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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리 Apr 29. 2018

국가회복 100년, 즐거운 전쟁기념관

2018년 2월 16일

한국 사람 누구라도 리투아니아에 있다고 소개하면 ‘그게 어디 있냐’는 질문부터 했다. ‘폴란드와 러시아 사이에 끼인 발트 3국 중에 한 나라’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이지만 확실히 와 닿은 표정은 아니다. 나 역시 객원교수로 파견을 받아 오기 전까지는 정확히 어디 있고 수도가 어디인지, 경제력이나 사회분위기는 어떤지 전혀 알지 못했다. 한국의 3분의 2 정도 되는 국토, 인구는 300만 명이 채 안 되는 작은 나라다. 발트해와 닿아 있는 짧은 해안선을 제외하면 라트비아, 벨라루스, 폴란드, 그리고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동쪽이 아닌 서쪽에 마치 섬처럼 러시아 영토(칼리닌그라드)가 있다는 사실도 여기 와서야 알았다. 한국보다 위도는 더 높아서 여름에는 백야에 가깝게 낮이 길고 겨울은 아침 지나면 바로 저녁인 듯 해가 짧다. 위치에서 바로 예상할 수 있듯이 구소련에 속했던 국가다. 그 전에도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서 부침이 워낙 심했던지라 유럽 지도에서 일정한 모양을 유지한 적이 거의 없고 아예 사라진 기간이 꽤 길었다. 한국도 강대국 사이에서 약소국의 설움을 절감하는 근현대를 보냈지만, 여기도 기억을 들춰낼수록 기막힌 이야기가 끝없이 나온다. 

리투아니아 지도(출처: google.com 검색)

폴란드와 연합했던 리투아니아는 18세기 말 유럽 열강의 '폴란드 분할'때 러시아 제국에 편입되어 120년의 세월을 지배 하에 있었다. 1차 대전 후에 처음으로 근대 국가로 독립하지만, 2차 대전과 함께 1940년에 다시 소련, 잠시 독일 나치, 다시 소련에 점령되어 냉전 시기를 보냈다. 1990년에 다시 독립했으니 이제 30년 정도 되었다. 그래서 독립기념일이 두 번이 있다. 마침 2018년은 1차 대전 후에 세웠던 첫 독립공화국 수립의 100년을 기념하는 해였다. 한국학 객원교수로 파견을 와 있던 비타우타스 마그누스 대학(VMU)도 그 첫 공화국 때 세워진 학교였다.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했던 학교라 소련 치하에서는 폐교되었었다고 하니 이 학교도 다시 문 연지 30년쯤 된 셈이다. 지금 리투아니아의 수도는 빌뉴스(Vilnius)지만, 첫 공화국 때는 이 학교가 있던 카우나스(Kaunas)가 수도이기도 했다. 빌뉴스가 아직 폴란드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어쨌든 카우나스는 그 20년간의 금쪽같던 공화국 시기에 수도였다는 자부심이 있다. 100주년 행사도 여러 곳에서 1년 내내 열렸다. 

 

1918년 2월 16일이 리투아니아 '국가 회복의 날(Restoration of the State Day)'이다. 2018년이 100주년이라고 이미 일 년 전부터 대대적으로 홍보를 했다. 당시 20명의 리투아니아 정치지도자들이 모여서 독립선언문 'Act of Independence'에 서명했다고 한다. 1918년 2월은 아직 1차 대전이 끝나기 전이었고 독일군이 주둔하고 있었기에 공표하지는 못했다. 그 해 말에 독일군이 물러난 후 대내외에 알렸고, 바로 '회복'된 첫 독립공화국 헌법의 근간이 되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민족자결주의'에 근거한다는 문구가 들어있다. 손으로 써서 20명이 서명한 독립선언문 원본은 사라졌다가 작년에 VMU의 한 교수가 독일 베를린 연방 외무부의 정치문서보관소에서 발견했다고 한다. 2018년 1월 임대 형식으로 반환받아 전시 중이었는데, 다른 나라에서 문서 발견해서 임대하는 실정 또한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상황이다. 

