꼽이 뭐가 그리 기분 나쁜데?
꼽이 뭐가 그리 기분 나쁜데?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사람이라면, 여기에서 말하는 ‘꼽을 준다’라는 말을 이해할 카테고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40대 초반인 내 주변에서는 이 ‘꼽을 준다’라는 말을 쓰는 사람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이가 든 교사는 더 이 사안을 이해하기 어렵다. 학생의 마음이 공감이 잘되지 않는다. 꼽을 당한다는 느낌을 인지한 적이 없으니 할 수 있는 것은 겪어온 삶의 경험을 통해서 비슷한 느낌을 찾아내어 보는 것이 최선이다. 이건 마치 사투리의 미묘한 어감을 그 사투리를 쓰지 않는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청소년기를 흔히, 자아정체성의 혼란을 통해 자신을 정립하는 시기라고 한다. 뇌과학에 의하면 이때에는 이성을 관장하는 전두엽은 리모델링에 들어간다. 그리고 리모델링 중인 전두엽 대신 감정과 충동을 관장하는 측두엽의 활동이 활발해진다. 이 시기 청소년은 감정의 진폭이 크고, 충동적인 선택을 쉽게 하며, 공감 능력과 판단력이 일시적으로 흔들리기도 한다. 이것이 어릴 때 말을 잘 듣던 아이가 청소년기에 사납고 충동적으로 변하는 이유이다.
흔히 청소년기를 가장 행복한 시기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행복할 때 나오는 호르몬인 세로토닌 분비는 줄어든다. 이 시기의 청소년은 성인의 60% 정도의 세로토닌만 분비되는 데, 이는 성인 우울증 환자의 양과 비슷하다.
이런 불안정한 시기에는 떨어지는 낙엽 하나를 보고도 배꼽이 빠지게 웃을 수도 있고,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우울한 마음에 눈물을 흘릴 수도 있다. 교과서에도 나와 있지 않는가, 청소년은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시기라고.
이 시기의 청소년은 끊임없이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세상의 모든 시선이 자신에게 쏠려 있다고 느낀다. 동시에 자신은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라고 믿는 자의식 과잉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 불안정한 자의식 속에서 또래들과 교우관계를 맺다 보니, 필연적으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언어학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이런 의문을 떠올릴 수 있다. ‘언어’와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은 무엇이 먼저 생겨나는 걸까? 분명 내가 학교에 다닐 때도 뒷담화하거나, 상대방에게 무안을 주거나, 싫은 소리를 하는 따돌림 같은 것은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통틀어 말하는 ‘꼽을 주다’ 같은 말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학생들은 ‘꼽’이라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꼽을 당하는(?) -피동형을 쓰진 않는 것 같지만- 상황을 예민하게 포착한다.
이전에도 서로를 견제하고 의식하는 청소년 무리는 있었고, 그 안에서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SNS를 통해 숨을 쉬는 것처럼 누군가를 평가하고, 또 누군가부터 자신을 평가당한다. 부정적인 감정에 자주 노출될수록 그 감정에 예민해지듯, 이 속에서 사는 현대인은 ‘평가’라는 과정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3~59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4 나와 타인에 대한 관심 및 평판 관련 인식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74%가 ‘우리 사회는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행동을 해야만 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응답하여, 타인의 시선에 대한 민감성이 높아졌음을 보여준다. (사례뉴스, 2024) 특히 10대와 20대의 응답자는 약 60%가 ‘타인의 시선을 많이 의식한다’라고 응답하여, 40%대의 응답률을 보인 30대와 40대에 비해 타인의 평가에 민감한 경향을 보였다.
SNS와 같은 사적인 공간, 혹은 또래 집단 안에서는 서로에 대한 비방, 험담, 인신공격이 난무한다. 그에 비해 학교나 가정 같은 공적인 공간이나 어른과 함께 있는 공간에서는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혹은 객관적인 평가를 하는 사람은 줄어들었다. 격려, 칭찬, 인정만이 학생을 올바르게 교육하는 방법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학생들이 ‘꼽’에 민감하듯 학부모님도 자녀가 ‘느린 학생’, ‘학습 능력이 부족한 학생’이라는 낙인이 찍힐까 교사의 평가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렇기에 교사들도 이전과 같은 쓴소리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살면서 처음 겪는 이런 ‘꼽’을 당하는 과정이 학생에게는 엄청난 일이며 대단한 사건이다. 자신을 부정당하는 것 같은 격렬한 감정이 일어나는 것이다.
내가 자랄 때만 해도 아이는 집안에서 귀여움을 받기는 했어도 아이의 발언이 집안에서 영향력이 있지는 않았다. 집안의 어른이 결정하면 아이는 그에 따르고 복종하는 것이 순리였다. 학교와 학급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학생은 무언가를 결정하기보다 결정된 사항을 지키는 일이 우선이었다.
그런데 현재에 집안의 어른은 누구인가?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아빠도 엄마도 모두 ‘아이’가 최우선이다. 아이는 언제나 칭찬받고, 격려받으며, 자신은 소중하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과도한 꾸중과 엄격함이 일그러진 자아정체성을 형성하듯, 과도한 칭찬과 격려 역시 건강한 자아정체성 형성을 어렵게 한다.
가정과 달리 학교에서는 자신이 1순위가 아니다. 성숙한 아이는 이러한 사실을 비교적 쉽게 받아들이고 주변과 어울려 지낸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아이는 끊임없이 외부와 충돌하며 자기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꼽을 주는 학생과 꼽을 당하는 것에 예민한 학생 모두 교우관계에 대한 집착이나 관심이 매우 높으며, 타인을 지나치게 의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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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5) 경상도 말에는 통증을 나타내는 말 중 ‘우리하다’라는 말이 있다. 국어사전에는 경상도의 방언으로 ‘신체의 일부가 몹시 아리고 욱신욱신한 느낌이 있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나 경상도인은 그 설명으로 부족한 무언가가 더 있다는 것을 안다. 근데,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네? (우리한 건 우리한 것일 뿐, 아린 것도 아니고 욱신욱신 한 것 더더욱 아니다!)
각주 16) 우리는 청소년기를 흔히 중·고등학교 시절이라고 생각하지만, 뇌 발달은 여성의 경우 20-22세, 남성의 경우 24-25세에 완성된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실제로는 더 긴 것 같다. 나도 아직 사춘기인 것 같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