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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생 Nov 19. 2024

죽음

오늘도 오전을 무기력하게 보내며 생각이 꼬리를 물다 죽음에 대해서 생각했다.
삶은 죽음을 자꾸 잊어버리게 한다.
언제든 죽음이 내 앞에 올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하는데 잊어버리니 이렇게 무기력하게 있는 것이겠다.
지금 누워있는 이 시간이 누군가에겐 그토록 바라던 하루임을 깨닫자 죄책감에 더는 누워있을 수 없어 일어났다.
우선 요가 매트를 깔고 스트레칭 대신 그 위에서 고양이와 사랑사랑을 한다.
매일 보아도 사랑스러운 나의 고양이.
이리저리 뽀뽀도 해주고 격하게 얼굴에 박치기도 받으면서 시간을 보낸다.
무기력으로, 손목이 아프다는 핑계로 붓을 잡지 않은지 거의 일주일이다.
내일 수업 날인데 그래도 집에서 한번은 붓질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슥슥 그리다 보니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그러고 보니 11월이다.
올해를 마무리하며 친구도 만나고 집에 사람도 초대해야 하는데 이렇게 정신이 없다.
이번엔 무슨 음식을 만들지.
집에 사람을 들일 때는 생각할 것들이 많다.
여자들이라 사진을 찍기에 맛도 좋 보기 좋은 떡을 만들어야 한다.
잘하는 음식이 몇 있지만 다 한 번씩 써먹어서 조금 색다른 걸 시도해 보고 싶어졌다.
30대 후반이 되니 가정이 생기거나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친구와 만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1년에 한 번은 만나고 싶어 연말에는 같이 시간을 보내려 한다.
아까 죽음이라는 생각의 끝에 다다랐을 때,
이제 이유 없이 불쑥 전화하는 건 조금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에 민화반에서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다들 연세가 있다 보니 전화가 오면 마음을 가다듬고 받는다는 얘기가 나왔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다.
갑자기 친구에게 전화가 오면 거의 다 죽음에 관한 전화라고 했다.
나는 아직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데 조금 더 나이가 들면 저 마음이 이해되겠지.
그래서 친구에게 이제 불쑥불쑥 전화 안 할게.
얘기하니 친구가
'넌 그냥 살던 대로 살어.'
'갑자기 변하면 큰일 나.'
하며 웃는다.
'나 나름 심각하게 생각한 거라니까?'
'그래. 심각하게 잘 생각만 하고 계속 그렇게 해.'
'췟.'
'근데 이번엔 뭐 만들 거야?'
'몰라 빵꾸똥꾸야.'
친구는 뭘 먹을지가 더 관심이다.
입이 삐쭉 나왔지만 생각해 둔걸 줄줄 말했더니 좋아한다.
죽음은 항상 곁에 있는데 이렇게 삶이 즐거워지면 자꾸 잊어버린다.
그렇다고 계속 죽음만 생각하면 센치해지니까.
오늘 죽음을 생각하며 다시 기운을 낸 것에 감사를.
삶에 감사함을 느낌에 다시 한번 감사를.
그런 의미로 유언을 한번 작성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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