빌뉴스 구시가지에 있는 'House of the Signatories'에 최근 발견한 독립선언문 원본 전시 중

1990년 소련으로부터의 해방을 기념하는 '독립 회복의 날(Restoration of Independence Day)'은 3월 11일인데, 이게 두 번째 독립기념일이다. 이때 제정한 헌법도 1918년의 첫 독립선언문에 근거를 두고 있다. 2월과 3월에 연달아 독립기념일이 있어서 헷갈리기도 한다. 그만큼 어려움을 많이 겪었고 고생 끝에 얻은 자유와 독립이다. 'Lietuva(리투아니아)', '100 metų (100년)'을 모티브로 하는 기념물과 장식이 곳곳에 걸리고, 연초부터 기념행사, 공연, 전시가 이어졌다. 2월이면 아직 한겨울이라 좋은 계절은 아니었지만 각국 대사를 초청해서 공식 기념식도 했고, 각국 정상이나 고위급 관료들도 올해 안에 리투아니아를 방문하도록 초청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이미 2018년 1월에는 일본의 아베 총리가 여기까지, 심지어 카우나스까지 다녀가기도 했다.  

빌뉴스 구시가지 대통령궁의 국가회복 100주년 축하 장식

공휴일에는 모든 국립박물관을 무료로 개방한다. 100주년 기념일이었던 2월 16일 당일에는 아쉽게도 다른 일이 겹쳐서 거리 구경을 나갈 수 없었다. 하필이면 날씨도 1월보다 훨씬 춥고 눈이 계속 쌓였다. 대신 99주년이었던 2017년의 2월 16일에 전쟁기념관에 방문했던 기억을 들추어 보았다. 카우나스 한복판에 크게 자리 잡고 있는 전쟁기념관도 그 날 무료개방이었다. 그 앞의 널찍한 광장에서 리투아니아 육해공군이 각각 부스를 만들어 전시와 체험 행사를 하고 있었다. 막상 2018년에는 그 광장조차 지하주차장을 비롯한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 중이어서 그런 행사를 할 여건이 되지 않았다. 다른 곳에서 했을 것이다. 수도 빌뉴스에서는 큰 행진도 있었던 모양이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99년째였던 1년 분위기도 자유로우면서 애국적이었어서 인상이 깊었다.  

전쟁기념관 앞 광장 군대 행사에 사람들이 몰렸다. 현재 이 광장은 리모델링 중이다.

2017년의 2월 16일은 하늘도 리투아니아의 생일을 축하하듯 화창한 날이었다. 노랑, 초록, 빨강 3색의 리투아니아 국기가 거리에 줄지어 걸리고, 사람들도 작은 국기를 들거나 같은 3색의 목도리, 망토, 모자, 풍선 등을 들고 다녔다. 함께 리투아니아어를 배우고 있던 슬로바키아 교환학생 베로니카가 전쟁기념관에 가보자는 제안을 했다. 2유로 입장료 아끼느라 굳이 공휴일 사람 많을 때 방문할 필요가 있나 생각했는데, 전쟁영웅들을 추모하는 기념관이었기에 사람들이 많이 가는 날 방문하는 게 더 의미가 있었다. 연말 크리스마스 점등식 이후 카우나스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모습을 이날 전쟁기념관 앞에서 보았다. 날씨도 좋은 공휴일이라 가족단위로 많이 나와있었다.  

리투아니아 육해공군 행사 부스 모습

정오에 했음직한 도심 자유로(보행자 전용 중앙로)의 군사 퍼레이드나 광장의 콘서트가 막 끝난 시점이었고 사람들이 각군별 행사부스를 구경하느라 몰렸다. 장중하기 그지없는 한국의 국군의 날 퍼레이드나 북한, 중국의 엄청난 열병식 장면에 익숙한 나로서는 이렇게 아담한 공간에서 군사 퍼레이드를 하고 조그만 천막 몇 개와 무기 몇 개로 체험 행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었다. 사실 리투아니아에 육해공을 망라하는 군 조직이 존재함을 눈으로 확인한 것도 처음이었다. 군대의 존재감이 약하기는 이곳 사람들도 마찬가지인지, 우리나라 같으면 사람들이 심상히 보아 넘길 긴 총이나 각 부품, 군복, 소형화기 등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정말 열심히 들여다보고 만져보고, 사진을 찍었다. 멀리서 보면 장터라도 열린 듯한 분위기였다.  

