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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K에게. 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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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원 Sep 17. 2022

연습실


밴드에서 건반을 치게 된 후, 가장 좋았던 건 아지트가 생겼다는 거였다. 음악을 연주하고 만들어내고 그 안에 있는 내가 퍽 마음에 든 게 사실이지만 집이 아닌 피난처가 있다는 것만큼 따뜻한 일도 없었다.


밴드의 멤버들은 거의 매일 술을 마시러 다녔다. 그럴 때면 빈 연습실은 온전히 나의 차지. K를 데려와  연습실에서 곧잘 시간을 보냈다. 우울한 가정사, 내가 가진 부정적인 것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K야 말로 아지트에 들어올 만한 자격을 갖춘 것이다.


K가 연주할 수 있는 유일한 악기는 피아노. 대체로 건반 자리를 양보하고 다른 악기들을 만졌다. 따로 연주를 배운 적이 없어서 만졌다는 표현 외에는 어울리는 표현이 없을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외골수에 방안 퉁수, 집안 퉁수였던 나는 내 공간이 아닌 곳에서는 힘을 잃었다. 목소리도 작아지고 자신감도 없어지고 낯가림이 극심한 유형. 그런 나에게 연습실은 가시밭길 같은 현실을 잊게 해주는 망각의 장소이기도 했다.


K는 희생자였다. 나의 음악 취향을 강요당하고 여러 밴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뽐내는 꼴불견을 상대해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K에게 가장 미안한 건 음악을 강요했다는 지점이다. 음악이라는 단어와 강요라는 단어는 한 공간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들인데 미숙한 나는 철이 일찍 든 친구를 재물로 삼았다.

괴로워하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밴드의 음악을 들어야 했던 K. 행복에 겨운 얼굴로 설명하는 나에게 차마 싫은 소리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 잠시라도 행복의 카테고리에 들어있는 나를 구질구질한 현실로 꺼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했던 나쁜 짓.

K가 좋아했던 '뉴에이지'라는 장르를 무시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나를 바라보는 K의 눈빛은 측은하고 안타까운 눈빛. 흑백논리에 단단히 사로잡힌 나를 불쌍히 여기는 눈빛이었던 것 같다.


학교가 끝나면 매일같이 연습실로 뛰어갔는데, 문을 벌컥 열었을 때 K가 먼저 와 있다면 그날은 하루가 끝날 때까지 기분이 괜찮았다.


낮은 음역대는   없고 높기만  목소리에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나에게 K 눈빛만이 온전한 응원이었다. K앞에서는 부끄러움도 없이 마음껏 노래를 불렀다. 반대로 흥얼거리는  목소리를 엠비언스로 두고 책도 읽고 공부도 하는 K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없기도 했다. 각자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들을 . 종종 K 바라봤다. 이상하게 K  쪽을 보려고 하면 재빨리 다른 쪽을 바라보게 된다.  고요가 좋았다. 눈을 마주치면 침묵이 깨지게 되니까.


핵전쟁이나 외계인의 침략이나 뭐 그 후에- 살아남은 단 두 명의 사람이 지하 벙커에서 음악을 듣고 있는 상황같이 여겨졌다. 지구에서 우주에서 우리만 남아있는 느낌. 평화는 작은 연습실 안에만.

공상을 즐기는 열여덟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상상이고 그 시절에만 가능한 유대감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칭찬은 거짓 같고 믿을 수 없었지만 K가 하는 말은 꽤 믿음직스럽게 여겼다. K는 내 목소리를 '물기 어린 목소리'라고 좋아했다. 나는 좀 피부도 푸석거리고 머릿결도 바스러질 것 같고 수분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안색인데- 유일하게 강단 있는 것은 목소리뿐이라서 이걸로 너를 행복하게 한다면 그저 좋았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꺼내봄직한 장소는 연습실이 유일하다.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평화로운 공간. 다시 없을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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