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유리 Mar 09. 2018

어디서나 운동만이 살 길이다

2017년 8월 31일

처음 카우나스에 도착해서 짐을 풀자마자 동료인 리나스 교수에게 했던 질문 첫 번째는 생필품 구입을 위한 마트였고, 두 번째가 가까운 곳에 피트니스 센터가 있냐는 것이었다. 단기 여행도 아니고, 혼자 생활하기 위해서는 건강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낯선 곳에서 아프면 그야말로 큰일이기 때문에 건강은 최우선 사항이었다. 한국에서 회사를 다니면서도 꾸준히 집 근처 피트니스에서 운동을 했던 터라, 이것까지 자리를 잡아야 적응이 될 것만 같았다. 오래되고 창문이 작고 오밀조밀한 건물들이 대부분이어서 서울처럼 유리창이 크고 탁 트인 공간에 여러 가지 기구와 샤워까지 갖춘 피트니스가 있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기숙사 로비에서 마주친 교환학생들이 알려준 곳들을 가본 끝에, 걸어서 15분쯤 걸리는 곳으로 등록을 했다. 지은 지 얼마 안 된 농구 경기장 “Zaligiris Arena”에 딸린 곳이어서, 생각보다 훌륭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네무나스 강 위의 섬에 자리잡은 Zalgiris 농구 아레나. 농구 보러 온 적은 없고 피트니스만 드나들었다.  

피트니스 문화는 세계적으로 비슷할 터이고 이곳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옆에서 들려오는 언어가 다르고 운동하는 사람들의 체격이 다를 뿐 분위기는 서울과 비슷했다. 물론 주위를 둘러보면 내가 제일 허약한 편이다. 서울에서는 여자들 중에서 그렇게 약해 보이는 편이 아닌데, 여기서는 나 혼자 지푸라기를 들고 있는 느낌이 든다. 남자들이 벤치프레스에 바벨을 엄청나게 끼워 놓고 그냥 가버리기라도 하면 그걸 다 빼낼 자신이 없어서 다른 기구를 찾아야 했다. 여자들도 완전 초보자가 아니라면 들어 올리는 무게나 운동량이 놀라웠다. 1년쯤 지나니 여기서도 얼굴 알아보는 사람들도 생겼고, 눈치 안 보고 내 운동을 하고 나오게 되었다. 그래도 한국에서보다 상대적으로 주눅이 드는 느낌은 어쩔 수 없었다. 

날씨 좋은 날이 드물어서 피트니스가 필수지만, 날씨만 좋으면 강변과 공원으로 족하다. 햇빛만 비치면 걷고 뛰어야만 할 것 같다.

처음 등록할 때 가격이 너무 저렴해서 깜짝 놀랐다. 비교적 새로 생긴 곳이라 근처에서 제일 크고 시설도 좋고 가장 비싼데, 그래도 1년 치를 등록하고 나니 한국 돈으로는 월 4만 원 정도 되는 셈이었다. 이유인즉슨 이곳은 한국과 달리 수건이나 물이 제공되지 않는다. 개인용 사물함을 고정적으로 쓸 수도 없다. 갈 때마다 운동복, 운동화, 수건, 샤워 도구, 물까지 몽땅 챙겨서 다녀야 한다. 결국 커다란 운동가방을 사서 죄다 넣고 다니는데 그 오가는 길이 더 운동이 될 지경이었다. 한국의 높은 서비스 수준에 새삼 감동하면서, 서비스 덜 하고 싸게 받는 이런 시스템도 나름 괜찮다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운동하면서 보이는 풍경이 계속 변한다. 흉물이 된 소련식 빌딩들은 천천히 철거 진행중. 

