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는데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슬럼프 고까이꺼.
인정하고 나니 별게 없다.
'그래. 그렇게 하기가 싫다 이거지? 뭔가 해도 해도 제자리걸음 같다 이거 아녀.'
근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해서 그만둘 건 아니다.
애초에 안되면 무라도 잘라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러니 이런 마음은 당연히 올 수 있다.
'아직도 마음이 급해.'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니고 다그치는 사람이 있길 하나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는데 혼자 전전긍긍이다.
그게 뭣이 중헌디.
급할 건 그 무엇도 없다.
그저 순리대로 천천히 가는 것뿐.
다 인정하고 나니 마음에 기쁨이 찾아온다.
전전긍긍할 시간에 등산이나 다녀올걸.
어제보다 더 차가워진 바람 뒤로 나뭇잎을 잃은가지만 남은 나무들이 속속들이 보인다.
며칠 동안 등한시했더니 금세 달라진 풍경이다.
그래 나가자.
세상 추워졌길래 따뜻하게 입고 밖으로 나갔다.
좋아하는 커피집에 들러 텀블러에 따뜻한 아메리카노도 받아왔다.
'출발해 볼까.'
귀에는 신나디 신나는 힙합을 꾸왕꾸왕 틀어놓고 괜한 발재간도 부려보며 산으로 향한다.
온기가 남은 햇살을 맞으며 파워워킹으로 걷는다.
날이 추워서인지 평일이어서인지 사람들이 많지 않았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숲은 항상 좋다.
중간에 아주 고약한 오르막길이 있는데 그곳만 벗어나면 완만하다가 다시 고약한 절벽 같은 오르막길을 오르면 정상은 아니지만 아래 풍경을 충분히 바라볼 수 있는 봉우리에 도착한다.
정상은 스틱도 필요하고 등산화도 필요할 만큼 조금 험하다 들어서 아직 정상을 올라가 보지 못했지만 중간 봉우리로도 충분하다.
여기까지만 올라가도 '어우야 나 오늘 등산했어.' 할 정도로 땀이 나는 코스이기도 하다.
첫 번째 오르막길까지 쉼 없이 파워워킹으로 단숨에 올라간다.
숨이 할딱할딱 거리지만 귀에서 들리는 신나는 음악의 힘으로 통과했다.
첫 번째 난코스를 지나왔으니 이제 이어폰을 빼고 천천히 녹음을 만끽하며 두 번째 오르막길에 오른다.
숨을 고르며 아래도 한번 바라봐 주며 지금 있는 자리를 잘 확인하며 올라간다.
이곳은 모래도 많고 미끄러워서 파워워킹을 하다가 미끄러지면 크게 다칠 수 있는 경사의 오르막길이다.
길도 나 있고 옆에 밧줄도 있지만 사람들이 밧줄에 많이 의지하는 구간은 덜렁거리는 것이 꼭 금방이라도 뽑힐 것 같아 내가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천천히 한발 한발 조심히 오르다 보면 금방 도착이다.
모래 구간에서 생각했다.
'내가 있는 지점이 이 지점일까.' 하고.
앞으로 빠르게 나아가고 싶은데 모래는 미끄러우니까 자칫 잘못하면 뒤로 밀려서 더 아래로 내려가거나 다칠 수도 있으니까 정말 천천히 한 발을 옮길 때마다 어디를 디뎌야 할지 생각하며 올라야 하니까.
도착점에 올라 매서운 바람과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밑을 내려다보니 기분이 상쾌해졌다.
'그래. 지금 나는 모래 구덩이 속이다.'
'근데 조심해서 천천히 오르다 보면 정상에 도착하겠지!'
야호를 할만한 높이는 아니긴 한데 갑자기 하고 싶어져서 사람들이 있는지 확인한다.
두리번거리다가 커피를 반절 정도 마셔갔을 때 아무도 없는걸 확인했다 후후.
'야아아 호오오오-'
메아리는 돌아오지 않는다.
인생 삼세번이니까 두 번 더 외쳐줬더니 마음 깊숙이까지 상쾌해졌다.
내려오는데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이어폰 없이도 룰루랄라 내려왔다.
내려오는 건 또 이렇게 쉽나.
다리가 호들거리지만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내려오더라도 무라도 꼭 잘라보는 거야!'
'아니면 메아리가 돌아오지 않더라도 야호라도 소리 질러보자!'
'할수있뜨아아아아아!!'
내려오는 길, 아무도 없는 줄 알고 양손 주먹을 불끈 쥐고 큰 소리로 외쳤는데 언제 나타나신 건지 어르신이 '그래 힘내요.' 하고 유유히 걸어가신다.
나는 단풍나무가 되어버렸다.
열정인지 부끄러움인지 모를 온몸이 벌겋게 물들어버린 하루.
Brunch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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