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에는 같은 학교 같은 동네 친구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같은 학교에 다닌다는 공통점만으로도 서로 깊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마음을 깊이 나누는 단짝이 되고 그 와중에 같은 연예인을 좋아하기까지 한다면 금상첨화. 사소한 공통점만으로도 관계를 맺는 게 참 쉬웠던 것 같다. 성인이 되면서는 더 다양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그 많은 관계 속에서 내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관계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관계를 구분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동생 M은 여행지에서 만났다. 로망이 가득하고 낭만적인 파리에서 처음 만난 우리 둘은 여행지에서 만난 여느 가벼운 인연들과 다르게 10년이 훌쩍 넘어버린 지금 서로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처음 만났을 때 경계 가득하던 M의 모습이 지금도 머릿속에 선하다. 나는 10년 전에도 지금도 사실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하고 처음 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이 여전히 재밌다. 이런 내 모습에 낯선 사람에게 경계심 가득하던 M은 새침데기 같은 모습으로 첫날밤 내 옆 침대에서 열심히 본인의 다이어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우리가 파리에서 함께 여행했던 시간은 딱 사흘. 한인 게스트하우스에 있던 많은 사람과 함께 파리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그중 특별한 접점이 없던(나는 서울에 살았고 M은 부산에 살았다. 나는 회계와 법을 공부하던 학생이었고 M은 임용을 준비하던 학생이었다.) M과 지금 이렇게 죽고 못 사는 사이가 되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할 따름이다. 여행에서 돌아와서는 그 당시 나도 시험을 준비하는 중이었고 M 역시 시험을 준비 중이라 간간이 연락하며 안부를 물었고 그로부터 몇 년 후 M은 임용에 합격해서 위로 올라오게 되었다. (한참 후에 M을 통해 들은 이야기지만 부산에서 공부 중이던 M은 저 멀리 서울에서 온 나의 연락에 늘 의아했고 또 신기했다고 한다. 꾸준히 연락해 온 내 노력이 없었다면 우리의 관계가 이렇게 깊게 이어지지는 않았을 거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서울-부산에서 서울-경기도의 짧은 거리는 우리의 관계도 더욱 가깝게 만들어줬다.
나와 M은 아주 다른 성격을 갖고 있지만 결이 같은 사람들이다. 다른 성격 덕분에 둘 사이에 약간의 삐그덕거림은 있었지만, 그 결이 같았기에, 삶에서 추구하는 방향과 기본적인 도리와 상식에 대한 기준이 비슷한 사람들이기에 다른 점을 극복하고 오랜 시간 서로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 되어주고 있는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내 주변 사람들 중에서 나에게 가장 좋은 말을 많이 해주는 사람. 내가 본인에게 어떤 좋은 영향을 끼치는지 늘 상기해 주는 사람은 M이다. 언젠가 M이 내게 ‘혼자서 독립해서 사는 본인 옆에 엄마 대신 언니가 있는가 보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M의 이 말이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너무나 잘 나타내 준 말이 아닌가 싶다. 타인이 나를 이렇게까지 아껴 줄 수 있다니.
M과 함께 있으면 나는 언제나 그의 길잡이가 된다. 나보다 3살 어린 그에게 나는 늘 3살 먼저 걸은 그 길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해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내가 해주는 그 조언을 M은 조금의 곡해도 없이 잘 받아들여 준다. 본인을 위해 해주는 이야기임을 100% 받아들여 준다. 그래서 나는 M과 함께하며 더욱더 좋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M을 만날 때마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더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평생 함께할 인연으로 함께하는 매 순간 M에게 나는 늘 든든한 친구이자 언니가 되고 싶다. 시험에 붙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이었던 22살의 M은 이제 33살이 되었다. 내가 봐 온 10년 동안 M은 꽤 단단해졌다. 여전히 지금도 인간관계에서 상처받고 마음이 다치는 경우가 왕왕 있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더 많이 성장한 것은 분명하다. 지금은 더 혼자 많은 것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됐고 자신을 스스로 사랑하는 방법을 잘 알게 된 것 같다. 나는 M의 그런 변화가 너무 좋고 내가 M의 그 변화에 꽤 영향을 끼친 것 같다는 생각에 어깨가 으쓱하기도 한다. 그리고 내 변화 속에도 M이 함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사람들이 얼마나 내 인생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깨닫고 있다. 나를 더욱 어른스럽게 만드는 사람도 있고, 나를 더욱 프로페셔널하게 만드는 사람들도 있고, 나를 더욱 멋진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실로 가진 것보다 더 나를 높게 평가해 주고 내게 할 수 있다는 긍정적 에너지를 불어넣어 변화시키는 사람들.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나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사람들을 잃지 않고 내 옆에 꼭 붙들어 주는 것 그건 내 삶을 조금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함이 분명하다.