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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생 Oct 31. 2024

양세기

커피를 계속 안마시다가 어제 조금 늦게 한 잔을 마셨더니 밤을 거의 꼴딱 새 버렸다.
심장이 두근두근, 눈은 퀭.
하지만 고양이 일과에 맞춰 다섯시 반에 일어난다.
요즘 내가 잘 때 조금 뒤척이는지 같이 자다가 새벽 즈음에 냉장고 위로 올라가서 자는 습관이 생긴 고양이다.
밥을 주고 물을 갈고 모든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해본다.
새벽 공기가 차긴 한데 요즘은 많이 춥진 않은 것 같다.
다음 주에 기온이 훅 떨어지는 것 같던데.
겨울이불로 미리 바꾸어야겠다.
일어나서 내가 세수와 양치를 하고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크림도 안 바른 맨얼굴로 나오면 온몸으로 얼굴에 부벼주며 아침 인사를 해주는 나의 고양이.
(내가  전에 인사부터 하고 하면 찝찝한지 몇 번 얼굴에 부비다가 자기 털을 폭풍 그루밍 한다. 아주 깔끔함으로는 두 번째도 서러울듯한.)
나는 정신이 덜 깼는데 고양이는 잘 잤는지 발걸음이 가볍다.
'까악깍깍 깍깍깍깍깍.'
6시가 넘으니 까치들이 우리 집 앞에서 정모를 시작한다.
꼭 이 시간에 대화하듯 깍깍거리다가 끼룩거리는 소리도 내었다가 다이내믹한 모습들을 볼 수 있어 아침마다 재밌는 시간이다.
고양이는 보다가 채터링소리도 내었다가 까치들이 우르르 있으니 무서웠는지 안으로 쪼르르 다시 들어온다.
평소엔 함께 베란다로 나가 즐겁게 바라보는데 오늘은 잠을 못 잤더니 정신이 사납다.
이따가 잠시 나가봐야 하는데 다크서클이 코까지 내려가 있 것 같다.
고양이와 사랑사랑을 하고 이리저리 놀아주고는 다시 침대에 눕는다.
아직도 카페인이 남아있는지 심장이 콩닥콩닥콩닥.
참 오래가기도 하지.
내가 침대에 누우니 고양이도 사료와 물을 번갈아 먹고는 침대로 쫑하고 점프해 내 옆에 자리를 잡는다.
밖은 해가 뜨고 세상이 밝아지고 출근하는 소리들, 학교 가는 어린아이들의 목소리가 문득문득 들린다.
'점심 넘어 나가려면 조금이라도 자고 나가야 하는데.'
하며 양을 세어본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소리를 내어 말하니 양 열 마리가 되자 고양이는 꿈나라로 먼저 떠났다.
나도 떠나야지.
다시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행복한 아침잠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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