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집안일의 날이다.
집안일은 해도해도 끝이 없고 티가 안 나지만 안 하면 금세 티가 나는 신기한 일중에 하나다.
연말이라 친구들이 집에 올 예정이니 천장부터 시작해 벽 먼지를 제거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바닥을 쓸고 닦고 빨래도 하고 콘센트와 안 보이는 구석구석까지 모두 닦아준다.
사람들이 올 때 무섭거나 많은 관심으로 귀찮을 수 있으므로 가구배치를 바꿔 나의 고양이가 언제든 숨을 수 있게 혼자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도록 요리조리 공간들을 만들어 준다.
나는 이상하게 다른 물건엔 욕심을 내지 않으면서 쇼핑백과 종이박스 및 포장 비닐에 집착하는 버릇이 있다.
버리기엔 탄탄하고 쓸만해 보여 아까워서 한 번이라도 더 사용 후 버리고 싶은 마음에 모아둔 것이 꽤 된다.
보통 당근을 할 때 사용하기는 하는데 사용하는 횟수에 비해 너무 많이 모아버렸다.
버리자니 정말 튼튼하게 만듦새가 좋아 오늘도 버리려다가 다시 내려놓는다.
튼튼한 플라스틱 통들은 모두 깨끗이 씻어 정리함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좋은 플라스틱 통을 버리게 될 때면 아까운 마음이 한가득이다.
정말 신기한 게 이런점은 나의 외할머니를 닮았다.
멀쩡한 물건들을 아까워하시며 고이고이 모아두시는 외할머니가 생각난다.
엄마나 이모들은 짐이 많으니 싫어하며 버리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았지만 항상 실패로 돌아갔었다.
하지만 어린 나는 항상 좋아 보여 눈이 반짝였다는.
외할머니네 방들과 창고는 새로운 물건들이 가득한 모험의 세계로 가는 문같이 느껴졌달까.
이불장에 이불도 가득가득하고 그 안에 수욱 들어가 오랜 시간 숨다가 잠이 들어 어른들을 걱정시키기도 했다.
도자기 항아리 안에는 언제나 동전들이 가득 들어있었고 창고엔 명절 선물세트와 직접 담근 술과 한약방에 있을법한 무언가를 말리는 것들이 언제나 많았다.
그릇들도 하나같이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오래된 것들이 가득했지만 그것이 한 번도 낡게 느껴지거나 싫지 않았다.
친할머니와 엄마는 다른 건 몰라도 깔끔하고 간결한 걸 좋아하는 게 잘 맞아서 언제나 새것의 예쁜 그릇들을 내놓았지만 나는 외할머니의 그릇들이 더 정겨웠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나의 집엔 그릇이 별로 없다.
도자기 공방에서 원데이클래스로 만든 그릇을 밥그릇과 국그릇으로 사용하고 있고 접시는 연식 있는 유리그릇 3개가 고작이다.
친구들이 놀러 오면 부족하긴 하지만 프라이팬을 식탁에 올려두고 먹거나 나무 도마에 잘 장식을 해서 사용하고 있다.
가끔씩 인테리어 잡지나 꾸며져있는 공간을 볼 때면 접시를 새로 들일까 고민하지만 그러다가 스르륵 마음이 사그라들곤 한다.
다행이게도 빈티지들이 각광받게 되어 오래된 나의 유리그릇들이 멋있다는 칭찬을 받기도 하며 새것은 그저 나의 욕심이라고 깨닫곤 한다.
(외할머니네 창고에는 꽤나 좋은 그릇세트들도 선물로 들어와 있었지만 사용하시지 않았다. 지금은 그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집안일을 다 끝내고 한쪽 구석엔 버릴까 말까를 고민하게 만드는 박스를 만들어 두었다.
누구에게 주기도 뭐 한 그렇다고 가지고 있어도 지금 당장 사용하진 않을 그 무언가의 물건들.
고민고민을 하다가 없으면 아쉬우니 갖고 있기로 한다.
또 없으면 아쉬워서 찾게 되는 순간이 있지 않을까.
언제나 미니멀리스트를 꿈꾸지만 아직도 맥시멀인,
하지만 그럼에도 바라보고 있으면 또 기분이 좋아지는 재활용품 애호가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