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란 게 항상 좋은상태로 유지되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 갑자기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기 시작하더니 기분이 오락가락이다.
또 염증수치가 올라갔거나 호르몬의 장난이겠지.
'이것은 나의 기분이 아니다.'
'이것은 호르몬의 장난이다.'
되뇌어보지만 별 소용은 없다.
그래도 정말 다행인 건 벌겋게 달아오르기만 하고 간지럽지 않은 것.
(간지러웠으면 하루 종일 으아아아- 했을 것이다.)
날도 추운데 몸은 벌겋지, 기분이 가라앉으니 마음이 자꾸 과거 여행을 하고 싶어 한다.
예전 억울했던 일, 아쉬웠던 일 등 부정적인 과거만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왜 그때 반박하지 못했을까?'
'조금 더 친절하게 대할걸.'
뭐 자꾸 생각해 봤자 지나간 것은 돌아오지 않는데 호르몬의 노예가 된 인간은 알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한 시간정도 과거와 마주 보고 또 보내주었다.
이것도 많이 하다 보니 익숙해져서 점점 보내주는 시간이 빨라지고 있다.
많이 해보다 보니 요령이 생기는데 자꾸 나의 잘못 같아 자책하게 되고 죄책감과 한심함이 몰려들 때가 있다.
거기에 빠지면 하루 종일 우울해지기도 한다.
그러면 난 뻔뻔 모드로 나간다.
'맞아 다 내 잘못이지.. 근데 어쩌라구.'
'이제 다 끝난 일인데 뭐뭐뭐!'
'자책하면 밥이 나와 떡이 나와. 다음!'
이렇게 다 한 번씩 훑고 지나가면 기분이 싹 나아져서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해진다.
(신기한 건 맨날 떠오르는 것만 떠오른다는 것. 레퍼토리가 비슷비슷하다.)
그러고는 항상 집안 곳곳 더러움이 눈에 들어와 청소 병이 도진다.
쓸고 닦고 쓸고 닦고를 반복하다가 힘들어서 대자로 뻗어버리는.
루틴처럼 되어가는 게 웃기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한 기분이다.
씻고 거울을 보니 목 아래로 다 벌겋다.
근데 이게 안 간지러울 수가 있구나 정말 감사하네.
운이 콸콸콸 들어오고 있나 보다.
(보통 두드러기가 나면 벌건 발진보다 간지러움 때문에 죽을 맛인데 진짜 간지러움이 하나도 없어서 감사함이 가득이다.)
감정 씨름을 했더니 배고파.
이것저것 주워 먹지 말고 좋은 것들만 먹어야지.
아 그리고 두드러기 너.
얼굴로는 올라오지 마라 증말.
연말이야, 나가고 싶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