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로 장식한 봄 명절 부활절

2018년 3월 26일

by 김유리

2018년은 부활절이 4월 1일로 비교적 빠른 편이었다. 2017년에는 4월 16일이었는데, 그전에 날씨가 좀 풀렸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날에는 폭설에 가까운 눈보라가 쳐서 갑자기 화이트 부활절이 되었었다. 올해는 3월 후반까지도 추위가 가시지 않아서 아직 겨울이었다. 이른 부활절에 아마 눈이 오지 않겠느냐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실제로 4월 1일 부활절에 눈이 내렸다. 이제 부활절에는 눈이 오는 것으로 굳어지려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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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부터 부활절 달걀과 토끼 장식이 판매 중이다. 달걀 색깔인 수선화도 많이 팔았다.

좀 이르기는 하지만 부활절이 지나면 날짜로 보나 날씨로 보나 완연한 봄으로 친다. 부활절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가족이 모두 모이는 큰 명절이다. 해당 주일과 다음 날 월요일까지 공휴일이기도 하다. 학교는 일주일 휴강이라 짧은 봄방학이 된다. 출장으로 이 기간에 한국을 다녀오는 바람에 부활절 이모저모를 볼 수는 없었다. 그래도 크리스마스 다음 가는 큰 명절이라 한참 전부터 준비가 시작된다. 몇 주 전부터 길거리 가판대며 대형 슈퍼마켓에서 부활절 용품과 장식을 팔았다. 달걀과 토끼가 부활절의 상징이 된 배경이나 유래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유야 어쨌든 예쁘게 디자인한 달걀과 토끼 장식이 넘쳐난다. 토끼보다는 달걀의 비중이 훨씬 크다. 달걀 모양 초콜릿이나 과자부터 예술의 경지에 이른 멋진 세공품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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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전 종려주일 성당 앞 풍경과 미사

부활절 일주일 전 주일은 종려주일이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때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환영했던 것을 기념하는 주일이다. 동시에 일주일 간의 고난 주간을 시작하는 기점도 된다. 3월 초부터 장터마다 주요 품목이었던 말린 꽃 장식을 드디어 활용하는 날이다. 준비한 꽃 장식을 가지고 미사에 참석해서 뿌려 주는 성수를 받고, 다시 가져와서 집에 둔다고 한다. 그런데 미사에 미리 준비한 멋진 장식을 직접 가져오는 사람은 막상 별로 없었다. 조그마한 다발이나 가지를 성당 근처에서 많이 팔고 있었다. 작은 것으로 미사에 참석하고 가져가서 합치는 것일까? 소보라스(성 미카엘 성당) 바로 앞에서도 작은 나뭇가지를 팔고 있었고 대부분 하나씩 사서 들어갔다. 구시가의 큰 성당 앞에서는 나뭇가지 말고도 작게 만든 예쁜 장식들을 다양하게 팔았고, 많이들 즉석에서 사서 미사에 참석했다. 수수깡에 끼운 달걀 모양 꽃 장식이 꽤 인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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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이맘때 물이 불어 잠겼던 강변과 공원의 봄기운

종려주일도 성당이 매우 바쁜 주일이다. 평소 조용한 일요일 오후까지도 거리와 광장은 꽤 사람이 많았다. 한적한 강변과 공원으로 발길을 돌리면 드디어 봄을 맞이하려 한껏 물을 머금은 풍경을 볼 수 있다. 3월을 리투아니아어로 하면 '싸운다(kovo)'는 뜻이라고 한다. 겨울과 봄이 싸우며 3월을 보내면 드디어 봄이 겨울을 밀어내고 승리한다. 2017년에는 물이 녹으면서 강물이 한참 불어나 공원이 반 이상 잠길 정도였다. 공원 끝자락을 걸으면 강물 수면과 거의 평행선을 걷게 되었다. 마치 물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무도 상당수가 주산지처럼 잠긴 상태에서 봄기운을 빨아들였다. 그에 비해 2018년에는 추위가 늦게까지 고집을 부렸다. 얼음이 늦게 풀리면서 강 표면에 눈과 얼음, 녹은 물이 얽혀 울퉁불퉁한 경치였다. 끝까지 앙탈 부리는 겨울 공기를 봄기운이 여유롭게 밀어내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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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겨울이 늦게 물러나면서 강변에 아직도 얼음과 눈이 남아있다.

부활절이 4월 초가 되면서 딱 중간고사 끝나는 시점이었다. 시험 후에 맞는 짧은 방학이 되었다. 시험을 마치고 쉬는 것이니 학생들도 홀가분하겠다 싶어서 어떻게 보내느냐고 물어봤는데 한결같이 그저 가족이 모두 모인다는 대답이다. 학교는 일주일 방학이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이 많아서 공휴일인 이틀만 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탄절만큼은 아니어도 상반기의 큰 명절이라 가족과 친지가 다 모이는 집이 많았다. 가족 중 독실한 어른들은 토요일 저녁이나 밤, 부활절 주일 새벽의 미사 중에 선택해서 다녀온다. 새벽 미사를 다녀온 사람들까지 다 집에 모이면 좀 늦은 아침을 온 가족이 매우 푸짐하게 먹는다고 한다. 부활절인 만큼 달걀을 엄청나게 먹는다는 농담 섞인 이야기도 했다. 저녁이 아니라 아침을 온 가족이 포식하는 것이 부활절 명절의 하이라이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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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 분수대의 달걀과 카우나스 성채 앞 공원의 달걀 장식

일정상 종려주일에는 막 치른 중간고사 답안지를 폭풍 채점해야 했다. 하지만 날씨도 좋은데 명절 분위기를 아예 놓치기 아쉬워 산책을 나섰다. 뭐 다른 게 있나 구경하다 보니, 전 해와 달리 웬 초대형 달걀 장식이 자유로 분수대를 차지하고 있었다. 해마다 있었는데 못 본 것인지 모르겠으나 멀리서부터 은색으로 빛나는 달걀은 의외로 예쁘지가 않고 좀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햇빛에 빛나도록 은박으로 감싸고 색깔 줄로 무늬를 입힌 달걀인데 저녁에는 색깔 있는 불이 들어오도록 전선이 감겨 있었다. 마침 햇살이 밝아서 정신없이 빛났다. 더 놀라운 것은 구시가를 지나 강변 공원까지 갔다가 카우나스 성채 앞에서 똑같은 초대형 달걀을 또 만났다는 것이다. 성채를 배경으로 잔디밭에 뜬금없이 놓여 있는 초대형 은박 달걀도 꽤 당황스러운 풍경을 선사했다. 누군가 설치미술처럼 제안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안 나섰으면 못 볼 구경을 했다. 종교적으로 엄숙하고 거룩한 부활절이지만 달걀과 함께 봄맞이로 즐기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게 사실이다. 달걀 깨지듯 겨울도 깨지고 봄이 완연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도 달걀 모양의 작은 말린 꽃 장식을 하나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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