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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리 Mar 09. 2018

혼자 레스토랑 다니는 여자

2017년 9월 2일

리투아니아 대학의 개강 후 첫 주말 토요일, 어디 가서 뭘 먹을까 고민을 했다. 수업은 주초에 편성되어 있어서 주중에도 여유가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주말은 또 주말이다. 아직 여름의 끝을 잡고 있는 9월 초의 날씨는 해가 나는 한낮에는 완연한 여름 빛깔을 내었다. 물론 여름이라고 해도 땀이 날 정도의 더위는 아니다. 상쾌한 여름 공기가 남아있는 토요일 오후 카우나스의 자유로는 산책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카페와 레스토랑들도 하루 종일 부산하다. 물론 붐빈다고 해서 한국처럼 한참을 기다려야 하거나 예약을 해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유럽 사람들은 항상 야외 테이블을 선호하다 보니 실외나 창가 자리가 없는 정도이다. 낮부터 맥주나 와인을 놓고 한참 앉아서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이 자유로부터 구시가까지 포진하고 있다. 

팬케이크는 간식인 양 가격도 가볍지만 먹다 보면 양은 푸짐하다.

한국에서도 요즘은 혼밥, 혼술 등 혼자 사 먹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그래도 아직 혼자 레스토랑 가서 주문하는 일이 좀 어색하다. 카우나스에 처음 도착해서 몇 번 레스토랑들을 기웃거리다 지나치곤 했었다. 하지만 이내 과감히 문을 열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같이 먹을 사람이 없으니 어차피 다른 방법이 없다. 일단 들어가서 눈 마주친 서버에게 손가락 하나 세우며 한 명 자리 있냐고 묻는 것이 곧 습관이 되었다. 당연하지만, 한 명이어서 안 된다는 경우는 없었다. 오히려 한 명이어서 서비스를 집중적으로 받는 장점도 있다. 메뉴를 다양하게 맛보려면 여러 번 가야 하고, 작은 동네이다 보니 여러 번 가는 레스토랑이 금방 여러 곳 생겼다. 흔치 않은 아시아 여자라, 맘에 드는 식당을 여러 번 가면 어느 정도 알아보고 익숙하게 안내를 해주기도 한다. 

돼지고기나 닭고기 요리가 많고, 무슨 요리든 사이드에 항상 감자가 있다. 

처음 얼마 동안은 리투아니아에 왔으니 리투아니아 음식을 먹어봐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한데 ‘전통 리투아니아식’을 간판으로 내건 레스토랑은 관광객을 주로 상대하는 구시가지 광장 근처가 아니면 좀처럼 찾기 어렵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집 밖에서 리투아니아 전통식을 찾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독일부터 시작해서 북동쪽 유럽이 다 그렇지만 여기도 소위 ‘전통음식’은 감자 요리가 거의 전부를 차지한다. 수프, 스튜, 안주류, 정식류, 디저트까지 전통음식 메뉴판은 대단히 길지만, 재료를 보면 감자와 고기(돼지고기나 닭고기)를 빼고는 전통 음식이 성립하지 않는 듯하다. 


나중에 다른 교수와 이야기를 하면서, 사실 감자는 18세기 이후에 남미에서 들여온 것인데 그전까지는 도대체 무엇을 먹고살았는지 모르겠다는 농담을 했다. 많은 유럽 국가들이 그렇지만, 피지배층은 정말 부실하게 먹었다는 이야기다. 숲이 많은 리투아니아이니 진정한 전통 음식은 숲에서 나오는 야생동물 고기나 버섯, 딸기, 견과류 등이라고 한다. 구시가의 전통식 레스토랑 중에는 그래서 사슴이나 멧돼지, 토끼고기 등 야생동물 요리를 파는 경우도 몇 있다. 그래도 감자는 튀겨서든 으깨어서든 구워서든 반드시 같이 나온다. 일반적인 전통식 레스토랑에서 혼자 먹기 만만해 보이는 요리는 전부 감자요리여서 각종 감자전, 감자만두, 감자튀김을 전전하였다. 감자가 찰져서 맛은 있다. 하지만 굳이 찾아다니면서까지 고열량의 감자요리로 살찔 필요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감자가 없는 리투아니아 음식은 상상할 수 없다 - 으깬감자, 튀긴감자, 반죽으로 치댄 감자, 그 다양성은 감탄할 만하다.