전쟁기념관 중앙의 잘생긴 비타우타스 대공

전쟁기념관은 평소 지극히 한산해서 문을 열었는지조차 알아보기 힘든 곳이다. 그야말로 대목을 맞아, 심지어 한참 길게 줄을 서서 들어갔다. 양 옆으로 시대별 전쟁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실이 있는 박물관이지만 가운데 큰 공간은 널찍하게 비워져 있는 기념관이다. 정면 가운데, 가장 중심이 되는 공간에는 역시 중세 리투아니아의 광개토대왕 겸 세종대왕쯤 되는 비타우타스 대공이 서 있다. 주위에 그의 전공을 기리는 전쟁 장면 그림과 깃발, 갑옷 등이 진열되었다. 양 옆으로 길게 이어지는 전시실들에서는 선사시대부터 중세 시절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전쟁들, 그리고 17세기 이후의 무기와 사진, 그림들을 볼 수 있다. 입장료 2유로 냈더라도 아깝지는 않을 박물관이었다. 지루하지 않도록 설명보다는 축소모형이나 갑옷, 무기, 군복, 각종 용품을 잘 배치해서 학생들이 흥미를 잃지 않게 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비타우타스 대공이 활약한 그 유명한 잘기리스(그린발트) 전투도 축소모형으로 전시실이 꾸며져 있다.  

전쟁기념관은 학생들 교육에 맞게 복잡한 설명보다는 볼거리 위주로 잘 꾸며놓았다.

인상적인 전시실이 몇 군데 있었다. 1차 대전과 2차 대전 사이 꿈같던 첫 공화국 시절, 미국을 출발해서 대서양을 횡단하여 리투아니아까지 비행을 하는 첫 시도가 있었다. 두 명의 리투아니아인 조종사가 카우나스를 목표로 대서양 횡단 기록을 세우려는 야심찬 계획이었는데, 그만 독일 어느 숲에 추락하면서 실패하고 조종사도 사망하는 비극으로 끝났다. 한 전시실 전체를 그 비행기 잔해와 조종사들의 유품에 할애하고 있었다. 설명이 리투아니아어뿐이었지만 진짜 잔해를 그대로 수습해 와서 추락한 모양 그대로 배치한 것 같았다. 유품을 자세히 진열해 놓았는데 작은 유리병에 담겨 있던 초콜릿까지 그대로 있었다. 이들의 도전은 대단히 영웅적인 기억이어서 카우나스 동쪽으로 크게 펼쳐진 공원 입구에는 이를 기념하는 높은 탑도 있다.  

대서양을 횡단해 카우나스로 오다가 독일에 추락했던 비행 도전을 기념하는 전시실과 탑

두 곳의 특별전시실이 있었는데 하나는 1차 대전 당시 군인들(주로 러시아 군인)의 모습을 그린 회화 전시였고, 다른 하나는 나폴레옹에 대한 추억이었다. 리투아니아는 18세기 이래 러시아 차르의 지배를 받았고 억압에 대한 저항이 심했다. 이때 러시아를 침공했던 나폴레옹은 해방자이자 영웅이었다. 어찌 보면 나폴레옹으로서는 잠시 러시아 군대를 몰아내고 빌뉴스를 중심으로 리투아니아를 장악했던 것뿐이다. 그래도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나폴레옹에 대해 일종의 팬심이 있다. 전시실 하나 가득 나폴레옹 초상화, 나폴레옹 관련 그림, 기념물 등이 멋지게 놓여 있다. 빌뉴스의 작고 예쁜 '성 안나 성당' 설명에는 언제나 "나폴레옹이 너무나 맘에 들어서 손바닥에 올려 프랑스로 가지고 가고 싶다고 했던 성당"이라는 내용이 포함된다. 결국 러시아 원정에 실패하고 후퇴하던 나폴레옹 군대는 추위와 질병으로 엄청난 사상자를 냈다. 빌뉴스와 리투아니아 곳곳에 프랑스군 집단 매장지가 있다. 간혹 대량의 프랑스 군복과 유골이 발굴되는 사례가 있었다고 한다. 발굴한 듯 군데군데 삭은 프랑스 군복 몇 벌도 전시 중이었다.  

