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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리 Mar 09. 2018

9월 1일: 공식 개강 행사

2017년 9월 1일

개강 기념식을 한다고 하기에 개강파티라도 하는 건가 했었다. 그게 아니라 매우 공식적인 행사였다. 강당에서 신입생 입학식을 겸하는 제대로 된 예식이었다. 한국의 대학들도 학부 입학식을 하지만 출석률도 영 저조하고, 신입생을 포함해서 학생들이 별로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영미권 대학들에서 학생들이 학교에 대한 자부심을 과장스럽게 표현하는 모습은 한국에서는 찾을 수 없다. 유럽 대학들도 그런 자부심 넘치는 분위기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하버드식 운영을 표방했다는 VMU의 방식이 특이한 것인지 살짝 헷갈렸다. 아무튼 입학식을 겸하는 개강식은 꽤나 성대했고 학생과 교수 참여율도 높았다. 졸업식은 농구장인 Zalgiris Arena를 빌릴 정도로 더 크고 성대하다고는 한다. 학교 대강당에서 한 입학식도 나에게는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교수진과 신입생이 깃발과 군악대와 함께 자유로를 따라 행진해 와서 대강당을 꽉 채우는 입학 겸 개강식은 꽤 격식이 있다.

신입생들은 아침에 구시가의 제일 큰 베드로와 바울 성당에서 미사로 첫 순서를 시작한다. 종교 사학은 아니지만 가톨릭 국가임을 확인이라도 하듯 미사로 입학식을 시작한다. 종교의 자유를 강조하다 기독교 사학이나 불교 사학을 표방하는 학교들도 공식 행사에서 종교적 요소를 전부 빼게 된 한국과는 참 대조적이다. 미사를 마치고 교수들과 상견례를 한 후, 자유로의 비타우타스 대공(Vytautas the Great) 동상 앞에서 학교까지 행진을 한다. 행진 맨 앞에 카우나스의 전통 군악대와 거기에 맞춘 응원단(?)이 분위기를 띄우고, 금박 장식을 두르고 가운을 차려입은 총장단부터 교수진이 이어지고, 단과대별로 다른 색의 깃발을 날리면서 신입생들의 행진이 이어진다. 전교생 8천 명 정도로 학교가 크지 않은 만큼 행렬도 과히 긴 건 아니지만 떠들썩하게 고조된 분위기는 꽤나 축제 느낌이 났다. 2017년에는 안타깝게도 비가 뿌려서 화창한 느낌은 없었지만 그래도 부모님들까지 뒤따른 행진은 여전히 활기가 넘쳤다. 

총장님의 입학식 훈화 말씀

2016년에는 나도 처음이었기에 일부러 개량한복을 챙겨 입고 인문대학의 조그마한 노란 깃발을 쥐고서 강당 안에서 진행된 식에 참석을 했었다. 대부분 리투아니아어로 진행되어서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중요한 대목이나 순서 소개는 영어로 병행을 해 주었다. 민족의식이 강한 대학을 자부하는 VMU의 특성일 수도 있는데, 국기를 비롯해서 각종 깃발이 입장하는 순서와 리투아니아 국가 제창으로 식을 시작한다. 모두 일어나서 경건하게 국가 부르는 순서를 유럽에서 보자니 왠지 낯설었다. 민족국가로 독립한 경험이 한국보다 짧은 리투아니아다. 어쩌면 이런 애국 의례가 더 소중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총장님의 훈화 말씀(축사)은 생각보다 길었지만 자부심이 넘쳤다. 그럴듯하게 장식된 홀(봉?)을 들고 나와 높이 외친 신입생의 선서는 뭔가 전통 같이 보이면서도 유머가 있었다. 


