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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리 Mar 14. 2018

카우나스 도심의 미국식 쇼핑몰

2017년 10월 1일

카우나스에서 숙소로 머물었던 국제기숙사에서 5분 정도만 걸어 내려가면 커다란 쇼핑몰 아크로폴리스(Akropolis)가 나온다. 도착 첫날 정신없는 와중에도 지척에 큰 마트를 포함한 쇼핑몰이 있다는 사실은 큰 안도감을 주었다. 3층 높이에 주차장도 지상으로 붙여 놓은 미국식 쇼핑몰이다. 남는 땅이 많으니 한국처럼 지하를 파 내려가는 경우는 별로 없다. 미국식 쇼핑몰이라 함은, 한국의 백화점처럼 매장들이 어깨를 맞대고 한 공간에 다닥다닥 모여 있는 게 아니고, 브랜드 별로 넓게 단독 매장을 가지고 줄지어 들어차 있는 공간이다. 야외의 쇼핑 거리를 실내로 그대로 들여놓는 형식이다. 1층에는 한국의 이마트에 비견할 만한 막시마(Maxima) 마트가 있고, 3층은 다양한 식당이 있으며 일곱 관짜리 멀티플렉스와 아이스링크, 볼링장과 당구장, 어린이 놀이공간도 있다. 아마 꼭대기에 카지노도 있는 듯한데 찾아보지는 않았다. 뻥 뚫린 3층 구조를 대충 나누어 옷, 신발, 어린이 매장들, 잡화와 인테리어 매장들이 몰려 있다. 

아크로폴리스는 큰 삼각형 공간이 3층으로 겹쳐 뚫린 쇼핑몰로 어지간한 종류는 다 있다. 비오는 날이면 걸으러라도 오게 된다.

조그만 카우나스 중심가에 이렇게 큰 몰이 들어와 있는 것은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었지만 신기하기도 했다. 보통 이런 큰 몰은 시 외곽에 차를 몰고 가야 할 만한 위치에 넓게 자리 잡고 있게 마련이다. 외곽에도 쇼핑몰이 또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수년 전에 아크로폴리스가 도심에 들어올 때 주변 거리의 가게 주인들을 중심으로 항의가 있었다고 한다. 영업을 시작한 후에는 주변 일대 상권이 크게 위축되어 많이 문을 닫았단다. 다행히 최근에 자유로를 중심으로 식당과 카페들이 다시 생겨나고 작은 상점들도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다. 역시 종합 쇼핑몰의 흡인력은 막강하다. 물건도 많고 편리한 것은 사실이니 경제발전과 국제화에 따른 어쩔 수 없는 변화일 것이다. 물론 오래된 거리의 작은 상점이 잘 유지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면서도 일상적인 장보기조차 대부분 아크로폴리스를 가게 되었다.

카우나스 외곽의 또다른 쇼핑몰 MEGA. 더 널찍한 2층 구조인데, 아크로폴리스에 뭔가 없을 때 가게 된다.

한적한 거리에 비하면 아크로폴리스는 상대적으로 항상 붐빈다. 특히 주말에는 유모차에 아기들을 데리고 나오는 사람이 많아서 더 바빠진다. 빈부 격차가 꽤 있는 리투아니아에서, 아크로폴리스에서 먹고 즐기고 쇼핑하는 사람들은 중산층 이상일 것이다. 막시마는 대형 마트이니 싸게 장을 볼 수 있지만, 의류나 신발, 화장품 등 개별 매장들은 글로벌 브랜드가 많고 가격은 한국과 비교해도 별로 싸지 않다. 이곳 임금 수준을 생각하면 식품을 제외한 상품들은 비싼 편이다. 서울의 백화점이나 코엑스몰 같은 곳에서 주말을 즐기는 풍경과 비슷한데,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다. 매장을 주의 깊게 보면 한국과 리투아니아의 구매력의 차이가 느껴진다. 여성의류의 경우 대부분 매장들은 자라나 망고, 베네통 같은 박리다매 글로벌 브랜드들이거나, 각종 브랜드를 모아서 할인 판매하는 매장인데 주로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하는 대형 업체들이다. 명품은 발붙일 시장이 아직 없는 것이다. 좀 비싼 옷이다 싶으면 여러 유명 브랜드 옷들을 조금씩 떼어다 전시하듯 내놓는 편집샵이다. 신발, 잡화나 화장품도 마찬가지다. 패션이나 쇼핑에 워낙 안목이 없는 내 눈으로도 매장 구성이 이곳 시장의 구매력과 경제 수준을 반영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할인 매장들이 더욱 할인을 할 때 잘 고르면 '득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 다른 대형마트 체인 리미(Rimi). 리모델링한 버스터미널에 생겼다.

