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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하 Aug 13. 2018

연인사이에서 당연한 것은 없다.

연인간의 배려와 호의에 관하여

연인 사이에 당연한 것은 없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인터넷에서 개념 없는 행동을 한 사람들에 관한 기사나 기가 차는 내용의 글 밑에 많이 달리는 댓글이다. 많은 사람이 한 번쯤 봤을 법한 이 댓글이 과연 정말 그렇게 인터넷상에서만 이야기할 법한 것일까? 나는 저 말이 그 어떤 상황보다 연애할 때 자주 쓸 수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연애는 기본적으로 타인과 내가 함께 감정을 교류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친구보다 또 어떨 때는 가족보다도 가까운 한 사람과 남자친구 여자친구라는 이름으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그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여러 가지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한 가지는 이것이다.

상대방의 그 어떤 행동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K라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여자친구를 만나기 전에 호감을 느끼고 있을 때부터 매일매일 차로 여자친구를 픽업하고 데이트를 하다가 집에 데려다줬다. 여자친구 집에서 K의 집까지는 차로 30분 정도의 거리. 연애를 하고 500일이 조금 넘었을 무렵 K는 조금씩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한다. 차를 못 가지고 출근하는 경우가 근래 왕왕 있어서 퇴근하고 지하철역에서 만나서 데이트하면서 놀다가 버스를 타고 각자 집으로 가는데 여자친구가 섭섭해한다는 것이다. 그 섭섭해하는 여자친구의 태도에 마음이 불편하고 섭섭하다는 것이다.


B라는 친구가 있다. 평일에는 둘 다 일하느라 바쁘고 주말에

데이트하는데 남자친구는 금요일에 고정적으로 하는 야근 업무가 있다. 데이트를 하기 전까지 조금이라도 더 잘 수 있도록 주로 주말 데이트는 남자친구 집과 가까운 번화가에서 해왔다.

한 반년쯤 지났나? 주말 데이트=종로에서라는 공식이 마치 이 둘 사이에 당연한 것처럼 성립되어 대놓고 말해야 하나 이걸 왜 몰라주나 라는 마음으로 불평을 토로했다.


이 K라는 친구와 B라는 친구의 연애에서 잘못한 사람이 비단 그들의 연인들`만` 일까? 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둘 모두에게 공통으로 던진 첫 말이 있다.


네가 상대방이 당연히 그러하게 생각하게 만들어 놓고 누굴 탓해?


연애는 쌍방이 함께 맺는 관계다. 어느 한쪽에서 균열이 났다면 분명 다른 한쪽에서도 그 균열에 대한 원인이 존재한다. 상대가 좋아서 잘해주기만 했을 뿐인데 그런 내가 뭘 잘못했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그럼 당신은 처음에 그 상대방에게 잘해주기만 했을 때는 아무런 불만이 없다가 왜 인제 와서 그것에 대해 불평하는가?


사람은 무섭게도 적응의 동물이다.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는 걸 그 어떤 동물보다 잘하는 존재다. 이 `적응`이라는 단어는 어떤 때는 참 고맙기도 하면서 어떤 때는 참 무서운 단어인데 연인 간의 관계에 있어서는 이보다 무서운 말이 없다. 내가 상대방의 여자친구(혹은 남자친구)라서 상대방이 내게 베푸는 사랑과 호의를 내가 당연하게 여기며 그것에 적응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사귄 기간이 한 달이 지났든 일 년이 지났든 수년이 지났든 나는 그것을 항상 고마워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사랑과 호의에 적응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가 받는 사랑과 호의, 배려가 당연한 것처럼 여기게 된다. 마치 처음부터 내가 받아야 했던 권리인 것처럼...


그렇게 익숙해진 사람들이 잘했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당연히 그들은 잘못한 것이지만 그렇게 적응하게 된 것 또한 자연스러운 것이다. 또한 상대방이 좋아서, 상대를 사랑해서 잘해주고 많은 것을 배려하고 많은 호의를 베푼 당신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당신이 잘못한 것은 당신의 그런 호의와 배려가 "너를 사랑해서 내 연인에게 해줄 수 있는 나의 권리"라는 것을 상대에게 인식시키지 못했다는 거다.


상대방에게 푹 빠져 있을 때는 모른다. 상대방이 좋아 미칠 것 같은 때는 상대방이 이런 걸 당연하게 여기든 고마워하든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이렇게 모든 것을 바칠 만큼 사랑에 빠진 내 모습에 뿌듯할 뿐 그저 상대방이 사랑스러운 거니까. 문제는 그 사랑에 빠진 기간이 생각만큼 그렇게 길게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정의 시간이 지나 콩깍지가 벗겨지고 사랑의 감정이 열정적인 그것에서 지속적이고 꾸준하고 일상의 그것으로 변하는 순간 내가 상대방을 사랑해서 했던 행동들이 나만의 희생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그럼 이미 끝. 그래서 끊임없이 나도 상대방도 인식해야 한다.


나의 호의와 너의 배려가 서로에게 당연한 것이 아님을 끊임없이 고마워하고 또 감사해해야 한다는 것을. 나를 위해 상대방이 한 사소한 행동에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내가 상대방을 위해 한 행동을 상대방이 고마워하게 만들어야 한다. 피를 나눈 가족 사이에서도 당연한 것은 없다. 나 자신 외에 모든 타인과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나와 상대방이 서로를 위해 한 모든 행동은 마땅히 고마워해야만 한다.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그 본인만이 그 호의와 배려가 당연하다고 얘기할 수 있을 뿐 그 누구도 그것에 대해서 당연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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