠러들기 마련, 사람들은 공기방울 속에서 은거하기도 한다. 나만의 공기방울 속에서.


세상 속의 세상인가. 내가 은거하고 있는 이 공기방울 안에 또 하나의 물속 세상이 있다. 가끔 물멍 하며 바라보는 구피 어항이다. 어항 속에는 마찬가지로 공기방울이 계속 뽀글거리며 올라온다. 저 물고기들은 어항 밖의 세상이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을까. 하루에 두어 번 물고기 밥을 주려고 어항 앞으로 다가서면 유유하게 노닐던 녀석들이 수면 가까이로 올라와 난리법석을 떤다. 뭔가가 어른어른 다가오면 밥이 나오는 것을 경험으로 아는 것이다. 암컷들이 1,2주 간격으로 산란을 하고 있어서 치어용 작은 어항에 새로 태어난 치어들을 계속 옮겨주고 있는데, 새로 태어난 치어들은 처음에는 밥이 하늘에서 떨어져도 멀뚱멀뚱 헤엄쳐 다닐 뿐이다. 물론 너무 작아 멀뚱멀뚱한 눈빛인지는 알아볼 수 없다. 그러나 일주일 정도가 지나면 하늘에서 밥이 떨어지기도 전에 수면으로 올라와 하늘에서 떨어질 밥을 기다린다. 물론 밥을 먹겠다는 전투적인 눈빛도 알아볼 수는 없다. 저들에게 나는 신과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어른어른 무언가가 다가온다, 그러면 뭔가 달그락 거린다, 곧 하늘에서 밥이 떨어진다.'


어쩌다 바쁜 일정에 밥 주는 걸 깜박하는 날에는 나는 구피들에게 질타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신이여,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입니까. 와글와글.


현실의 물 세상에도 동화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뽀송한 안락함을 주는 문명 세상임에도 집중호우로 인해 저수지 둑이 범람하고 옹벽이 무너지고, 이재민이 발생했다는 뉴스는 끊이지 않는다. 이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는 그 밖의 존재가 있다면, 묻고 싶다. 신이여,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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