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야, 그냥 한번 만나보면 어때? 정말 괜찮은 사람이야.”
“아니에요 언니. 저는 괜찮아요”
언제나처럼 거절이다. K는 아동복 회사의 디자이너다. P는 여성복 디자이너로 한 달에 한 번 원단 공장을 찾아갈 때 만나는 동생이다. K는 어리고 예쁘고 똑 부러지기까지 한 P가 연애도 안 하고 솔로인 이유를 도통 모르겠다. 소개팅을 시켜주려고 해도 한사코 사양한다.
P는 쥐고 있던 마지막 옷 디자인을 마무리 하고 퇴근을 준비했다. 서울 작은 아버지 댁에서 살고 있는 P는 퇴근 후 빠른 걸음으로 귀가한다. 아무래도 어른들과 함께 살다 보니 자취 하는 것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니기는 힘들다. 씻고 누워서 좋아하는 잡지를 보고 예쁜 옷들을 구경하는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 24살 아직 하고 싶은 거 많은 나이가 아닌가? 남자는 아직 잘 모르겠다. 남들은 왜 연애를 안 하냐고 하는데 나는 충분히 인생을 잘 즐기고 있기 때문에 연애 생각이 잘 안 난다. 연애도 안 하고 있는데 결혼은 더 머나먼 일이다. 막연하게 누군가와 결혼하게 된다면 배울 점이 많고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만을 해봤을 뿐이다.
작은아버지가 의류사업을 시작한다고 의상실의 디자이너를 구한다고 했을 때 나도 모르게 내가 하겠다고 나서버렸다. 청주에 살던 내가 무슨 용기로 부모님과 떨어져서 서울로 올라와서 살겠다고 했는지. 마도로스로 배를 타고 다닌 아버지를 닮았기 때문일까. 새로운 도전에 대해 두려움보다는 설렘을 먼저 떠올렸다. 그렇게 올라온 서울 생활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하지만 평소 관심이 있던 디자인 공부도 계속할 수 있는 것이 좋았다. 또 매일 새로움이 가득한 서울 어느 한 곳에서 내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의상실이 생각보다 시원치 않아서 작은아버지는 남대문에 옷 가게를 추가로 오픈했다. 남대문 옷 가게는 주로 작은 어머니가 자리를 지키셨다. 당시 남대문 시장 옷 가게들은 가게 안쪽에 작은 하꼬방이 따로 있는 가게들이 많았다. 다닥다닥 붙어 있던 가게들 안쪽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작은 어머니도 가끔 가게에서 주무시고 집으로 귀가하시곤 했다. 자연스럽게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님들끼리 친해지기 마련이다. 건너편 옷 가게 사장님과 친해진 작은 어머니는 가끔 내가 가게에 들러서 옷을 갖다 놓을 때 자연스럽게 앞집 사장님에게 소개해 주셨다. 그렇게 인사를 드리고 나서는 남대문에 갈 때마다 내게 좋은 말씀을 해 주셨다.
"P는 항상 뭐가 그렇게 좋은지 웃고 다니는 것 같아"
"감사합니다 아줌마."
"오늘은 또 무슨 좋은 일이 있어서 그렇게 얼굴이 활짝 피었어?"
"에이~ 무슨 일은요. 날씨가 너무 맑고 화창하잖아요."
우리 집은 대학교 근처에서 하숙을 했다. 한때 <응답하라 1994>라는 드라마가 히트를 쳤다. 우리 집은 딱 그 드라마의 모습같이 낭만이 있었다. 내 동생은 하숙생 중 한 명과 연애를 했다. 둘이 꽤나 진지하게 만남을 갖고 있던 중 남자친구의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셨다. 자연스럽게 남자친구가 밑에 동생들을 책임지게 되어 빠르게 결혼을 해야 된다는 연락을 받았다. 동생은 오 남매 중 셋째였는데 집안 어른들은 역혼은 절대 안 된다고 결사반대를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뭐가 그리 문제인가 싶다. 하지만 그 당시 사회적으로 그러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거스르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갑작스럽게 결혼을 해야 하는 입장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