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새벽 5시 30분. 책상에 앉아 책을 읽으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때 빛이의 방에서 "엄마~"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평소 7~8시쯤 일어나는 빛이가, 그날은 이른 새벽에 잠이 깬 거였지요. 빛이 침대에 가서 함께 누워,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습니다.
"잠이 깼어?"빛이의 눈을 바라보며 사랑스러워
"사랑해." 하고 이마에 뽀뽀를 했습니다.
그리고 옆에 누워 다시 잠이 들까 싶어 눈을 감았어요.
빛이가 작은 손으로 저를 토닥이며 말했습니다.
"엄마, 이렇게 토닥여줄까, 이렇게 토닥여줄까?"
따뜻한 토닥임과 귀여운 목소리에 웃음이 절로 났습니다.
이불 속에 얼굴을 파묻던 빛이는, 갑자기 제 손을 킁킁 맡았어요.
빛이의 이불은 원래 제 이불이고 이불냄새를 맡는것을 좋아했어요.
"빛아, 엄마랑 엄마 이불에서 같은 냄새 나?"
"음, 이불은 오래돼서 더 달콤한 냄새가 나."
"그럼 엄마는? 엄마는 냄새 잘 모르겠는데?"
그러자 빛이는 제 손을 다시 킁킁 맡더니 말했어요.
"민들레꽃씨 냄새가 나." 하고 웃었습니다.
민들레꽃씨 냄새라니! 어쩜 이렇게 표현을 할까요.
아이의 말에 새벽 감탄을 하였습니다.
문득 떠오른 건, 민들레꽃씨를 불어 날리며 웃던 빛이의 모습이었어요. 아이에게 세상은 작은 민들레꽃씨 하나도 감탄의 대상이었고, 향기를 맡고, 이름을 붙이고, 나누고 싶은 세계였지요. 자연을 느끼는 감각이, 곧 삶을 느끼는 감각이라는 것을 아이를 통해 다시 깨달았습니다.
저는 매일 조금 더 '느끼고, 즐기고, 표현하는 삶'을 꿈꿉니다. 그런데 마음이 무뎌질 때는 자연을 바라보는 감각부터 희미해지는 것 같아요. 바람의 결, 햇살의 온기, 아침 공기의 선명함. 이런 것들을 느끼는 대신, 하루가 그저 흘러가기만 할 때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알고 있습니다. 세상이 얼마나 놀라운 감각으로 가득 차 있는지를. 아이의 눈에는 민들레꽃씨 하나도 이야기가 되고, 작은 개미 한 마리도 관찰의 대상이 되지요. 저도 하루를 더 감각하고 싶습니다. 창문 너머 들어오는 봄날의 온기를, 손끝을 감싸는 따뜻한 찻잔의 향기를, 아이의 부드럽고 따스한 손길을.
'지금 여기'에 온전히 머무르는 연습. 그것이 감각의 안테나를 세우는 시작이겠지요.
그리고 하루를 감각할 때, 하루가, 삶이 훨씬 더 선명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