전통식 레스토랑이 아니더라도 모든 음식에 감자의 비중이 대단히 높다. 모든 메뉴에 사이드로 감자가 곁들여진다고 보면 된다. 맥주를 비롯해 주류 소비량이 많고, 거기에도 감자가 안주로 압도적이다. 감자와 맥주, 그리고 소시지와 햄을 포함해 다양한 돼지고기 요리가 전통과 현대를 아울러 대부분 식당의 주 메뉴이다. 독일의 영향을 받은 배경도 있을 것이고, 긴 겨울과 잦은 비를 가진 기후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중국식이나 인도 식당도 꽤 있고, 일식(주로 서구화된 초밥류), 동남아까지 포함한 퓨전 아시아식도 늘어나고 있다. 그래도 일반적인 음식은 역시 감자와 고기이다. 피자집이나 이탈리아 레스토랑이 많고 맥주 위주의 펍도 꽤 많은데, 소위 ‘유럽식’인 그런 식당들 역시 감자와 고기다. 조심하지 않으면 고열량으로 인해 체중이 바로 늘어난다. 혼자 레스토랑 가는 일이 어색해서 발길을 안 했더라면 먹는 즐거움 대신 가벼운 체중을 얻었을지 모르겠다. 나는 먹는 즐거움을 선택했다.  

샐러드 전문점도 있고, 채식을 내건 인도음식점도 있다. 제일 많은 외식 메뉴는 단연 피자다.

레스토랑이 너무 양이 많게 느껴질 때, 혹은 고기와 감자로부터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면 혼자 가기 편한 카페를 찾게 된다. 커피나 차에 뭔가 간단히 곁들이고자 가는 것인데, 여기서는 이게 결코 ‘가벼운’ 선택이 되지를 않는다. 모든 카페에서 커피나 차에 곁들일 디저트를 취급하는 것은 좋은데, 도넛이나 타르트를 전문적인 테마로 삼은 가게들을 포함해서 하나같이 달콤한 것들이다. 가벼운 샌드위치나 랩 종류도 간혹 있지만 매우 드물다. 커피 주문하면서 눈길이 닿는 곳에는 케이크, 타르트, 파이, 초콜릿, 쿠키 류가 늘어서 있다. 한국에서 많이 보는 시폰 케이크나 크림이 주를 이루는 디저트는 이곳의 주종이 아니다. 대부분 케이크는 꽤나 단단한 빵 사이에 잼이나 초콜릿, 크림이 들어가 있는, 약간 옛날 제과점 느낌이 나는 무게 있는 것들이다. 최근에 생기는 가게들 중에는 에클레어나 마카롱 등 살살 녹는 류를 취급하기도 하지만, 주종은 꽤 단단한 조각 케이크다. 어쨌거나 단맛에서 벗어나기가 상당히 어렵다.

부드럽고 살살 녹는 디저트보다는 질감이 단단한 케이크가 더 많다. 초콜릿이나 크림 무스 종류는 상대적으로 드물고 비싸다.

동유럽이나 북유럽 국가들이 날씨 탓에 단맛을 더 찾게 되는 것인 지 궁금해진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의 단맛 소비는 대단하다. 카페에서 파는 디저트도 단 맛이 압도하고, 베이커리에서도 기본적으로 먹는 커다란 검은 빵, 잡곡빵, 흰 빵은 카운터 뒤 벽에 쌓여 있고 앞쪽은 온통 단맛 나는 빵들을 깔아놓는다. 음료도 커피나 차 외에 프라푸치노나 셰이크 류의 달고 크림 많은 종류가 많고 잘 팔린다. 식사 양이 미국처럼 엄청나게 많지는 않아도 항상 배부르고 남는 양인데, 디저트로 섭취하는 칼로리가 무시무시하다. 심지어 식사 메뉴에도 단맛이 강한 소스를 쓰거나 크림을 듬뿍 얹어 먹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처음 리투아니아에 왔을 때 작정하고 다이어트를 한 직후여서 평소보다 마른 상태로 도착했었다. 애써 뺀 살 금방 찌기가 아쉬워서 몇 주 참았다. 1년 지나고 나니 처음보다 거의 10킬로그램이 더 나가게 되어버렸다. 혼자 먹는 상황에 점점 익숙해지고, 카페도 혼자 여기저기 들여다보면서 디저트에 도전한 결과다. 건강으로 보나 금전적으로 보나 덜 먹고 안 먹으면 그만인데, 그 생각은 항상 다 먹고 나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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