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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리 Mar 17. 2018

명물 푸니쿨라와 하얀 교회, 전망대

2017년 10월 20일

리투아니아에 와서 푸니쿨라를 세 곳에서 봤다. 카우나스에 둘, 빌뉴스에 하나 있는데, 어쩌면 더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국 기준으로 볼 때 리투아니아는 거의 완벽하게 평평한 나라다. 산이 하나도 없다는 게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한국의 동네 뒷산 정도 될 만한 산도 없다. 여기서 자연이라고 하면 산과 바다가 아니라 숲과 호수다. 즉 푸니쿨라가 꼭 필요할 만큼 가파르거나 높은 언덕은 사실 없다. 카우나스나 빌뉴스에 푸니쿨라가 있는 언덕들도 그냥 걸어 가도 10분 정도면 충분한 곳들이다. 그래도 여기서는 그 정도 언덕이라면 상대적으로 매우 가파르고 높은 곳이기는 하다. 이 푸니쿨라들은 명물이어서 관광책자에도 나온다. 위에는 당연하게도 전망대가 있다. 조금 높은 지대일 뿐이라 해도 주위가 워낙 평평해서 탁 트인 전망을 즐길 수 있다. 

빌뉴스의 게디미나스 성채로 오르내리는 푸니쿨라는 한 번 타봤는데, 그 후로 계속 보수공사중이다.

빌뉴스의 푸니쿨라는 구시가 광장 북쪽에 우뚝 솟은 게디미나스 성채 언덕에 있다. 구시가지 관광의 핵심 코스인데, 물론 걸어 올라가도 금방이다. 올라서면 구시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반대쪽으로는 유리로 씌운 고층빌딩이 보이는 상업지구도 넓게 펼쳐진다. 카우나스의 푸니쿨라 두 개중 하나는 하얀 교회라 불리는 시내 북쪽 언덕 위 '예수부활기념성당'에 올라가는 길에 있다. 나머지 하나는 강 건너 남쪽 언덕 위, VMU의 음악학부 건물이 위치한 곳으로 올라간다. 하얀 성당에 입장료를 내고 지붕 위에 올라가면 카우나스 시가 사방으로 펼쳐지는데, 예쁜 구시가가 보이지는 않는다. 강 건너로 남쪽 언덕 위 음악대학 쪽이 카우나스 구시가 전망에는 더 좋다.

하얀 교회로 오르는 푸니쿨라는 100년 역사를 자랑한다. 하얀 교회에서 구시가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구름이 얇은 날을 잡아 부모님과 하얀 교회에 올라갔었다. 예수부활성당이라는 이름도 거창하거니와, 카우나스 시내 웬만한 지점에서 다 보이는 위치에 우뚝 솟은 크고 하얀 건물이다. 중세나 르네상스 양식을 따라 예쁜 곡선 장식이나 첨탑이 있는 성당들과는 전혀 다르다. 장방형 예배당과 종탑을 모두 직선, 직각으로 자른 듯 콘크리트로 지은 매우 '현대식' 성당이다. 외부를 전부 하얗게 칠해서 하얀 교회가 되어 당당히 카우나스 시내를 굽어보고 있다. 1920년대 수도이던 카우나스에 독립을 기념하는 의미로 지었다고 한다. 

직선적이고 높은 하얀 교회는 소련식 빌딩처럼 보인다.

1920년대에 건설 계획을 잡았으나 디자인을 정하는 데 오래 걸려서 1930년대 말에야 착공을 하였다. 어느 정도 모양을 갖추려던 단계에서 2차 대전이 닥쳤다. 독립의 의미를 부여한 가톨릭 성당이 무사했을 리 없다. 나치 점령기에는 창고로, 소련 치하에서는 내내 라디오 생산 공장으로 쓰이면서 성당을 성당답게 만들만한 부분은 다 없어졌다. 소련 붕괴 후 다시 성당으로 만드는 긴 과정을 거쳤다. 마침내 성당으로 문을 연 것이 2004년이니, 우여곡절 끝에 완공되는 데 70년 가까이 걸린 셈이다.

