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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하 Jul 17. 2024

그녀와 그의 이야기2


결혼을 빠르게 준비해야 된다는 소식은 그야말로 날벼락이었다. 연애에 관심도 없었고 만나는 사람도 없는데 결혼이라니! 하지만 내 의지와는 다르게 세상을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잘 흘러가지 않는가. 집안 식구들이 내 혼처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지금이야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함) 라지만 우리 때만 해도 선을 봐서 결혼하는 건 일반적인 일이었다. 작은 어머니 가게에 자주 왔다 갔다 했던 나를 눈여겨보시던 건너편 사장님이 발 벗고 나섰다. 본인의 육촌 조카가 있는데 짝으로 맺어주기 제격이라는 거다. 생각해 보니 어쩐지 그 사장님 오고 갈 때 나를 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육촌 조카라는 K 씨는 나보다 두 살 많은 회사원이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사회 초년생인데 똑똑하고 남자다워서 나와 잘 어울릴 거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 오빠와 동갑인 K 씨와 만남을 준비하게 됐다. 시청역 근처 플라자 호텔에서 만나기로 한 주말. 명색의 선 자리인데 대충 하고 나갈 수는 없었다. 워낙 멋 내기 좋아하는 탓에 힘주는 날 입는 의상은 여러 벌 있었다. 빨간 주름치마에 앙고라 털로된 스웨터를 입었다. 목도리를 하고 까만 반코트를 걸쳤다. 요즘 유행하는 미스코리아 파마머리에도 힘을 주고 부지런히 드라이를 했다. 


© mineragua, 출처 Unsplash


나는 무표정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있을 뿐인데 화가 났냐며 묻는 사람이 태반이다. 그래서 웃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습관은 어느덧 자연스러운 내 표정이 됐다. 이가 보이게 활짝 웃는 모습은 내 시그니처다. 호텔 로비를 들어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저 멀리서 


나를 보며 똑같이 활짝 웃고 있는 한 남자가 보인다.



그와 연애를 시작하고 가장 많이 듣는 소리는 남자친구가 잘생겨서 좋겠다는 말이었다. 처음 선 자리에서 그를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잘생긴지 전혀 모르겠는 나로서는 갸웃할 뿐이다. 나도 어디 가서 외모로는 지지 않는데 K와 만나면서는 주변에서 K에 대한 외모 칭찬 일색이다. 그냥 눈이 좀 부리부리하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그뿐 아닌가.


K와 연애를 시작하며 한 달에 60번을 넘게 만났다. 이렇게까지 적극적인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다. 구로에 있는 회사로 출근하기 전 보광동에 와서 나를 만나고 우리 집에서 같이 아침밥을 먹었다. 하루 이틀 찾아왔을 때는 작은 어머니 작은 아버지도 놀라셨지만, 매일매일이 되니 그러려니 하시고 수저를 하나 더 놓으셨다. 그렇게 아침을 먹고 회사로 출근을 하고 잠깐 외근을 나왔다면 일하고 있는 의상실에 들러서 간식을 주고 간다. 퇴근을 하면 또 나를 데리러 왔다. 이쯤 되니 의문이 들었다. 


© miquel_parera_mila, 출처 Unsplash


이 사람 제대로 일하는 사람 맞아?


이렇게 만나니 하루에 만나는 횟수가 6~70번은 훌쩍 넘어갔다. 그렇게 반년 정도 연애를 했지만 실제로는 1년 그 이상을 만나 온 커플처럼 가까워졌다. 그렇게 연애를 하며 결혼을 준비하게 됐다. 나는 본가인 청주로 내려가서 신부수업을 준비했다. 요즘 시대야 신부수업 같은 게 웬 말이냐 싶겠지만 우리 때는 그랬다. 결혼해서 현모 양처가 되기 위해 요리도 배우고 집안일도 배우고 나름 결혼을 앞두고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청주로 내려간 나를 보기 위해 K는 주말마다 청주로 내려왔다. 거리만 멀어졌을 뿐 데이트하고 둘이 노느라 정신없이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말만 신부수업이지 신부수업인 척하는 장거리 연애에 돌입 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K는 연애시절 대놓고 팔불출이었다. 한번은 선물로 1m가 넘는 편지지에 자기 마음을 담은 연서를 절절하게 써준 적이 있다. 지금도 보관함에 있는 이 편지는 가끔 봐도 대단하다 싶다. 그런데 이 편지를 어머니 옆에서 배를 깔고 누워서 열심히 썼다고 한다. 나도 아들이 생기고 나니 시어머니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아들놈이 옆에서 연애하는 애인한테 준답시고 편지를 그렇게 쓰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서운하고 울화통이 터질까 싶다. 그때 시어머니가 물으셨다고 한다. 

© hudsoncrafted, 출처 Unsplash

K야, 그렇게도 P가 좋으냐?


그렇게 짧지만 짧지 않은 연애를 끝으로 우리는 결혼식을 올렸다. 남들과 똑같이 평생 함께하자는 약속으로 함께 잡은 두 손 꼭 잡고 영원히 행복하자는 사랑의 서약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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