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골똘히 열심히 하다 보면 갑자기 딴딴한 벽에 이마를 부딪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슬럼프라고도 하고 한국말로 한다면 부진하다 정도의 느낌일까.
하고 있고 머리로는 더디게 나아가는 중이다 생각하지만 머리에서 몸과 마음으로 그 생각이 내려가지 않고 뇌 안에서만 빙글빙글 도는 느낌.
'이 또한 지나가리라.'
현자 같은 말을 하며 명상을 해보지만 흩어진 생각의 조각들이 이리저리 몸을 찌른다.
예전에는 '텄다 텄어.'
인내심 없이 그만두는 일들도 있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좋은 점은 엉덩이가 무거워졌다는 것이다.
좋아도 싫어도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는다.
하기 싫어 괜스레 종이를 찢어 종이학을 접어보고,
내친김에 예전에 접던 별 모양도 접어본다.
(요즘 친구들에게 라떼는 사랑을 전할 때 종이학 천 마리를 접었다고 하면 무슨 말을 들을까. 실용적인 선물이 낫다고 할까, 그래도 낭만 있다고 바라봐 줄까.)
신나게 이것저것 하며 세월을 흘려보낸다.
그러다가 문득해야 할 일이 임박해오면 안경을 쓰고 휘리릭 탁탁하게 해 버리고 '히유.'
이번에도 잘 끝남에 안도감과 감사를.
이러다가 또다시 불이 붙는 시기가 오겠지만 그 시기는 나조차도 알 수가 없어 그저 정해놓은 루틴을 묵묵히 해나간다.
습관이 무서운 거라고 하다 보면 그걸 안 하면 찜찜한 마음에 잠 못 드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다가 글을 쓰러 들어왔더니 나의 연재 브런치 북 이름이 일상의 기쁨이란 것을 보고 깨닫는다.
이것 또한 기쁜 일인 걸.
'슬럼프가 왔다! 나에게도 슬럼프가 왔어!'
우와아아아아아.
나 지금까지 열심히 했다는 증거잖아.
갑자기 열정이 샘솟는다.
그래 머리 지끈지끈하게 열심히 했잖아.
'이야. 이거 슬럼프가 왔으니까 잠시 놀러 가도 되지 않갔어? 명분이 기가 막힌다.'
'키햐 너의 눈동자에 치얼스야.'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린다.
'나랑 놀아줄 사람. 나랑 휙 하고 떠나볼 사람!'
그래, 역시 일상은 정말 기쁨이 넘친다.
Brunch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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