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서 온 그녀, 남에서 온 나, 그리고 한 그릇의 시간
가끔 불쑥, 아주 깊고 구수한 그리움처럼 순댓국이 생각난다.
한국에 있을 땐 그저 어쩌다 한 번쯤 찾던 음식이었건만, 미국에 와서는 시도때도 없이 자주 떠오른다. 낯선 환경 속에서 익숙한 풍경이 그리워질 때면, 희한하게도 그 국물이 생각난다. 얼큰하고 진한 국물에 밥 한 숟갈 푹 말아 입에 넣으면, 그 맛이 속보다도 먼저 마음을 덥히는 것 같다. 낯선 땅에서 유일하게 나를 완전한 ‘한국 사람’으로 회복시켜주는 음식, 그래서 나는 꽤 성실하게 그 국밥집 문을 연다.
내가 자주 가는 그 집은, 순댓국집치고는 다소 소박하다. 테이블도 몇 개 없고, 간격도 좁다. 하지만 새하얀 벽에 새하얀 테이블까지 더해져 나름 밝고 깔끔한 분위기는 갖췄다. 다만, 테이블 간격이 너무 가까워서 옆 사람의 대화가 반찬처럼 따라온다. 예컨대 새로 오신 목사님에 대한 뒷담화 같은 거. 속삭인다고 하지만, 나는 귀가 밝은 편이라 그들의 목소리 톤에 따라 감정선을 탄다. 어느샌가 나는 그들과 한편이 되어 그 교회 이야기에 몰입한다.
그 교회를 나도 다녀봤으니까.
그리고, 거기서 그 여인을 만났으니까.
아버지 장례를 치른 직후, 마음이 텅 빈 듯 허했다. 믿기지 않았고, 견디기 힘들었다. 4월 즈음이었나, 그냥 어디라도 기대고 싶어 무작정 교회를 찾아갔다. 처음엔 뒷자리에서 조용히 앉았다가 예배가 끝나면 도망치듯 나오는 걸 반복했는데, 어느 날 부터는 사람 목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그렇게 나는 새신자반에 등록하게 됐다.
딱히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구체적인 기대는 없었다. 다만, 정말 신이 있고 나를 불쌍히 여기신다면 나와 잘 통하는 친구 한 명쯤은 만나게 해주시지 않을까. 그런 속물 같은 소망이 조금 있었을 뿐이다.
새신자반은 총 4주 과정이었다. 매주 정해진 회의실에 모여, 성경공부도 하고, 교회 소개도 듣고. 근데 사실 내용은 귀에 잘 안 들어왔다. 그냥 누군가와 말을 섞고 싶었다. 그때, 그 여인이 내 옆에 앉아 있었다. 고운 생활 한복을 입고. 첫인상은… 묘하게 낯설었다. 뭔가 친숙하지 않았다. 당시엔 그 이유를 몰랐다.
이후 우리는 매주 얼굴을 마주쳤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친해졌다. 그녀의 말투에서 약간의 이질감이 느껴져 조심스레 고향을 물었다. 그랬더니 씨익 웃으며 말했다.
북에서 왔어요.
북한 사람을 태어나서 처음 만난 순간이었다. 속으론 약간 놀랐지만, 내가 놀란 걸 들키면 불편해할 것 같아 최대한 자연스럽게 받아넘겼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우리 둘 다 꽤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그때 생각했다.
이건 계시다.
신이 정말 있긴 있나보다
그래서 교회 바깥에서 그녀를 따로 만나기로 결심했다. 어디서 만나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 순댓국집이 떠올랐다. 국물에 이야기를 말아 먹기엔 딱 좋은 곳이었다.
우리는 순댓국 하나, 감자탕 하나를 시켜놓고 꽤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녀는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서 10년을 버티고, 한국에서 10년을 살다 이제야 미국에 정착했다는 것이다. 나는 북한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어서 듣기만 했다. 간간이 마음이 찡해져서 우리 둘 다 국물보다 눈물이 먼저 고이기도 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조금 더 가까워졌다. 나는 그녀를 자주 집으로 초대했고, 같이 밥을 먹고, 자고 가라고 권하고, 아침이면 융숭한 상차림을 차리고, 가끔은 멋진 디저트를 만들어 같이 먹었다. 정이란 게 원래 그렇게 같이 먹으면서 쓱쓱 스며드는 거니까.
그러다 어느 날 내가 먼저 물었다.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
책으로 써볼 생각 없어요?
누군가는 꼭 들어야 할 이야기 같아요.”
그녀는 깜짝 놀라면서 소름이 끼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것이 자신의 오래된 소망이자 꿈이라고 했다. 나 역시 그간 마음속에 쌓인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 글로 좀 덜어내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그렇게 우리는 의기투합....할 뻔했다.
하지만 첫 모임을 가지기로 했던 바로 그 주에 그녀는 내게 연락을 해왔다. 생활에 조여 급하게 취직을 하느라 함께 할 수 없게 되었다고. 너무 미안하다며.
처음엔 좀 서운했다. 내가 먼저 용기 내서 말문을 열었고, 함께 글을 써내려가면 서로 의지가 되리라 믿었는데… 그렇게 시작도 전에 흐지부지 끝이 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결국 글은 혼자 써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인생이란 본디, 치열한 고독과의 싸움이니까.
우리는 가끔 만나 따뜻한 국을 함께 먹는다. 낯선 타지에서 마주 앉아 나누는 식사 속에서 조금은 다르고 멀게만 느껴졌던 두 생의 결이 천천히 어우러진다. 북에서 온 그녀와 남에서 온 나, 서로 각기 다른 시간을 지나 여기까지 흘러온 두 사람은 그렇게 한 그릇의 따뜻한 음식 앞에서 인간으로서 서로를 마주한다.
우리는 애써 서로를 위로하지도, 끊임없이 확인하지도 않는다. 다만, 함께 밥을 먹는 것으로, 서로의 곁을 지킨다. 국물처럼 진한 연대는 백마디 얕은 말보다 오래 남는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흘러온 두 줄기의 강이 어느 지점에서 만나듯, 우리도 그렇게 이어졌다. 삶이 바닥까지 식어버린 날에도, 뜨거운 무언가를 함께 훌훌 떠먹을 수 있다는 건, 국밥 한그릇 만큼이나 든든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