신기했던 점은 이후에도 몇 명이나 이어진 고위직들의 축사였다. 정치인, 장관, 카우나스 주교도 나와서 축사를 했다. 인상적이었던 인사는 리투아니아 독립 영웅이자 독립 당시 사실상의 국가수반이었고, 동시에 유명한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다는 Vytautas Landsbergis 의장(초대 임시의회 의장)이었다. 오직 리투아니아 어로만 축사를 하셨는데, 짧았지만 폭발적인 호응이 있었다. 투쟁적인 삶을 산 분이고 아직도 상당한 영향력 있는 어른이었다. 갓 입학하는 젊은 학생들에게서도 웃음과 호응을 끌어내는 친근한 독립영웅의 존재가 새삼 신기하게 보였다. 길게 이어진 축사들 끝에는 성악과 학생들의 축가도 있었다. 그리고 마무리가 그 유명한 대학축전 서곡 "Gaudeamus Igitur"여서, 유럽 대학에 왔다는 점이 급히 상기되었다. 한국에서 합창단 활동하면서 주로 결혼식 퇴장곡으로 많이 불렀던 노래였는데, 진짜 학교 행사에서 모두가 제창하는 노래로 듣자니 내가 유럽의 대학에 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 심지어 순서지에 라틴어 가사가 3절까지 나와 있고 그걸 끝까지 같이 불렀다.

생각보다 훨씬 격식 있는 공식 행사였던 개강식 후에는 강당 앞 로비에 커다란 'September 1st Cake'가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학생이 아니었으므로 케이크에 신입생들이 몰려가는 모습만 보고 총장실이 있는 옛 본관 건물에서 열린 와인 리셉션에 갔다. 1920년대에 처음 개교할 때부터 쓰던 건물로 지금은 문화재로 관리하고 있다. 간단한 인사 말씀 후 그냥 알아서 먹고 마시며 인사하는 거였다. 몇몇 교수님들과 인사 나누다가 리나스 교수에게 부탁해서 Landsbergis 의장 할아버지와 사진을 찍었다. 아직 살아 있는 독립영웅의 존재가 신기하기도 해서 인사를 시켜달라고 했다. 영어는 거의 안되셨지만 한국도 와 봤다며, 너는 어느 한국이냐며 농담을 던지는 모습에 노련함이 있었다. 이런 유명한 어르신이 와인을 먹고 있어도 별다르게 모시거나 수행하는 분위기가 전혀 없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한국 같으면 그런 어르신이 혼자 와인이랑 간식 드시고 서있게끔 방치할 것 같지는 않은데, 이게 동양권과 다른 모습인가 싶었다. 그 리셉션에서 '수행원'이 붙어있던 인사는 일본 대사와 중국 대사였다. 리투아니아에 대사관이 없는 한국은 이런 행사에 참석한 적이 없다고 한다. 대사관이 없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막상 일본과 중국 대사만 있고 한국 대사는 없다니 살짝 아쉬웠다. 

리투아니아 독립영웅인 Vytautas Landsbergis 옹과 함께 -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 중이시다. 

개강을 이렇게 축하하는 VMU의 전통이 좋아 보여서, 문화재 본관에 온 김에 리나스 교수에게 학교 역사를 좀 자세히 물어보았다. 14세기 말에 활동했던 비타우타스 대공의 이름을 딴 대학이니 굉장히 오래되었을 것 같지만, 사실 1920년대, 1차 대전 후에 잠시 독립했던 공화국 시기에 설립된 민족주의 대학이었다. 그때는 빌뉴스가 폴란드에 속해 있어서 카우나스가 수도였다. 원래 이름이 University of Lithuania였는데, 마침 비타우타스 대공 사후 500년을 맞이하여 크게 축하행사를 하면서 학교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2차 대전 후에 소련에 편입된 직후 지나치게 민족성이 강하다는 이유로 폐교되었다. 소련 붕괴 후 다시 개교했으니 매우 젊은 대학이다. 학교 역사는 짧지만, 중세 때부터 있었다는 빌뉴스 대학의 긴 역사보다 더 마음에 드는 역사다. 지금은 국제화를 전면에 내세워 영어를 졸업 필수 요건으로 정하고 영어 강의도 늘리고 있는데, 얼핏 민족주의적 대학 특성에 어긋나는 것 같다. 하지만 민족국가를 강화하고 발전시키는 데 좋은 방법이라면 국제화나 영어 사용도 그 목적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논리도 납득이 되었다. 영어를 강조하고는 있지만 리투아니아어에 대한 자부심과 보호도 집착에 가까울 정도이다. 개방과 급속한 변화 때문에 윗 세대들의 걱정도 있겠지만, 기왕 개방된 세상에서 유럽연합과 세계를 무대로 살아야 하는 젊은 세대들이 민족성을 지키는 방법은 달라지는 게 당연할 것이다. 

올해 개강일에는 아쉽게도 비가 계속 내렸는데, 그래도 동네 군악대와 행진은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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