광장 한켠의 꺼지지 않는 불과 독립영웅들 흉상. 날씨 좋은 봄날엔 분위기가 판이하다.

이 날 SNS에는 공휴일도 즐길 겸 다양한 기념 이벤트 사진들이 올라왔다. 거리에도 쇼핑몰에도 'Lietuva~'가 반복되는 씩씩한 노래가 연달아 흘러나왔다. 전쟁기념관 앞에는 '꺼지지 않는 불'과 함께 돌탑, 나무 십자가 조형물을 비롯해 국가 영웅들의 흉상이 줄지어 있는데 그 아래마다 노란색, 빨간색 튤립이 놓였다. 우리의 광복절은 8월 중순의 혹서기라 밖에서 뭘 하기가 힘들다. 계절적으로 봄을 맞이하는 2월 중순의 리투아니아 국가 회복일은 애국적인 축제 분위기로 즐기기 좋은 공휴일이었다. 물론 당일 날씨가 협조적일 경우이다. 정작 100주년인 2018년 2월은 추위가 여전하고 눈도 와서 밖에서 즐기기는 어려웠다.  

House of the Signatories에는 당시 서명한 20명의 이야기가 상설 전시되어 있다.

100년이라고는 하지만 소련 붕괴로 다시 독립한 게 1990년이니 아직 자유 민주주의 독립공화국은 한 세대도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민족주의를 강조하며 독립을 축하하는 데에 정말 열심이다. 지나친 민족주의 강조가 자칫 극우보수로 변질되어 부작용이 나는 사례도 많은데 아직은 아닌 듯하다. 유럽은 민족국가 구분이 애매한 경우가 많아서 민족주의도 뿌리 깊은 배타적 성격보다는 현 상황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전략적 캠페인에 가깝다. 함께 갔던 베로니카의 슬로바키아도 1993년에야 체코와 분리되었고, 역사의 상당 부분은 헝가리와 공유하고 있다. 리투아니아는 중세 한때 강성한 대공국이었지만 그건 우리나라가 고구려를 추억하는 것과 비슷하다. 중세 비타우타스 대공을 영웅화하는 것도 현재는 단합과 자부심 고취를 위한 상징일 뿐 다시 강성한 역사를 회복하겠다는 공격성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냉전 이후에 얻은 자유와 독립이 너무 소중하기에, 최대한 러시아로부터 멀리 떨어지고 유럽과 미국에 가깝게 다가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리투아니아도 해외 망명과 이주가 많았고 독립을 적극 지원했다. 미국에서 활약한 리투아니아 협회 배지들

파시즘의 악몽도 여전히 있어서 민족주의는 조심스럽기도 하다. 농담하듯 '너무 민족적으로 보이겠지만'이라는 단서를 자주 붙인다. 축하하고 노래하고 구경하며 열심히 참여하는데, 결코 엄숙하거나 심각하지는 않고 가족이 함께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자녀들에게 보여주는 식이다. 우리처럼 덜 끝난 전쟁을 계속하는 상황은 아니니 비장하고 급박한 느낌은 없어 보인다. 규모는 작아도 진짜 무기와 탱크를 갖다 놓았건만, 장터에 설치한 간이 유원지 같다. 아이들을 올려놓고 즐거운 사진을 찍는 육해공군 행사 부스 모습은 즐겁기만 하다. 안보 의식을 지나치게 고취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느낌도 있다. 러시아로부터의 위협을 항상 느끼고 있기에 만약을 대비한 민족의식 고취는 꼭 필요하다. 하지만 유럽연합과 나토(NATO)의 일원으로 집단안보체계를 적극 활용하는 입장에서 배타적인 민족주의를 진지하게 강조하는 것도 어울리지는 않는다. 푸틴의 러시아는 불안요인임에 분명하니 3월의 1990년 독립 회복일이 더 진지하게 애국적일 수도 있다. 1918년의 국가회복 100주년은 이제 역사 속의 정리된 기억이 되면서 즐거운 축제가 되었다. 

전쟁기념관 지하의 추모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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