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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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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생
Jul 30. 2024
하루 종일 변변치 않게 먹었더니 12시가 넘었는데도 잠이 안 온다.
눈을 감고 있어 보고 명상음악을 들어봐도 눈이 점점 말똥말똥.
누워있다가 뒤척이다가 '으아아아아-' 하며 일어나 버렸다.
잠이 덜 깬 나의 고양이는 어리둥절하게 나를 쳐다보고,
나는 이마에 뽀뽀를 한번 해주고 몸을 일으킨다.
무드등을 하나 켜고 앉아서 생각한다.
'배가 고파 어떡해. 근데 2시가 넘어버렸어.'
괜히 집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녀 본다.
우유를 한잔 마실까? 시리얼을 먹을까?
에잇. 주방 식료품 서랍을 열어 손에 제일 먼저 잡히는 것을 꺼냈다.
라면이 손에 잡혀버렸다.
이게 손에 잡히는 순간 내 머릿속에서 우유와 시리얼은 없다. 그냥 없어졌어.
망했다. 망해부려쓰- 하면서 입가엔 미소가 입에선 노래가 흥얼흥얼이다.
'이럴 거면 그냥 아까 먹을걸.' 하고 후회해 보지만 지나갔으니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으로 물 대신 우유를 넣고 라면을 끓인다.
이렇게 먹으면 확실히 다음날 얼굴이 덜 부어.
(매운 걸 못 먹어서 이렇게 먹어도 난 우유를 추가로 마신다.)
왜 새벽에 먹는 라면은 더 맛있을까.
한 봉지를 앉은자리에서 뚝딱했다.
집에 있는 열무김치까지 곁들이니 아주 환상이었다구.
'행복이 멀리 있는 게 아니야.' 하며 밖을 바라본다.
밖의 새까만 어둠을 바라보니 예전이 떠오른다.
시골인 본가에서 살았을 때,
동생과 나는 야식 메이트였다.
몰래 야식 먹을 때면 쌍둥이라 할 만큼 타이밍과 죽이 잘 맞았다.
학창 시절, CD로 노래를 듣다가 괜히 센티해져서 잠을 못 들고 허기를 느껴버리면 주방으로 갔다.
내 방은 바로 주방 옆이었기에 몰래 들어가서 야금야금해 먹기 딱 좋은 위치였다.
내 동생 방은 떨어져 있었는데 주방에서 내가 아무리 조심스럽게 움직여도 아주 귀신같이 달려와 합세했다.
이럴 땐 아주 쿵짝이 그냥 기가 막히지.
주방에서 소리 하나 나지 않게 손에 감각을 최대한으로 올려서 조용조용하게 하고 있다가 문 여는 소리가 들리면 얼음처럼 얼었다가 동생인 걸 확인하면 안도의 한숨을 내며 키득키득했다.
'크크 놀랬잖아. 빨리 와서 라면 끓여. 무슨 라면 먹을 건데?' 하며 소곤거렸다.
그 당시에 나는 라면도 잘 못 끓이는 요리젬병이라 언제나 셰프는 동생이었다.
동생이 '라면.' 하면 비닐봉지를 소리 안 나게 개봉해 손에 쥐여주고,
'계란.' 하면 그릇에 계란을 깨서 건네주었다.
할머니표 김치까지 곁들이면 거기서 바랄 것이 무엇이 더 있었을까.
사춘기인 아이들이 어른들 몰래 먹는 라면은 항상 꿀맛이었고,
밤에 먹으면 안 된다는 룰을 깨는 건 짜릿 그 자체였다.
하지만 먹고 나면 얘기가 다르다.
서로 설거지하기 싫어서 가위바위보 하고 네가 잘났네 내가 잘났네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걸리기도.
(서로 너 때문에 걸렸다면서 너랑 다시는 안 먹는다고 하고 또 같이 먹었다 후후.)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가끔 고라니소리나 들리는 시골에서 서로의 발자국 소리까지 경계하며 특급작전을 수행하는 것처럼 먹었던 우리의 야식 '라면.' 이야기.
혼자 사는 생활에 익숙해져 버렸지만 가끔 복작복작했던 시골의 나날들을 떠올린다.
그 당시 우리에게 라면 한 봉지는 사랑 그 자체였다.
매번 두 개 끓일까 세 개 끓일까를 고민하고 간혹 동생이 먼저 잠이 들어 나 혼자 먹게 되거나 내가 먼저 잠이 들어 동생이 혼자 먹게 되면 꼭 그다음 날 얘기했다.
'왜 먼저 잠드는데. 심심했잖아.'라고.
너와 함께하지 못해 아쉬웠어를 이렇게 표현했다.
거의 10년 동안 이런 새벽시간에 라면을 먹은 적이 없었다가 오랜만에 먹으니 추억여행을 했다.
그래서 라면은 뭐다?
'사랑이다 이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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