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간 그림 수업에서 난데없이 총무를 맡았다.
그동안 맡아왔던 총무님이 이제 수업을 못 나온다는 이야기와 함께.
'제가요?'
'젊은 사람이니 잘할 거야.'
'아 저는..'
주춤거리는 사이 내가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리고는 빠르게 인수인계를 해주시곤 끝이 났다.
얼떨결에 총무를 맡고 열쇠를 넘겨받았다.
'뭐가 지나간 거지.'
감투 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나이 지긋하신 왕언니께서 부탁하니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그저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것뿐인데.
일이 늘어버렸다 이런.
총무가 되기로 결정된 후,
생각 외로 이 수업에 이런저런 일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사건건 참견하는 이가 있었고,
요령 있게 일을 못하는 이가 있었고,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이가 있었다고 한다.
물건을 이것저것 정리하고 있는데 한 사람씩 오며 가며 이야기를 전한다.
왠지 이 수업이 내가 알던 것과는 조금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에게 불만들이 있었나 보다.
내가 뒤에서 물건들을 보고 있으니 총무님이 다가와 이야기한다.
'처음부터 강하게 나가야 해.'
'네? 강하게요?'
'응. 내가 35년 직장 생활했지만 여기가 더 힘들었어.'
'허러러..가지마세효오오오.'
'괜찮아. 여생씨는 잘할 수 있어.'
'중심을 잡고 휘둘리지 않으면 돼.'
그렇게 한마디를 남기고는 다시 웃는 얼굴로 사람들 사이로 가버리셨다.
총무 일을 인수인계받고 오늘부터 마감을 내가 하기로 한다.
미리 연습해놔야지 뒤탈이 없을 것 같아서.
이리저리 뒷정리를 하고 있는데,
누가 이야기한다.
'그러게 평소에도 이렇게 했으면 얼마나 좋아.'
'평소엔 끝나자마자 쌩 가더니.'
날 보고 웃으며 이야기한다.
다음 달부터 나오지 않는다는 총무님이 아닌 또 다른 사람이다.
나는 의문이 든다.
수업이 끝나고 끝까지 남아 사람들을 배웅하고 일을 도와주길 원했던 걸까?
그렇게 해달라고 나에게 말하면 되는 것이었을 텐데.
내가 눈치 없는 사람이었나.
갑자기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다.
왕언니는 뒷정리로 화장실을 가는 나에게 조용히 와 이야기한다.
'부탁해서 미안해.'
'다들 그만두고 나이 많은 사람밖에 남지 않아서.'
'내가 많이 도와줄게.'
웃으며 이야기하신다.
그리곤 끝나고 함께 나가는 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미리 나를 총무로 점찍어두었다는 이야기까지.
아. 나의 인생이 스펙터클해지고 있다.
왠지 수락하지 말았어야 하는 느낌이 온몸을 휘감고 있긴 한데.
수업에서 친해진 언니가 조용히 한마디 한다.
'나한테 하라고 했으면 난 바로 그만뒀을 거야.'
'아아아아 언니!!'
오늘 인생의 난이도가 +10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