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by 김여생

오늘도 어김없이 복숭아 하나를 먹고 산책길에 올라본다.

아침이라는 시간에도 덥길래 새벽 산책으로 바꿨다.

아침 6시부터는 해가 강해지면서 하루에 더위가 시작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새벽 5시에 나가도 사람들이 꽤 있다.

(그 이른 시간부터 개천에 발 담그며 울렁거리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난 낮에 산책하는 것을 좋아한다.

일을 하고 있지 않은 지금,

회사 다닐 때 돌아다닐 수 없는 시간에 산책을 하며 돌아다니는 게 좋다.

후, 그래서 오늘도 도전한다.

'나가보는 거야. 난 할 수 있어.'

심호흡 한번 하고 열기를 가득 담은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어 본다.

'오우 안 되겠는데? 뭐지?

이야, 날씨가 다른 의미로 끝내준다야. 야 이건 진짜 쉽지 않다.'

혼자 궁시렁궁시렁 대며 다시 들어온다.

햇빛을 좋아하는 나의 고양이도 베란다로 갔다가 이건 안 되겠다 싶었는지 에어컨이 틀어진 방으로 돌아와 대자로 뻗어버린다.

'그래, 우리 고양이도 못 버티잖아. 해지고 나가보자.'

하 근데 아쉽고 아쉬워.

햇빛 아래에서의 산책은 나의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자 힐링하는 시간인데.

머릿속의 꽉 찬 생각들을 엑셀 작업하듯 정렬하고 나열하며 중요 표시도 하고 비울 건 비우는 그런 아주 소중한 시간인데.. 하며 또 망설이는 변덕 대마왕이다.

차를 한잔 호로록하며 사색에 잠겨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가지를 넓히고 돌아다니다가 그건 아니겠다 싶고 다시 돌아오며 막다른 골목에 부딪힌다.

'나가, 나가. 이대로는 안돼!'

나오니 옛날 말로 그냥 빤스만 입고 돌아다니고 싶은 날씨다.

(예전 시골에서 아이들은 그냥 속옷만 입혀서 개울가에서 놀게 했더랬지. 수건 없어 바지로 몸 닦고 속옷 위에 윗옷만 입고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꼭 어른들은 속옷도 팬티도 아닌 빤쓰라 했고 나도 정겨워 이번에 사용했지만, 영어 pants에서 유래된 일본어의 잔재인 단어라 속옷이라 표현하는 것이 좋다.)

걷다가 적당한 산책로 그늘 밑 벤치에 앉아본다.

'가만히 있으면 덥지 않다. 덥지 않아.'

혼자 주문을 외다가 어느 순간 집중이 잘 되어서 생각해야 하는 것을 끄적끄적 글로 남겨본다.

한 20분 정도 앉아 있었을까?

쓰는데 볼펜을 잡은 손이 척척해지는 기분.

이마와 인중엔 땀이 송골송골이고 등에도 땀이 났다.

(나이키 드라이핏 사랑해요. 여름엔 그대가 최고야.)

문제의 해결점을 30% 정도 해결하는 글을 썼는데 내 몸의 수분도 한 30% 증발한 것 같다.

집까지 걷기엔 너무 멀어. 근처 올리브영이 있었다!

'올리브영올리브영올리브영올리브영.'

뭐에 홀린 사람처럼 올리브영을 중얼거리며 빠르게 걷는다.

올리브영 문을 열자마자 시원한 냉기가 온몸 혈관 속속까지 들어오는 기분이야.

'흐아아아아- 살았다.'

역시 우리 동네 올리브영은 최고다.

시원함이 몸에 들어오니 기분이 상콤해지면서 잘못 들어왔다는 생각이 스친다.

'파리가 파리지옥 유혹에 걸려 부렸군.'

복숭아 말랭이 왜 세일해. 모구모구 복숭아 맛 왜 세일해 정말!

(지독한 복숭아 사랑 중독을 보고 계십니다.)

더웠다가 갑자기 시원해지고 몸이 편안해지면 이상하게 쇼핑 욕구가 올라가는 편이다.

이것저것 고르고 있는데 옆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올리브영이 재밌는 건 여기에 들어오는 순간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여자가 된다는 것.

학생으로 보이는 딸이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 이거 사줘. 색이 예뻐.'

'오 그러네. 줘봐 봐.'

하더니 엄마도 발라보고 거울 앞에서 우- 하며 예쁜 표정을 지어본다.

그러더니 딸도 발라보고 엄마 따라 우-, 서로 보고는 깔깔거린다.

여기서는 엄마도 딸도 아줌마도 할머니도 그저 여자일 뿐.

직원은 이것도 추천드린다며 말을 거니, 둘이 눈이 동그랗게 반짝이며 경청한다.

'참 예쁜 광경이네.'

나도 귀동냥으로 듣고 싶었지만 더 있으면 그 립스틱을 살 것 같아 그만두기로 했다.

지금 다시 집에 가야 할 길이 구만리다.

예쁜 모녀의 모습을 본 것으로 만족하자 하며 길을 나서본다.

밖이 얼마나 더운지 나오자마자 안경에 김이 서린다.


'나에겐 말랭이가 있다! 먹으면서 출바알-'

오늘도 산책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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