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부드러운 힘을 믿기로 했다.
지난주부터 날이 갑자기 따뜻해지더니, 비실비실하던 나무들도 제법 기운이 들어 보인다. 가지 사이로 조심스레 고개를 내민 새순들이, 어느새 연둣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우중충하던 뒷뜰 풍경이, 불현듯 화사하게 달라져 있었다. 블라인드를 천천히 위로 끌어올렸다. 바깥 풍경을 눈에 가득 담아두고 싶은 마음에 공연히 창밖을 한참 바라본다.
이름 모를 새들이 각자의 톤으로 노래한다. 마치 서로 묻고 답하듯, 대화를 주고받듯, 간격을 두고서 한 소절씩. 의미는 모르지만, 지들끼리는 분명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쌀쌀하다. 열어 둔 문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이 책상 아래에 놓인 두 발을 살짝 차게 한다. 따뜻한 차가 생각나 주전자를 올리고, 찬장 한켠에서 티백을 하나 꺼낸다. 사뿐히 잔 안에 내려앉은 티백을 보며, 지난주부터 심했던 기침이 조금은 가라앉은 듯 느낀다. 아직 목이 간질거리긴 하지만, 꿀이 잔뜩 들어간 따뜻한 차 한 잔이면 괜찮아질지도 모르겠다.
겨울 내내 나는 누군가를 원망하고 미워했더랬다. 쉽게 용서가 되지 않아 분이 났고, 그 분노에 자꾸만 자존심이 긁혔다. 왜 하필 나는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지쳐야 했을까. 마치 제비뽑기에 실패한 것처럼, 어쩔 수 없는 우연이라 여기면서도 마음은 내내 뒤틀려 있었다.
그러다 문득, 창밖을 보던 어느 순간 번뜩 이런 생각이 스며들었다.
그들에게도 내가 별로였을 수 있겠다…
나는 내내 바락바락 옳다고 우기고 있었던 건 아닐까. 어쩌면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아주 작은 가능성조차 허락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생각해보면 그렇다. 내가 좀 틀리면 어떤가. 그가 좀 별로이면 또 어떤가. 조금 더 너그러운 사람이 한 발 먼저 다가가 안아주면 되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시종일관 시비를 가렸고, 마음속에서 수없는 설전을 벌이며 겨울을 그렇게 지나보내고 말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 껍질 사이로 연둣빛 새순이 얼굴을 내민다. 여리지만 강한 존재.
딱딱하고 두꺼운 껍질을 밀어내기 위해 얼마나 큰 힘이 필요했을까. 그런데도 새순은 부드럽고 야들야들하다.
내 안에도 그런 힘이 있을까.
부드럽지만 단단한, 끝내 딱딱한 마음을 밀어내는 그런 힘이.
주전자의 소리가 멈췄다. 주방이 고요해진다. 나는 천천히 주전자를 들어올리고, 뜨거운 물을 유리잔에 부었다. 꿀이 서서히 녹아들고, 향긋한 김이 피어오른다.
올해는 조금 더 부드러워질 수 있을까. 아니,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다. 꿀이 잔뜩 든 차를 마시면, 마음의 가장자리가 조금은 덜 날카로워질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