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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 Sep 07. 2016

우아하지 못한 자신을 견뎌내는 것

블로그 총조회수가 10,000건을 넘었다. 블로거에게 TOTAL 10,000이란 숫자는 어떤 의미인가.

웬만한 블로거들에게는 정말 언제 도달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하찮은 숫자일 것이다.  


정말 꼬꼬마 수준이지만, 블로그 조회수 자릿수가 다섯 자리가 되니 감회가 남달랐다. 

블로그를 처음 만든 순간부터, 퇴사 후 소회를 거침없이 적어나가던 일, 비문 투성이의 글들, 네이버 검색에 조금이라도 걸려보려고 애쓰던 일들까지 새록새록 떠올랐다. (이제는 검색 따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블로그의 주소를 누군가에게, 특히 지인들에게 알려주기가 창피했다. 

정돈되지 않은 나의 기록을 보고 얘 뭐 이렇게 살고 있어, 뭐 이런 글을 쓰고 있어 할까 봐.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정제되지 않고, 우아하지 못한 모습을... 견디는 것에 대하여. 


내 네이버 블로그는 2015년 10월 20일에 개설됐다. 거의 일 년이 다되어 간다. 

블로그를 시작한 계기는 회사에 다니는 것 말고도 ‘다른 기회를 열어보고 싶어서’였다. 

평범한 사람이 세상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최적의 채널은 블로그라고 생각한다.  

물론 SNS도 있지만 휘발성이 강하다. 블로그는 어찌 되었건 포스팅들이 차곡차곡 쌓인다. 


간간히 블로그를 하면서 

내가 쓰는 글이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인지,

누가 보기는 하는 것인지, 

너무나 외롭고... 지루했다. 

그런데 조회수 10,000을 찍고 보니 깨닫는 점이 있다. 

아 그냥, 정말 ‘그냥’ 하면 되는구나. 

이제는 많진 않지만 내가 어떤 글을 쓰든 공감해주고, 댓글을 달아주는 이웃들이 있다. 

때문에 아주 심심하진 않다. 이웃들의 작은 피드백들이 동력이 되어 더 좋은 글을 쓰게 된다. (널 만나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져... 이런 느낌이랄까)


최근 몇 개월간 들었던 말들 중,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자꾸 ‘우아’하려고 하기 때문에
시작도 못한다.

이건 나이가 들수록 더 그렇다. 


작게는 운동을 배우는 일부터, 크게는 퇴사를 하고 삶을 바꿔나가는 일까지. 

나이가 들수록 정돈되어 있지 않고, 미숙하고, ‘폼’ 나지 않는 순간들을  못 견뎌한다. 

스스로도 못 견디겠는데 이걸 남에게 보이는 것은 더 모양 빠지는 일이다. 


그래서 아예 시.작.도.안.한.다. 

그리곤 늘 하는 말이 있다. 

‘내가 안 해서 그렇지... 하기만 하면 쟤보단 잘하지.' 


‘폼’, 소위 ‘간지’를 중시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약간은 각을 잡고, 허세에 차있었다. 

무언가 부족하거나 잘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정말 싫었다. 


그런데 이제야 조금씩 깨닫는다. 

우아하게 해내는 게 능사가 아니라, 

일단 어찌 되었건 ‘그저 하는 게’ 용기이고, 능력이고, 실력임을. 


다치지 않으려고, 창피하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재면서 젠체하는 동안에 

누군가는 그냥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해나간다. 

곁에서 보면 처음에는 말도 안 되게 미숙했는데, 

이런 친구들이 결과적으로 그 누구보다 단단해지고 노련해진다. 


‘아 블로그라도 해야 하는데’

이 얘기를 수년 전부터, 만날 때마다 함께 했던 친구들이 있는데 

아마 아직도 시작도 안 한 친구들이 많을 거다. 

어설프게 글을 쓰긴 싫고, 한방에 ‘우아’해지려는 욕심 때문에. 

(내가 그랬으니까 충분히 이해한다) 

자타 똑똑하다고 인정한 친구일수록 시작이 더 어렵다.

그 ‘똑똑이’ 프레임에 갇혀서 장전만 하다가 ‘헛똑똑이’가 된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폼나고 멋있을 수는 없다. 

만약 멋지고 폼 나보이는 무언가가 혹은 누군가가 있다면 

때로는 실수하고, 창피할지라도...

설령 ‘우아’ 하지 않을지라도, 

그 쪽팔리고 외롭고 지겨운 지점을 견디고 헤쳐나갔기 때문일 거다. 

이게 비로소 우아해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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