등록한 피트니스 센터는 농구장에 딸린 시설이었다. 이 새로 지은 농구장을 홈으로 쓰는 “Zalgiris” 팀에 대한 카우나스 사람들의 애정은 엄청나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에서 축구가 국민 스포츠인 것과 달리 리투아니아는 농구의 나라다. 사람들 키가 큰 편이기는 해도 북유럽 치고 그리 큰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리투아니아 사람이라면 모두 농구를 하는 것 같았다. 겨울이 긴 나라이니 실내 스포츠인 농구가 인기를 얻었을 수도 있다. 국가대표 농구는 세계적으로 성적이 좋다고 한다. 미국 NBA에서 활약했던 ‘사보니스’라는 선수는 리투아니아의 영웅이다. 농구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눈빛이 달라진다. 워낙 스포츠 관람과 거리가 먼 인생이어서 개인적으로 농구장에는 한 번을 안 가봤다고 했더니 리투아니아 사람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인 모양이었다. 농구 다음으로 인기 있는 스포츠는 뭐냐고 물으면 사람마다 답이 죄다 다를 만큼 농구의 인기는 압도적이다. 


농구장에 딸린 피트니스를 오가는 길에 쇼핑몰 Akropolis를 지나게 되는데, 종합 쇼핑몰답게 영화관도 있고, 꽤나 큰 아이스링크도 갖추고 있다. 이 아이스링크를 둘러싸고 음식점들이 배치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스케이트 타는 모습을 보면서 먹게끔 되어 있다. 한데 실내 아이스링크에 두꺼운 투명 플라스틱으로 천정까지 벽을 둘러쳐 놓았다. 한국처럼 남녀노소 누구나 들어가서 맘대로 즐기는 시간대도 있지만, 꽤나 과격한 아이스하키 경기를 하는 시간대도 많기 때문에 보호막이 필요한 것이다. 아이스링크에서 네댓 살 되어 보이는 아이들부터 스케이트를 배우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보통 피겨용 스케이트로 걸음마를 시작하는 한국과 달리 기본적인 스케이트가 아이스하키 용이었다. 피겨를 신은 아이들은 제대로 발레 하듯 피겨스케이팅을 배웠다. 꼬마들은 다 아이스하키 용 스케이트를 신고 펭귄을 붙들고 걸음마를 떼고 있다. 

스키보다는 스케이트, 아이스하키로 시작하는 아이들이 많다.

겨울이 길고 눈도 많으니 각종 겨울 스포츠가 발달할 것 같지만, 전 국토에 산이 하나도 없는 평지라 스키는 일반적이지 않다. 3천 개가 넘는다는 많은 호수를 자랑하는 나라답게 스케이트가 보편적인 겨울 스포츠라고 한다. 몇 번 아이스하키 경기를 하는 시간에 그 둘레 피자집에 앉아서 먹어본 적이 있는데, 갑자기 날아와서 부딪히는 퍽이나 선수들 때문에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그런 시간에는 그런 자리들이 더 인기가 있다. 리투아니아가 딱히 동계올림픽에서 눈에 뜨이는 나라는 아니지만, 일반 국민들이 즐길 수 있는 스포츠 저변은 꽤나 넓다. 지내다 보니 심심치 않게 마라톤이나 철인 3종 같은 경기들도 있었다. 일반인들이 직접 즐기는 스포츠는 아니나 자동차 경주도 꽤나 인기가 있다고 한다. 산은 없지만 숲을 탐험하듯 다니는 트레킹도 있는 모양이다. 호수나 강가에는 어디나 거의 어김없이 낚시꾼들이 있는데, 낚시를 꼭 스포츠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또한 대단히 보편적인 야외 활동이다. 워낙 비가 잦으니 야외에서 야구나 축구를 즐길 문화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환경에 맞게 운동하는 문화가 있다. 어디나 건강이 화두인 것은 똑같다. 

대부분 사용하는 사이즈나 무게가 한국보다 훨씬 크고 무거워서 그 틈에서 주눅이 들었지만, 나도 살아야 하니 운동은 해야 했다.


이전 01화 낯선 나라 리투아니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