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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생 Nov 14. 2024

삼겹살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삼겹살!'
날이 슨슨하이 추우니까 목이 칼칼하고 콧물도 찔찔거리니 목에 기름칠을 하고 싶은 마음이랄까.
친구와 만나 삼겹살집에 기로 한다.
으으흠 옷에서 나는 부내는 고기 냄새지.
친구가 동네로 온다기에 맨투맨에 편한 옷을 입고 집을 나선다.
집에서 구워 먹어도 되지만 바닥에 그릴을 놓고 구워 먹으면 이리저리 튀는 기름 청소도 그렇고 고양이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면 도통 집중을 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만 먹는 것도 미안하니까.
고기를 좋아하는 건 아닌데 분기마다 한 번씩은 구워 먹는 고기가 먹고 싶어진다.
머릿속에서 맴돌 때 안 먹어주면 서운함이 오래간다.
우리 동네는 신기하게도 삼겹살집이 참 많은데 골라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나는 고기를 잘 굽지 못해 먹고 싶을 때면 친구와 함께한다.
친구는 고기 집게를 넘겨주지 않는,
굽는 것에 자신만의 철학이 있는데 결과물이 아주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게 맛있다.
난 옆에서 맛있다 맛있다를 열창하며 친구의 어깨를 올려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불판에 노릇노릇 구워진 고기를 보며 침이 꼴깍꼴깍 넘어간다.
난 고기가 다 익었는지도 잘 몰라서 친구가 먹어! 하면 달려든다.
(고기를 자주 안 먹어서일까. 아직도 긴가민가한 게 잘 모르겠다. 그래서 혼자 먹을 때면 베이컨처럼 만들어 먹는..)
그래서 친구와의 삼겹살 타임은 항상 소중하다.
어쩌다 먹는 구워 먹는 고기인데 맛있게 먹고 싶은 마음이랄까.
친구도 나랑 먹는 걸 좋아하는데 굽다 보면 잘 못 먹는 경우가 많고 제대로 먹으려 하면 몇 점 안 남아 있어 서운할 때가 있다고 한다.
난 먹자!고 하면 같이 먹어주고 아니면 안 먹고 기다리고 있어서 좋다고.
(몰라서 못 먹고 있는건디요.)
여하튼 우린 삼겹살 궁합이 좋은 편이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술이 빠질 수 없어 친구는 맥주를, 난 사이다를 시켰다.
친구가 하는 얘기를 들으며 나는 상추에도 싸먹고 명이나물에도 싸먹고 무 쌈에도 싸먹는다.
오물오물하며 리액션도 해주고 하하호호 이야기꽃이 피워진다.
그동안 나의 옷에는 고기 냄새가 속속속 박히고 있었다.
고기를 다 먹고 나면 아이스크림을 먹어줘야지.
입에 고기와 쌈 채소와 마늘향이 진하게 올라오니 상큼한 것으로 마무리해 줘야 한다.
불 앞에 계속 있었더니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밖에 나오니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진다.
고깃집에서 다 못한 수다 2차전을 팥빙수를 먹으며 하기 시작한다.
친구와 만나면 왜 이리 할 얘기가 많은지.
하루 종일 떠들면 목이 아파서 말을 못 하는 게 아닌 이상 할 얘기가 수두룩빽빽이다.
이야기는 늦게까지 이어지고 친구를 배웅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
옷에 아직 진한 고기의 향이 남아있다.
킁킁 맡으며 '아 부자의 향기.' 했더니 지나가는 사람이 풉하며 웃었다.
큼큼큼 쑥스러워 발걸음을 점점 빠르게 재촉해 집에 도착한다.
고양이는 내 몸 구석구석을 킁킁거리더니 고기 냄새가 맘에 들지 않았는지 휑하고 돌아가 버렸다.
고기 냄새를 씻어줄 시간이 되었다.
섭섭하지만 보내줘야지.
다음 분기 때 만나 삼겹살.
오늘 덕분에 행복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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