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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하 Aug 09. 2018

아무거나 이것저것 다 해봐라

(부제: 끈기없는 당신을 위한 항변)


'너는 이것저것 뭔가를 참 많이도 한다'

'뭐 하나 진득하게 못하고 뭘 그렇게 다 찔러보냐'

'한가지를 좀 꾸준히 해봐라'

...

20살 때 부터 내가 우리 부모님한테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많이 들은 말들이다.



그런 큰 딸이 성인이 되고나서 십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 부모님은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와 나의생활방식이

당신들이 그렇게 우려할만큼 잘못된 것이 아니였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자, 지금부터


"넌 참 끈기가 없어"


라는 말을 들으며 살아 온 당신과 나를 위한 항변을 시작해볼까 한다.



소위말해서 나는 굉장히 많은 일을 벌이는 타입의 사람인데

내가 뭔가를 시작하려 할 때 주변 사람들은 늘 비슷한 소리를 한다.

'돈 들여서 그런것도 배워?', '와~  별걸 다 하러 다니는구나', '안 피곤해?', '재미긴재밌어?' 등등...


그 중 가장 많이 듣는 말은

'그거 배워서 뭐하게?'


뭔가를 배울 때 꼭, 반드시, 목표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많은 경험은 내가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것에 관심있어 하고 또한 어떤 것들을 별로 안 좋아하는지

내 삶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가기 위한 좋은 발자취가 될 수 있다.

고로 어떤 일을 시작하는 게 꼭 뭔가 중요한 목표를 위한 수단일 필요는 없다는 소리다.

그것이 좋던 나쁘던, 나랑 맞던 안 맞던간에 "쓰잘데는 일"이라는 건 없기에 일단 뭐든 해보는 거다.

그리고나서 먹고 죽어도 '고'를 외칠지 '스톱'을 외칠지 결정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 일을 시작하거나 뭔가를 배울 때

반드시 그 일을 프로페셔널하게 해내야 한다는 강박을 안고 살아가는 것 같다.

나는 내 스스로가 갖고 있던 그 강박을 깨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10대 때 보다는 20대 때, 그리고 그 때보다는 30대가 된 지금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서

그 강박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그것이 꼭 완벽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내세우기 위해, 뭔가를 드러내기 위해서 배운다는 목적이 아니라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나 자신을 위해서 라는 전제가 깔리면 더욱 그렇다.)

내가 뭔가를 배우고 혹은 어떤 일을 하면서 그 시간을 즐기고 재밌다면

충분히 그 일은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이토록 쉬운 마음가짐을 사람들이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까지는 아주 오랜시간이 걸린다.




글을 쓰다가 문득 우린 어렸을 때 부터 이런 마음가짐을 가질 수 없는 환경에서 커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때 였나 피아노를 배우고 콩쿨대회를 나갔었는데

(지금은 겨우 더듬더듬 코드 정도를 손으로 잡고 박자에 맞추는 정도의 실력)

은상인가 금상인가를 (매우 어릴때라 기억도 흐릿) 수상했었다.


생각해보면 그 콩쿨대회에서 상을 타던 못타던 그건 그렇게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였다.

그렇게 뭔가를 열심히 준비하고 대회까지 나갔다는 것 만으로 충분히 칭찬받을 법 한 일이였는데

(심지어 나는 수상까지 했었는데!!)

내 머리속에서는 어린 내가 대상을 받지 못해서 속상해 한 부분이 더 분명하게 기억된다.


그리고 심지어 그 때 콩쿨에서 쳤던 피아노 곡은 지금 칠 줄도 모른다.




난타, 서양미술사학 강의, 캘리그라피, 수제맥주 만들기, 성인 구몬 학습지, 중국어배우기,

일본어 배우기, 영어회화학원 다니기, 전화영어 수업, 블로그에 글쓰기, 브런치에 글쓰기,

야구장가기, 축구장가기, 농구장가기, 베이킹수업듣기, 꽃꽂이, 동호회 만들기,

세계다른나라 사람들과 엽서교환하기, 여러나라 여행다니기, 혼자 여행다니기,

친구랑 여행가보기, 수영, PT, 서핑, 필라테스, 스쿼시, 기타배우기,

책쓰기 수업, 요가, 복싱, 자전거, 사주 명리학 수업듣기...


진짜 뭔가 많이 하기도 했다.


저 중에 지금도 계속 하는 일들이 있고 나와 잘 맞지 않아서 하지 않는 것들도 있다.

더 깊게 공부하는 중인 것들도 있고

가끔씩 생각날 때 다시 해보는 것들도 있다.

해봤기 때문에 내가 할 것이지 말 것인지를 확실하게 결정할 수 있다.

내가 저런 것들을 해보지 않았다면

대체 나는 어떤 걸 좋아하는 사람이고 어떤 걸 잘 하는 사람인지

쉽게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어떤 것들을 배우면서 그것에서 재미를 찾기까지 어느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꾸준한 노력으로 어느정도의 경지에 올랐을 때 재미를 느끼는 분야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내가 이야기 하고 싶은 건
애초에 그것을 할 지 말 지 고민하다가 결국엔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사람들 보다는

뭐라도 한번 해보기 위해서 시도하는 사람이 좀 더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잘 알 수 있다는거다.




이것저것 일 벌이면서 오지랖 넓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온 당신

끈기 없이 뭘 그렇게 이것저것 많이 하기만 하냐는 소리를 들은 당신

뭐 그렇게 시도하는 건 많고 결과는 없냐는 소리를 들어온 당신


적어도 당신은,

당신이 해온 일들이 본인과 잘 맞는지 재밌는지에 대한 판단을 스스로 내릴 수 있다.


뭔가를 시작하는 것 조차 두려워하는 용기없는 사람들보다

일단 시작하는 것에서는 누구보다 자신있게 도전할 줄 아는 당신은

앞으로 천천히 당신의 삶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 줄 일들을


잘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기죽지 말고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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