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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리 Mar 21. 2018

1차 세계대전 전몰자 추모식

2017년 11월 12일

영국을 비롯해 1차 대전 당시 연합국들이 전몰자를 기리는 추모의 날이 11월 11일이다. 한국에서는 ‘빼빼로데이’로 상업적인 재미를 보는 날이지만, 유럽에서는 꽤 진지하게 기억하는 날이다. 영국과 영연방 국가들 위주의 현충일인데, 주요 전장이었던 프랑스나 벨기에 등도 함께 기억한다. 리투아니아는 1차 대전 당시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 끼어있었다. 18세기 말 이래 러시아 차르 지배를 받다가 독일에게 점령당했는데, 점령은 항상 가슴 아프지만 그 과정에서 차르 지배가 종식된다. 1차 대전 종전 후 처음으로 독립 공화국을 선포하였다. 어쨌든 서유럽 연합국이 기리는 1차 대전 전몰자 현충일을 리투아니아가 직접 지키는 것은 아니다. 빌뉴스에 있는 루터교회 건물을 빌려 쓰는 국제교회(영어예배)에서 기념식을 했다. 영국대사관과 영연방인 캐나다 대사관, 그 외 각국 대사관과 군 대표자들이 참석하는 꽤 큰 행사였다.

주일 예배에 기념식을 겸했는데, 국제교회 예배가 이날은 꽉 찼다. 각각 군복과 제복을 입은 대표들이 헌화할 화환을 준비해 왔다. 입구에 비치한 빨간 양귀비꽃 핀을 하나 집어 가슴에 달았다. 양귀비꽃은 1차 대전 당시 격전지였던 플랑드르 지방에 많이 피어있어 기억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핏자국처럼 새빨간 색이라 꽤 강렬한 상징이었다. 호기심으로 참석했는데, 한 시간 남짓한 추모식을 보면서 새삼 울컥하는 예상치 못한 경험을 하였다.


참석자는 정말 다양했다. 주관은 영국과 영연방 국가들이지만 리투아니아이니 리투아니아 군 대표도 있고, 프랑스 같은 서유럽은 물론 조지아(그루지야) 같은 동쪽 나라들도 있었다. 사이가 좋을 리 없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대표도 같이 있었다. 루터교 형식의 기념예배였으나 추모식이었기에 대사관과 군 관계자들이 추모사를 하거나 추모시를 읽는 순서가 있었다. 빌뉴스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의 주교급 성직자들이 다 참석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개회사는 루터교회, 진행은 국제교회에서 했지만 가톨릭 교회, 복음주의 개혁교회, 연합 감리교회 성직자들이 성경을 읽었고, 러시아 정교회에서 기도, 무슬림에서 코란 봉독, 유대교에서 시 낭송을 했다. 러시아 정교회 기도는 러시아어, 코란 봉독은 음률이 있는 아랍어였다. 유대교 대표는 아이작 로젠버그(Isaac Rosenberg)라는 시인을 소개하면서 '영국에서 나고 자란 리투아니아계 유대인'으로 참전하여 1918년에 프랑스 칼레에서 27세로 전사했다며 죽기 2년 전 전장에서 쓴 시를 낭송했다. 

이어서 '나와 함께 하소서'라는, 한국에서도 많이 부르는 찬송가를 영어로 불렀는데, 무려 5절까지 있는 가사가 별안간에 너무 와 닿았다. 한국어 가사는 '때 저물어 날 이미 어두니 구주여 나와 함께 하소서'로 시작해서 모든 절이 '주여 함께 하소서'로 끝나는데, 세세한 차이는 있지만 영어 가사도 비슷하다. 1차 대전의 이미지는 끝없는 참호전이다. 비가 와서 진창이 된 속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때때로 총알이 빗발쳐 죽음이 널려있는 참호 속에서 젊은 병사들이 망연자실해 있는 이미지다. 난 엄마는 아니지만, 내 나이의 절반도 안 될 어린 병사도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실에서 보는 학부 학생들 또래였을 것이다. 그런 출구 없는 비참한 상황에서 얼마나 간절하게 신의 도움을 바랐을까 싶어, 갑자기 목이 메어 5절을 제대로 부르지를 못했다.