9월이 끝나면서 겨울이 확 다가왔기에 겨울 부츠를 보러 다녔다. 눈과 비가 끊임없이 오는 겨울을 앞두고 신발 매장들은 검은 계열의 두꺼운 부츠가 잔뜩 깔렸다. 겨울이 긴 이곳은 여름에도 부츠를 계속 판다. 한국에서 부츠는 안 가져왔기에 구입해야 했는데, 가져왔더라도 여기 걸로 새로 사야 했을 것이다. 얇고 예쁜 부츠는 부츠가 아니다. 눈길에 미끄러지지 않는 안전한 바닥과 절대 방수의 두꺼운 부츠가 필수였다. 종합 할인매장과 브랜드 전문매장의 가격차이가 너무 컸다. 덴마크나 영국 브랜드의 단독 매장은 한국의 웬만한 구두 브랜드와 별 차이 없는 가격이다. 할인매장의 낯선 브랜드들은 싸도 너무 싸서, 가죽처럼 보이는 그 재질이 진짜 가죽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든 겨울을 나야 했으므로 적당히 중간 정도 되는 가격대로 골라 잡았다. 결론적으로 1년을 지나고 나니 역시 자본주의 시장의 가격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철 발 건강을 생각한다면 돈을 좀 쓰는 게 현명했다. 다른 변수도 있다. 겨우내 밤마다 도로에 분사하듯 뿌려대는 염화칼슘 때문에 가죽부츠는 매일같이 손질하지 않으면 오래가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분지 같은 부츠로 최대한 싸게 사서 신다가 버리는 게 맞기도 하다. 할인에 할인을 거듭하는 싼 부츠의 홍수도 이해가 되었다.

쇼핑몰의 분위기는 어디나 비슷하다. 앉아있으면 서울 같다.

글로벌 브랜드들은 한국과 별 가격 차이 없지만 식품은 훨씬 저렴하다. 카페나 식당 가격이 한국에서 외식하는 가격보다 확실히 싸다. 쇼핑몰이나 거리의 카페나 식당에서 시간과 돈을 쓰는 게 의외로 맘이 편했다. 문득 내가 상대적으로 부자로 보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객원교수 체재비가 풍족한 것은 아니지만 이곳 임금에 비하면 넉넉한 편이다. 교수 임금도 자세히는 모르나 한국보다 훨씬 낮아서 상대적으로 내가 여기서 부자가 되긴 하였다. 소련 붕괴 직후 개방이 막 시작되었을 때는 한국인을 포함, 외국인들이 물가의 격차 때문에 전부 재벌 2세처럼 먹고 마실 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 시절은 이미 끝났지만, 지금도 물가가 조금 차이 난다는 것만으로 상대적으로 부자가 된다. 새삼 우리나라가 좋은 나라구나 싶기도 하고, 약간의 돈 값 차이가 이렇게 생활방식과 느낌을 좌우한다는 생각에 씁쓸하기도 하다.

자유로 주변도 재개발과 리모델링이 진행되면서 상권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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