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밥을 좋아했다.
삼시 세끼 밥이 좋아 군것질을 안 했다.
빵이나 과자를 먹으면 입이 텁텁해 밥이 맛이 없어지니 나에게 군것질은 밥을 못 먹게 하는 방해요소같이 느껴져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은 좋아하게 되었지만 후후.
예전엔 항상 따끈한 밥에 국물, 반찬 두어 개만 있으면 두 공기는 거뜬히 먹었다.
(할머니는 밥을 한 그릇만 먹으면 맛이 없냐고 되묻곤 하셔서 항상 두 그릇을 먹곤 했다.)
흰쌀밥에 맛있는 김치 하나만 있어도 그게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그러다가 성인이 되어 서울로 상경해 밖에서 백반을 먹는데 고개가 갸우뚱 해졌다.
'밥이 왜 맛이 없지?'
집이 아니라서 그런가.
외로워서 그런가? 생각했다.
나에게 밥은 항상 맛있는 것! 이라는 인식이 있었기에.
그도 그럴것이 집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가족을 위해 직접 곱게 길러 수확해 도정한 쌀로 밥을 만들었다.
(지역자체가 쌀이 좋기로 유명해 학교급식도 주변식당도 다 쌀이 좋아 정말 당연하게 살아왔다.)
논이 없는 도시의 가게에서 쓰는 쌀이 같을 수는 없었던 거지.
밥순이인 나는 한동안 힘들었다.
삼시 세끼 꼭 밥을 먹어야 하는데 밖의 밥이 맛있는 곳도 맛없는 곳도 있으니 적응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나의 대학 친구들은 밥보다는 햄버거, 양식파들이었다.
나는 삼시 세끼 밥에서 점점 한 끼는 햄버거나 피자, 짜장면 등으로 해결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점점 집밥이 그리워지게 돼서 요리를 시작했다.
밥을 안치는 것도 계란후라이도 겨우 하던 내가 먹고살기 위해 주방 앞에 서게 되었다.
요즘 연말이라 약속이 많아져 자꾸 외식을 하거나 밥이 아닌 면이나 양식 등을 많이 먹어 오늘은 주방 앞에 선다.
좋은 쌀을 곱게 씻어 불린 후 냄비에 넣고 불을 올린다.
(나는 냄비밥을 좋아해서 전기밥솥을 없앴다.)
그리고는 맛있는 겨울 시금치를 꺼내 씻고 살짝 데쳐서 무침을 만든다.
집에 나박물김치가 있어서 그릇에 덜어 준비를 한다.
살짝 부족한가? 싶어 계란말이도 얼른 만들어본다.
금세 한상 완성이다.
다 만들어 놓고 보니 밥순이는 침이 뚝뚝 떨어진다.
윤기가 자르르르 나는 흰쌀밥에 계란말이를 얹어 한입 한다.
'그래 이 맛이다!'
시금치와도 한입 해보고 그러다 목이 막히면 물김치 국물을 후루루룩 마셔준다.
오랜만에 먹는 한식 밥상에 정신을 못 차리고 또 코를 박고 먹었다.
밥순이는 밥을 먹어야 한다.
아무리 밖에서 좋은 산해진미를 먹어도 집밥을 먹어야 비로소 끼니가 완성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오늘도 두 그릇을 완그릇했다.
땅땅해진 배를 두들기며,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역시 밥은 언제나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