기부금 함 옆에 비치되어 있던 빨간 양귀비 핀

1915년에 발표된, 당시 유명한 전쟁시였다는 '플랑드르 초원에서'를 영국 부대사가 낭송하는 순서도 있었다. 플랑드르에 많이 피었다는 양귀비꽃에 빗댄 절절한 시였다. 이어서 대표단들의 헌화가 길게 이어졌는데, 영국군을 시작으로 영연방 캐나다와 인도, 리투아니아 군대, 각국 대사관들로 이어졌다. 리투아니아는 의전 전문 헌병들을 보내 제일 큰 화환을 정 중앙에 헌화했다. 대표들이 많아서 네 그룹으로 묶었는데 세 번째 그룹에 러시아, 네 번째 그룹에 우크라이나가 있었다. 나토 연합군은 따로 하고, 특별히 아일랜드 군 순서가 따로 있었는데 1차 대전 때 빌뉴스에서 싸웠던 연합군 군대의 주력이었다고 한다. 독일에서 리투아니아를 해방시키는 선봉이었던 셈이다. 추도사 낭독과 묵념이 진지하게 이어졌다.

평소에 비해 합창단도 유난히 훌륭했다.

추모식을 보면서 역시 역사적 상처는 제대로 기억하고 서로 나누어야 치유도 되고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아무리 감동적인 의식이었다지만 남의 나라 현충일 행사에서 우리나라 현충일이나 국가급 추모 행사에서 느껴보지 못한 감정적인 공감을 느낀 점이 스스로 이상해졌다. 잘 준비했고 음악도 좋고 순서마다 내용이 감동적이었지만,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다. 1차 대전에 대한 기억에는 모두가 이의 없이 공감한다. 그래서 반성과 치유도 함께 한다. 목숨을 잃은 영국과 영연방 병사들의 죽음은 자국이 아닌 타국에서, 즉 남을 위해 싸우다 죽은 고귀한 희생으로 모두 인정한다. 더 이상 논쟁 없이 완결된 과거의 전쟁이고, 이의 없는 공동의 가치를 위한 희생이다. 조국은 물론 도움받은 나라, 별 상관없었던 나라, 심지어 적국이었던 나라에서도 공감하여 기억하고 위로를 나눈다. 우리나라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에딘버러 성 박물관에서 본 1차대전 지원병 모집 포스터

한국전쟁은 동족상잔의 내전이었고, 아직도 안 끝난 휴전 상태고, 핵문제와 복잡한 주변국 관계까지 얽히고설켜 있다. 식민지 시대 독립투사 추모조차 정리가 덜 된 상황에다, 끝나지도 않은 전쟁의 희생자를 기리는 일은 그야말로 난망이다. 공감하고 나눌수록 치유가 되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아직 치유도 제대로 시작 못한 셈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진짜 끝나고 완전한 과거의 기억이 된다고 해도 그 기억에 모두가 공감하고 나란히 추모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국내에서 기억을 되새기며 공감하는 것도 엄청난 과제일 뿐만 아니라, 중국, 미국, 일본, 러시아까지 함께 공감하고 전쟁 희생자를 추모하는 장면은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누구를 어떻게 기억하고 인정할지 모두가 동의할 수가 있을까? 우리 상황은 특수하고 어려우니 과거는 덮고 앞만 보자는 해법도 있다. 그러나 덮어둔 과거의 상처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속에서 곪아서 더 오래 부작용을 만든다.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다. 어렵지만 덮을 수는 없고 함께 해결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려니, 누구와 어디서부터 뭘 어찌해야 하는지 생각이 증발해버렸다.

11월 11일에 세계 각국에서 위로와 공감과 반성의 메시지를 받는 영국이 부러울 판이었다. 자국에서 전쟁을 한 것도 아니고 내부의 분열도 없이 유럽 대륙의 전쟁에 참전했고, 명분은 분명했으며 사후의 평가와 기억도 모두 정리되었다. 캐나다 공사가 '마지막 참전용사가 6년 전에 사망'하였다고 했듯이 그 전쟁은 완벽한 과거의 기억이다. 엄청난 전쟁의 기억은 끔찍한 것이고 아무리 추모와 반성을 해도 부족하지 않다. 그래도 함께 같은 기억을 하면서 공감하고 치유한다면 밝은 미래를 같이 바라볼 가능성이 커진다. 우리나라도 한국전쟁을 그렇게 기억하고 공감하고 치유할 날을 바라지만 아직 그저 꿈만 같아서, 오랜만에 정말 마음이 아팠다. 분단과 내전의 상처란 이렇게 무서운 것인데, 최근 세계 곳곳이 내전이니 참 암담하다. 추모식이 끝난 후 강단에 가까이 가서 여러 나라 대표들 사이에 스마트폰을 들이밀고 화환들 사진을 찍었다. 언젠가 한국전쟁을 추모하는 자리에서도 이렇게 모든 관련국과 비 관련국까지 같이 꽃 놓고 사진 찍는 순간을 보리라 믿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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