 

푸니쿨라의 성인 요금은 1유로가 채 안 된다. 하얀 교회 언덕을 오르는 짧은 푸니쿨라는 0.5유로였고 음악대학 쪽은 좀 더 길어서 0.7유로 정도 하는데, 학생이면 할인을 받아서 그 절반도 안 된다. 학생들의 교통비나 각종 입장료 할인율은 감탄할 만하다. 버스나 박물관 등 모든 공공시설이 절반 이상 할인이 된다. 카우나스는 시내 중심 전체가 대학가나 마찬가지여서 카페들도 학생 할인을 많이 해준다. 어려 보이는 동양인 얼굴을 무기로 학생인 척하고 싶을 정도로 꽤 절약이 된다. 물론 성인 요금도 서유럽보다는 훨씬 저렴하니 양심을 지키기가 어렵지는 않다. 부활성당에서 지붕 위에 오르는 엘리베이터의 요금이 성인 1인당 2.4유로였는데 이건 굉장히 비싼 편이다. 서유럽에서야 엘리베이터도 없이 나선 계단 수백 개 오르는 종탑도 5유로씩 받지만, 모든 것은 상대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법이다. 별다른 시설도 없이 그냥 지붕에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였을 뿐이었기에, 리투아니아에서 내 본 입장료 중 제일 비싸게 느껴졌다.  

하얀 교회 내부도 하얗다.

경험 삼아 부모님과 함께 하얀 교회에 오르는 푸니쿨라를 탔었는데, 푸니쿨라 안쪽에 북한 사진들을 붙여놓고 전시 중이었다. 좁은 푸니쿨라 안에 사진을 전시한다는 발상 자체도 희한한데 북한 사람들을 찍은 사진이라니, 이런 우연이 있나 싶었다. 리투아니아 사람들도 '북한'하면 다 안다. 시내의 작은 사진 갤러리에서 북한 사진 전시를 한 적도 있다. 다른 프로그램이 더 있을 수도 있겠으나, 일단 이 작은 두 전시에서 느껴진 리투아니아 작가들의 관심사는 그들에게 낯익은 그 체제의 분위기였다. 사람들 얼굴의 딱딱하고 억눌린 듯한 무표정, 경직된 몸짓에 초점을 둔 사진들이다. 소련 치하에서 경험했던 그 사회적 분위기가 아직도 진행 중인 몇 안 되는 나라라는 점에 관심이 있는 듯하다.

하얀 교회 안내문은 리투아니아어, 영어, 폴란드어로 써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방문이 끼친 영향이 대단하다.

독립 리투아니아의 자부심이 넘치는 거대한 하얀 교회는 사실 그리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주위에 비해 혼자 너무 크고, 내부도 좋게 말하면 깔끔하지만 텅 빈 느낌의 거대한 공간이었다. 비싼 엘리베이터로 지붕에 올라서서 보이는 풍경도 구시가가 보이지 않아서 별 랜드마크 없이 높다는 느낌뿐이었다. 지붕 위에서 하필 거세어지기 시작한 바람을 맞으며 버티다가 내려왔다. 비싼 엘리베이터가 더 높은 종탑에 올려주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딱 지붕 위까지였다. 

하얀 교회 지붕 위에 작은 채플이 있다.

카우나스에서 전망대를 한 군데 가려고 한다면 비싼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는 하얀 교회보다는 구시가 강 건너 언덕의 음악대학을 추천하겠다. 푸니쿨라를 타거나 나란히 만들어 놓은 나무 계단을 올라가, 건물 옆에 작은 공원처럼 비워놓은 공터에서 내려다보면 된다. 교통이 불편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올라가면 구시가가 한눈에 들어와 성당들의 첨탑이 어우러진 예쁜 도시를 내려다볼 수 있다. 딱 한번 낮에만 가봤는데, 저녁에도 강변도로의 불빛과 구시가의 조명이 꽤 예쁘다고 한다. 카우나스 성채나 주요 성당들이 야간에도 조명을 하기 때문이다. 겨우내 밤이 매우 길어지니 시간만 생각하면 야경을 즐기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추운 날씨와 깜깜하고 한적한 주변을 핑계대다가 결국 야경은 놓치고 말았다.

강 건너 언덕 위 음악대학 전망대에서 본 구시가지. 데이트 장소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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